보령에 남아 있는 우암 송시열의 흔적
2017.07.10(월) 13:06:25지민이의 식객(chdspeed@daum.net)
보령에 우암 송시열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은 보령 웅천읍 구장터3길 108에 있는 집성당인데요 집성당은 웅천초 하천을 따라 500여미터 정도 내려가면 화락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며 정치가였던 우암 송시열의 사상을 집대성하여 기리고 성인의 영정을 봉안하여 제례를 갖추기 위한 사당으로 조선 말기인 1897년에 건립된 이곳은 당시 남포 인근 지역의 유생이었던 윤석봉과 조진학, 신섭이 주축이 되어 모든 유생들에게 창건 취지를 알리는 통문을 발송하면서 건립이 추진되었습니다.
외부에서 보이는 집성당 전면에는 맞배지붕의 솟을대문이 있는데요. 건물 주변으로 담장을 둘렀습니다. 매년 봄과 가을 보령의 유림들이 모여서 분향하여 제례를 올렸던 곳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곳에서 유생들이 모여서 항일 의지를 심화하기도 했던 곳입니다. 지금은 매년 1회 제향을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대전에도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우암 송시열은 조선중기 주차학의 대가로 1674년 효종비인 인선왕후의 죽음으로 자의대비의 상복 문제가 논의되자 대공설(9개월)을 주장했다가 예를 그르쳤다는 죄목으로 덕원, 웅천, 거제, 청풍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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