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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우리나라 최초 연시조 ‘강호사시가’의 배경은?

배방산에 금곡천 맑은 물이 흐르는 '새실마을'

2023.07.10(월) 16:32:32 | 장군바라기 (이메일주소:hao0219@hanmail.net
               	hao021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연시조 '강호사시가'의 배경인 아산시 배방읍 '새실마을' 전경.

▲ 우리나라 최초 연시조 '강호사시가'의 배경인 아산시 배방읍 '새실마을' 전경.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맞춰 시를 이어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연시조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를 기억하시나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릴 만큼 국문학적으로 의의가 높은 작품인데 이 시조의 배경이 충남 아산시 배방읍 ‘새실마을’입니다.

아산시 배방읍 맹씨행단의 쌍행수.

▲ 아산시 배방읍 맹씨행단의 쌍행수.

   
새실마을은 조선의 대표적인 청백리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이 강호로 낙향해 유유자적 자연경관을 즐기며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던 곳입니다. 아산 오봉산을 배경으로 북풍을 막아주는 배방산이 병풍처럼 둘러치고 금곡천 맑은 물이 당긴 활 모양으로 흐릅니다. 일반에게는 ‘맹씨행단(孟氏杏壇)’으로 더 알려져 있는데 계절마다 바뀌는 이곳의 풍광을 배경으로 탄생한 우리나라 최초의 연시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산시 배방읍 맹씨행단 전경.

▲ 아산시 배방읍 새실마을 맹씨행단 전경.

   
춘사(春詞)
강호에 봄이드니 미친흥이 절로 난다
탁료계변(강변에서 마시는 막걸리)에 금린어(쏘가리) 안쥐로다
이 몸이 한가오옴도 역군은 이샷다.
 
하사(夏詞)
강호에 녀름이 드니 초당에 일이 업다.
유신한 강파난 보내나니 바람이다
이 몸이 서늘해옴도 역군은 이샷다.
 
추사(秋詞)
강호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져 있다
소정에 그믈 시러 흘리 띄여 더져 두고
이 몸이 소일해옴도 역군은 이샷다,
 
동사(冬詞)
강호에 겨월이 드니 눈 기?자히 남다
삿갓 빗기 쓰고 누역으로 오슬 삼아
이 몸이 칩지 아니해옴도 역운은 이샷다.

우리나라 최초 연시조 '강호사시가' 설명문. 고불 맹사성 기념관.

▲ 우리나라 최초 연시조 '강호사시가' 설명문. 고불 맹사성 기념관.

   
이처럼 시문에 능하고 음률에 밝은 맹사성은 관습도감 제조로서 음악을 정비하고, 악사와 악공을 교육하고 악기를 손수 만들었을 정도였는데 항상 피리를 가지고 다니며 매일 3~4곡씩 연주해 외지 손님들이 마을 입구에서 피리 소리로 그가 집에 있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맹사성의 옥피리. 고불 맹사성 기념관.

▲ 맹사성의 옥피리. 고불 맹사성 기념관.

   
맹씨행단을 찾으면 500여 년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켜온 쌍행수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요즘 같은 한여름은 진초록의 당당함으로,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푸근함이 고택을 넉넉히 감싸 안고 있습니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고 최근 외과수술과 큰 치료를 받기도 했지만, 지금도 가지마다 은행이 넉넉히 열리고 위풍당당한 자태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맹사성이 집적 심고 단을 만든 맹씨행단 쌍행수.

▲ 맹사성이 집적 심고 단을 만든 맹씨행단 쌍행수.

   
아마도 공자(孔子)가 살구나무 아래 단상을 만들고 제자들과 학문을 논했던 것처럼, 맹사성도 은행나무를 심어 행단을 만들고 유생들과 토론 수업을 벌이면서 강호사시가를 지은 것은 아닌가 상상해 봅니다. 이처럼 행단은 단순히 오래된 은행나무가 심어진 것만이 아니라 학문의 터전을 뜻하기도 합니다.

아산시 배방읍 맹씨행단의 석축.

▲ 아산시 배방읍 맹씨행단의 돌담.

   
그런데 공자의 살구나무는 왜 우리나라에서 은행나무로 바뀌었을까요? 우리나라 유학자들이 공자의 행단이 살구나무였는지 몰랐을까요? 아닙니다. 저서나 그림에서 행단에서 살구나무로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상황에 맞게 은행나무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행단(杏壇)’을 살구(杏)나무와 은행(杏)나무의 차이를 두지 않고 있습니다.

아산시 배방읍 새실마을에 돌담으로 둘러 쌓인 맹사성고택.

▲ 아산시 배방읍 새실마을에 돌담으로 둘러 쌓인 맹사성고택.


