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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호서지방 3대 명문가…270년 이어온 장맛 일품

충남의 종가 5)논산 파평윤씨 문성공파 윤증 종가

2024.05.14(화) 13:56:16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윤증 고택 전경. /한국유교문화진흥원

▲ 윤증 고택 전경. /한국유교문화진흥원


호서지방3대명문가270년이어온장맛일품 1


논산 파평윤씨의 정착과 번성

논산시 노성면과 광석면, 연무읍 일원에는 파평윤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논산 파평윤씨는 1550년경 윤돈(尹暾, 1519~1577)이 문화류씨 류연의 둘째 딸과 결혼하여 처가가 있는 득윤면(현 논산시 광석면 득윤리)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논산지역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윤돈의 아들 윤창세(尹昌世, 1543~1593)가 외가의 재산을 모두 상속받게 되어 이를 경제적 기반으로 삼아 노성면 병사리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하였다. 

윤창세는 설봉공 윤수, 문정공 윤황, 충헌공 윤전, 서윤공 윤흡, 전부공 윤희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이들 계파를 ‘노종 오방파’라고 부른다.  노종 오방파는 논산 노성면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해 나갔으며, 조선후기 연산의 광산김씨, 회덕의 은진송씨와 아울러 호서지방의 3대 명문가로 지목될 만큼 크게 성장하였다. 또한, 호서 사림을 대표하는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 초려 이유태, 시남 유계와 함께 ‘충청 5현’의 한 사람인 윤선거(尹宣擧, 1610~1669), 소론의 영수인 윤증(尹拯, 1629~1714) 등 많은 명현을 배출하였다. 

한편, 노종 오방파 중에서도 가장 번성했던 가계는 문정공 윤황의 직계이다. 윤황(尹煌, 1571~1639)은 대사간(감사원장)·동부승지(민정수석)·이조참의(행정안전부 차관보) 등을 역임한 인물로, 윤황의 아래에서 윤훈거·윤순거·윤문거·윤선거 등이 배출되었다.


호서지방3대명문가270년이어온장맛일품 2


조선 후기 백의정승 윤증


명재(明齋) 윤증(尹拯, 1629~1714)은 윤선거의 장남으로, 조선 후기 대표적인 성리학자이며 예학자이다. 일찍이 벼슬에 대한 뜻을 버리고 과거에도 응시하지 않았으며, 평생 학문을 연마하여 백의정승이라고 불린다. 실제로 숙종이 이조참판(행정안전부 차관)과 공조판서(국토건설부장관), 우의정(국무총리급) 등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사양하여 왕이 매우 애석하게 여겼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왕을 직접 보지 않고도 재상의 지위에 오른 사람은 오직 윤증뿐이었다.

직접 관직에 나아가지는 않았으나 정치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상소와 편지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였으며, 백의정승으로서 그를 지지하는 선비들에 의해 소론의 영수로 추대되어 정국을 이끌었다. 


종손 윤완식씨가 명재고택을 소개하고 있다. /명재고택

▲ 종손 윤완식씨가 명재고택을 소개하고 있다. /명재고택


문중교육과 종학당


조선시대 교육기관은 공립으로는 성균관과 향교, 사립으로는 서원과 서당이 있었다. 그런데 유력 사대부가에서는 과외 형식의 사교육을 주로 하였으며, 파평윤씨 노종파의 경우 자녀들의 효율적인 교육을 위해 문중 서당인 종학당을 세웠다.종학당은 노성 파평윤씨 문중 자제와 내외 친척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과거 준비와 강학, 학문토론 등이 이루진 곳이다. 이곳은 윤순거(尹舜擧, 1596~1668)가 동생인 윤원거, 윤선거와 함께 종약과 가훈을 제정하고 1628년에 설립하였다. 종약에는 종학당의 교육 지침과 운영에 관련하여 “약 10세 이상의 자제를 모두 한 당에 모아서 스승을 세우고 글을 외우게 하고 읽게 한다. 학업과 학예를 갈고 닦게 하여 반드시 인재를 길러내는 일이 필요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종학당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윤증이 3대 학장에 부임하면서부터이다. 윤증은 교육과정인 「초학획일지도」(1680)와 학문의 방법인 「위학지방도」(1701)를 제정해 종학의 운영 체계를 확립하였다. 초학획일지도에는 일용(하루에 할 일)·야매(밤에 잠자는 것)·지신(몸가짐의 방법)·사물(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독서지서(독서의 순서)·독서지법(독서의 방법) 등이 포함되어 있다. 위학지방도에는 종학당의 교육 목표가 잘 드러나는데, 뜻을 세우고 항상 공경하는 자세를 실천하여 덕성을 함양하고, 강학과 자기 성찰을 행하여 도학공부가 실질에 힘쓸 것을 당부하였다. 이처럼 파평윤씨 노종파가 명문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종학당에서 이루어진 체계적인 교육에 힘입은 바가 컸다. 파평윤씨 노종파 문과급제자는 총 46명인데 이 중 상당수가 종학당에서 배출되었으며, 17세기 초반 호서지역을 대표하는 문중 교육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에도 교육 및 체험의 장소로 활용하는 등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제사는 엄정하되 간소하게”

윤증 선생의 “제사는 엄정하되 간소하게 하라”는 유지에 따라 이후부터 그 유래가 없을 정도로 간소하게 치러져 왔으며 현재까지도 일관되게 지켜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이미 제삿날을 양력으로 준수해 오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매년 3월 16일 기제사, 11월 첫째 주 일요일에 시제를 지낸다. 윤증의 유언에 따라 제사상차림은 매우 간소한데, 대추·밤·감 등 3색의 과일 외 다른 과일이나 과자류를 일절 올리지 않고, 나물도 한 접시에 3색 나물을 한 번에 담아 놓는다. 어물인 조기는 단 한 토막만을 목기에 올려 쓴다.

윤증 종가 음식은 대부분 ‘교동전독간장’으로 간을 한다. 전독의 ‘독’은 항아리를 의미하고, ‘전’은 종부 대대로 전해 내려온다는 뜻으로 일종의 씨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종손 윤완식씨의 누이인 윤경남씨에 따르면 270여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 한다. 이 특별한 장맛을 이어온 음식으로 떡전골·장김치·가지김치·노성게장·깻잎장아찌·청태자반 등이 유명하다.


종녀 윤경남씨와 종가음식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명재고택

▲ 종녀 윤경남씨와 종가음식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명재고택



명재고택과 문화체험 프로그램 운영


현재 파평윤씨 문성공파 윤증종가의 12대 종손은 윤완식(1956~)씨이다. 윤완식씨는 평소 종가문화와 고택 보존·활용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한옥체험업협회·충청종가협의회·한국고택문화재소유자협의회·한국종가유네스코등재추진협의회·문화재돌봄센터 등 종가문화 및 지역문화재 관련 비영리단체에서 대표 또는 주요 임원으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또한, 윤증고택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2019년부터 국가유산청(문화재청)에서 후원하는 ‘고택·종갓집 활용 사업’과 ‘생생문화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으며, 한옥스테이, 인장만들기, 종가음식 만들기, 풍류음악회, 전통혼례 등을 체험할 수 있다. 특히 2022년부터 고택 사랑채 앞마당에서 한복패션쇼를 개최하여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명재고택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면 누리집(http://www.myeongjae.com) 및 예약(☎041-735-1215)을 통해 가능하다.
/서흥석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유교문화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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