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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왕이 다니던 길'을 걷는다. _ 어로(御路)

옛 온양의 중심을 찾아서 (구온양)

2023.12.09(토) 06:57:55 | 유정민 (이메일주소:mm041@daum.net
               	mm041@daum.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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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양군 지도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자료 : 1872년 제작)


온양군(溫陽郡)은 온수현(溫水縣)이 세종 23년(1441)에 승격된 후로 약 600년 동안 불리어온 지명이다.
과거 관아가 있던 온양의 중심지는 속칭 '구온양'이라 하는데, 현재 아산시 온양 6동에 포함되어 있고, 이전에는 읍내리·읍내동·온주동 등으로 불렸다. (현재 아산시민들은 '구온양'이란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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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양군 지도


옛 지도를 살피던 중 온양행궁(현 온양관광호텔)을 찾게 되었고, 그 속에서 어로(御路)라는 한자를 만났다.
御(거느릴 어), 路(길로)라는 한자는 '임금이 다니던 길'을 말하는데, 옛 온양에 어로가 있던 이유는 조선 태조 때부터 임금들이 온양을 찾아 온정욕(溫井浴)을 통하여 휴양 및 심신의 치료를 하였고, 세종이 온양행궁을 세웠다고 한다.

 

왕이다니던길을걷는다어로 1

▲ 옛 온양 지도


부족한 지식이나마 지도를 살펴보니 방위 표시가 있고, 빨간색 길은 어로, 파란색 길은 하천을 표시하고 있는데, 아는 장소를 지도에 표시하고 어로를 빨간색 점선으로 그리고 나니, 이제 좀 보기 쉽게 되었다.
막연했던 한자어의 뜻과 의미를 찾게 되니 그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동(動) 한다.

자주 다니는 길이지만, 오늘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왕이 다니던 그 길(御路)'를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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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종합운동장


옛 온양으로 직접 가도 되지만, 산책을 겸하여 이순신종합운동장 뒤편의 연산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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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주길


아산둘레길 온주길을 따라 옛 온양(구온양)과 어로(御路)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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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온양(이하 구온양)


온양의 진산인 연산을 넘어서니 아래로 보이는 구온양은 남쪽으로 칠승 팔장(7정승, 8장군 배출)의 기운을 담은 설화산(문필봉)을 바라보며 자리한다. 온양 옛 지도를 살펴보면 향교가 있고 그 옆으로 동헌이 자리하고 있으며, 지금은 흔적이 없지만 무학당, 향청 등 많은 부속 건물을 거느린 관아가 있던 이곳이 온양군의 중심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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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온양 마을 길


한적한 마을 길을 따라 온주아문까지 잠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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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로 1


천안을 지나 모산(배방읍)을 거쳐 이곳 구온양까지 이어진 어로는 옛 온양 동헌의 관문인 온주아문을 만나며 계속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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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주아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호)


조선시대 온양군의 관아 건물로 1871년에 세워졌으며, 위층은 누각이고 아래층은 통로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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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헌


온주아문의 통로를 지나면 정면으로 동헌이 보이는데, 조선시대 온양군 동헌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주재소로, 광복 후에는 파출소, 이후 온주동 동사무소로 사용된 역사의 현장이며, 1993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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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 발굴조사


현재는 온주아문과 동헌 지역 유적지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관람이 제한되었는데, 옛 지도에 그려진 건물들의 흔적이 나오고 있을 것이란 상상을 해본다.

(동네분께 들은 이야기로, 청동기시대의 돌도끼를 시작으로 삼국시대의 백제토기 편과 기와 편, 통일신라시대의 인화문 토기, 조선시대 분청사기 편, 백자 편, '관(官)'명의 흔적이 있는 기와 편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동헌 건립 이전부터 꽤 번성했던 오랜 역사를 지닌 고을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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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산시 읍내동 당간지주 (보물 제537호)


온주아문을 지나 어로를 따라 걸으면 보물로 지정되어 관리하는 당간지주를 만난다.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당간을 지탱해 주는 두 개의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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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로 2


고려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당간지주가 있다는 것은 근처에 고려 시대에는 큰 사찰이 있었음을 유추하게 한다. 이번 유적 발굴조사에서 사찰의 흔적이 나올지 기대하면서 어로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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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마비 (온양향교)


홍살문 옆에 세워진 하마비(下馬碑) 너머로 오랜 역사의 온양향교가 자리한다. 과연 온양행궁을 다니던 왕들은 이 하마비 앞을 지나면서 말이나 가마에서 내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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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양향교 (충청남도 기념물 제115호)


온양향교는 원래 아산시 법곡동에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에 불타 없어졌다. 광해 2년(1610) 봄에 현재의 위치로 복원하였으며, 그 후 여러 번 보수하였다.  - 안내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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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내문


안내문 아래에 보면 온양향교를 관리하는 분의 연락처가 있어서 관람 요청을 할 수 있으나, 방문 당일에는 담당자가 외출 중이어서 아쉽게도 향교에는 들어가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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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로 3


향교를 돌아 나오면 큰 도로를 만나고, 아파트 사이의 길을 따라 온양행궁으로 향하는 어로를 걷는다.
문득 '그 옛날 이 어로는 얼마만큼의 넓은 길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며 작은 답을 생각해낸다. 바로 그 시대의 운송 수단이었던 마차나 수레 두 대가 교차할 정도의 넓이 정도이지 않았을까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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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로 4 (청댕이고개)


아파트 단지를 지나자 고갯길이 나오는데, 이곳은 가난한 며느리의 효심 이야기가 전해지는 청댕이고개이다.

(어느 해 흉년이 들어 온 식구가 굶어죽을 지경이 되자 며느리가 구걸에 나섰으나 며칠이 지나도 쌀 한 톨 구하지 못하다가, 어느 고개에 이르러 그곳에 있는 바위에 먹을 것을 구하는 소원을 빌었다. 이때 지나가던 개가 생쌀과 보리쌀을 토해내고 있었고, 며느리는 꺼림칙했지만 이것을 모아 죽을 쑤어 시부모께 올렸는데, 갑자기 천둥번개가 내려쳤다. 며느리는 개가 토한 것을 시부모께 드린 것이 죄스러워 소원을 빌었던 그 바위에 가서 이번에는 회개 기도를 하였다. 이때 벼락이 내려 바위를 두 조각으로 갈랐고 그 속에서 금덩어리가 나왔다. 이후 며느리는 시부모를 잘 공양하며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훗날 며느리의 효성을 기리어 이 고개를 '청동고개, 천둥고개'라 불렀는데 와전돼 오늘날 '청댕이고개'가 되었다고 전한다.)

왕이다니던길을걷는다어로 2

▲ 어로 5 (온양행궁을 향하여)


옛 온양(구온양)에서부터 따라가 본 어로(御路)는 이곳을 지나 온양행궁을 향하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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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로 (아산 둘레길 안내도에서)


지도 위에 옛 온양(구온양)에서 시작하여 온양행궁까지의 어로를 다시 한번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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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수유 열매

(산수유 열매는 매운맛이 나고 성질이 따뜻한 약재로 알려져 있다.)

따뜻한 고을이라는 뜻의 온주(溫州) 골로도 알려진 온양(溫陽)은 온천(溫泉)의 물처럼 따뜻함이 가득한 곳이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는데 이웃과 가족에게 따뜻함이 전해지는 마음을 나누면서, 온양행궁을 나섰던 왕처럼 우리도 그 길을 따라 걸어보면 어떨까?


온주아문 충남 아산시 온주길 27

온양향교  충남 아산시 외암로 141-11

당간지주 충남 아산시 읍내동 2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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