맹씨고택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소박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민가로도 유명합니다. 고려 말기 최영 장군이 지어 손주사위인 맹사성에게 물려준 것으로 기둥에 들보를 얹고 지붕을 구성하는 고려말기 건축양식을 그대로 갖추고 있는데 당시 살림집에서 사용된 양식으로는 현재 유일하게 남아(사적 제109호) 보호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민가인 맹사성고택.

▲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민가인 맹사성고택 정면.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민가인 맹사성고택 우측면.

▲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민가인 맹사성고택 좌측면.

   
대청마루에는 6개의 문짝이 있는데 가운데 한 칸만 사람이 드나들 때 사용하고 나머지는 벽의 개념입니다. 겨울이면 문을 내려 닫아 대청마루를 실내로 사용하고, 여름이면 모두 걷어 올려 천정에 걸어 개방감을 확대하는 다목적 공간입니다.

고려시대 살림집의 원형을 간직한 맹사성고택.

▲ 고려시대 살림집의 원형을 간직한 맹사성고택.

   
왕이 친필로 내리는 ‘어필사액’을 받기도 했습니다. 조선 영조는 온양행궁에 머무르며 ‘충효세업(忠孝世業)’ 어필사액을 내리는데 ‘충효를 대대로 힘써 왔으며, 청렴과 결백은 가문의 명예’라는 의미를 담겨 있습니다. 맹사성 후손들이 현판으로 새겨 현재 고불맹사성기념관에서 공개하고 있습니다.

조선 영조가 직접 써 맹사성 집안에 하사한 어필사액 '충효세업'

▲ 조선 영조가 직접 써 맹사성 집안에 하사한 어필사액 '충효세업'

  
본채의 뒤편에는 맹사성과 부친 맹희도, 조부 맹유 등 3대의 위패를 모신 ‘세덕사’가 있습니다. 맹사성의 부친과 조부는 ‘두문동 72현’으로 멸망한 고려에 대한 충성심에 개국한 조선에 출사를 거부했습니다. 이들이 두문동에 들어가면 나오지 않아 ‘두문불출(杜門不出)’의 고사성어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해마다 10월 10일 맹사성 탄신에 기념하는 숭모제가 열립니다.

맹사성과 그의 부친 조부를 모신 사당 '세덕사'

▲ 맹사성과 그의 부친 조부를 모신 사당 '세덕사'

   
조선 세종대왕 시기 3정승인 맹사성, 황희, 권진(혹은 허조)이 함께 지었다는 ‘구괴정(九槐亭)’도 있습니다. 이들 정승은 각자 3그루씩 9그루의 느티나무를 심고는 가운데 정자를 짓고 국사를 논했다고 ‘삼상당(三相當)으로도 불립니다. 현재는 9그루 가운데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7그루는 수명을 다했고, 2그루만 허리를 굽히고는 철제 지주에 의지해 흥망성쇠의 역사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맹사성 황희 권진(혹은 허조) 등 3정승이 세운 구괴정.

▲ 맹사성 황희 권진(혹은 허조) 등 3정승이 세운 구괴정.


세월의 무게에

▲ 500여 년 세월의 무게에 허리를 숙인 구괴정 느티나무. 


행단의 맞은편은 고불 맹사성기념관과 기념공원이 있습니다. 공원의 동상은 맹사성이 검은소를 타고 피리를 부는 장면입니다. 정승을 지내면서도 낡은 옷을 입고, 고관들이 타고 다니던 가마나 말을 사용하지 않은 청백리로 관직 수행 능력과 청렴, 근검, 도덕, 경효, 인의 등의 덕목을 겸비한 조선시대 이상적 관리상입니다. 고려에도 청백리가 존재했지만, 조선시대 제도화되어 의정부에서 선발해 후세에 귀감으로 삼았는데 대표적 인물로 맹사성을 비롯해 박수량, 최만리, 이현보 등이 있습니다.

고불 맹사성 기념공원의 검은소를 타고 있는 맹사성의 모습.

▲ 고불 맹사성 기념공원의 검은소를 타고 있는 맹사성의 모습.

   
기념관에서 전하는 일화에 따르면 맹사성은 우의정이 되어서야 겨우 비가 새는 낡고 작은 집을 장만했는데, 병조판서 황상이 그의 집을 방문했다가 갑작스레 내린 비에 방안에서 관복이 비에 젖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부끄러움에 신축하던 바깥 행랑채를 허물고 다시는 집을 늘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공주 목사로 재직할 때에는 관아를 새로 짓는 대규모 건축사업에도 백성들은 그 사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할 만큼 민폐를 끼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맹사성에게 높은 벼슬을 바라던 많은 관료들이 검소한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실수했던 일화도 여러 가지가 전해집니다.

고불 맹사성 기념관 전경.

▲ 고불 맹사성 기념관 전경.



아산 맹씨 행단(맹사성고택)
충남 아산시 배방읍 행단길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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