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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송학리 마애여래좌상'을 소개합니다!

2023.03.11(토) 02:09:20 | 엥선생 깡언니 (이메일주소:jhp1969@naver.com
               	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마애불(磨崖佛)은 천연 암벽에 부조(浮彫)나 선각(線刻) 등으로 새긴 불상 양식을 말하며, 인도에서 발생하여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 전해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백제시대의 작품인 서산마애삼존불을 비롯해 국보로 지정된 것이 28개가 있고, 경주 남산불적(佛跡)에 마애불군 외 각지에 마애불이 분포하고 있다는데요, 오늘은 마애불군도 아니고 국보는 더더욱 아니다 보니 그리 알려지지는 않은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에 소재한 '마애여래좌상'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공주시 탄천면 송학 1리 마을 전경

▲ 공주시 탄천면 송학 1리 마을 전경
 

공주시 탄천면 송학 1리 마을 초입 전경

▲ 공주시 탄천면 송학 1리(公州市 灘川面 松鶴 1里) 마을 초입 풍경


'마애여래좌상'이 자리한 공주시 탄천면 송학 1리는 탄천면 행정복지센터에서 북쪽으로 약 2km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송림이 우거진 송곡과 학들이 날아다닌다는 학동이 있던 마을입니다. 하천 정비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금강 수위가 높아지면 물이 범람하던 지역으로 수백 년 전에는 배가 들어왔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재는 경지 정리를 마쳐 홍수 피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네요.

공주시 탄천면 송학 1리 마을회관 전경

공주시 탄천면 송학 1리 마을회관 (공주시 탄천면 황새울길 18)


소나무 위에 황새 2마리가 앉아 있는 그림이 그려진 송학 1리 표지석 뒤로 보이는 다리를 건너니 마을회관이 나타납니다. 마을회관에서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니 채 20보도 안 되는 거리에 제법 큰 나무 한 그루가 보이던데요, 그 대각선 방향에 학림길과 황새울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었습니다. 1차 목적지인 '광명사'를 찾아가기 위해 첫 번째 갈림길에서 이정표가 가리키는 황새울길로 들어섰습니다.

공주시 탄천면 송학 1리 마을에서 광명사를 찾아가는 고갯길

▲ 공주시 탄천면 송학 1리 마을회관에서 광명사를 찾아가는 고갯길


송학 1리 마을회관에서 광명사를 찾아가는 길은 계속해서 오르막길이 이어집니다. 얕은 고개를 넘다가 막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곳에서 주위를 살피니, 좌측에 은행나무에 둘러싸인 작은 둠벙이 보이고 그 앞쪽으로 주황색 지붕의 가옥 한 채가 보였습니다. 울타리에 연등이 걸려 있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일반 주택으로 착각할 뻔했는데요, 그곳이 '송학리 마애여래좌상'을 찾아가기 위해 랜드마크로 삼은 광명사였습니다.

공주시 탄천면 송학 1리의 광명사가 보이는 풍경

▲ 공주시 탄천면 송학 1리의 광명사가 보이는 풍경 


길을 알고 가면 30~40분이면 충분히 돌아보고 올 수 거리지만, 초행길인 분들은 헤매기 십상이라 광명사 주지 스님께 주차 허락과 함께 길 안내를 꼭 받으시길 추천해 드려요. 광명사 주지 스님께서 부재중인 경우에는 광명사 못미처에서 본 둠벙의 맞은편 공터에 차를 세워 두고 걸어가시면 좋을 듯합니다.
 

공주시 탄천면 송학 1리의 광명사 전경

공주시 탄천면 송학 1리의 광명사 (공주시 탄천면 황새울길 91/ 041-858-2378) 전경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매봉산과 주변 마을 전경

▲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매봉산과 주변 마을 전경


표지판이나 편액이 없어도 마을 초입에서 광명사를 찾는 데까지는 수월한 편인데요, 장소를 정확히 알고 있는 동행인이 없는 경우에는 광명사에서 '송학리 마애여래좌상'이 자리한 곳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 기억해 주세요. 마을 분들께 길을 묻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절대 광명사에서 마을로 진입하지 말아 주세요.

광명사에서 마애여래좌상불을 찾아가는 길

▲ 광명사에서 '송학리 마애여래좌상'을 찾아가는 길1


자, 그럼 인적이 드문 황새울길 광명사에서 '송학리 마애여래좌상'으로 가는 지름길을 알려 드려 볼게요. 광명사 입구에는 큰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은행나무와 높이가 엇비슷한 전신주가 서 있는데요, 그 전신주 아래쪽에 마애불까지 이어지는 좁은 출입로(?)가 나 있습니다.

송학리 마애여래좌상불을 찾아가는 길1

▲ 광명사에서 '송학리 마애여래좌상'을 찾아가는 길2
 

광명사에서 마애여래좌상불을 찾아가는 길3

▲ 광명사에서 마애여래좌상불을 찾아가는 길3
 

송학리 마애여래좌상불1

송학리 마애여래좌상(松鶴里 磨崖如來坐像/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 산 70-1)1


출입로에는 앞서간 농기계의 바큇자국이 나 있었는데요, 마치 가이드를 자청한 듯하여 바큇자국을 따라 올라가 봤습니다. 주변에 눈길을 주니 예쁜 꽃도 싱그러운 신록도 찾아볼 수 없어 삭막했지만, '풀과 관목이 무성했다면 길 찾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란 데 생각이 미치자 서둘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우회하여 위쪽으로 걸어 오르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송학리 마애여래좌상불2

▲ 송학리 마애여래좌상 2


송학리 마애여래좌상은 약 3m 내외의 바위 중앙에 좌상으로 조성되어 있었는데요, 서산 마애삼존불처럼 예술미와 정교함을 갖춘 마애불은 아니었습니다. 안내문을 읽어 보니, 공주시 향토문화유적인 '송학리 마애여래좌상'은 신체적 특징과 도식화된 법의(法衣,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있던 옷), 상호의 표현 등을 고려해 볼 때 고려 중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네요.


참고로 불교 국가였던 고려는 지방에 따라 불상의 모양이 다양하다고 하는데요, 고려 초기에 지방 호족들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유행처럼 불상을 만든 데서 그 원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하네요. 당시 지방 호족들이 앞다투어 불상을 제작하다 보니 석공이 부족해졌고, 지방 호족들은 지방의 석공들을 불러 불상을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요. 그 결과 강한 기상은 느껴지나 예술성이나 세련미가 떨어지는 개성적인 불상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송학리 마애여래좌상불3

▲ 송학리 마애여래좌상 3


송학리 마애여래좌상의 광대가 돌출된 얼굴을 살피니, 눈은 일직선으로 가늘고, 입술은 두툼하게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흔히 서산 마애삼존불은 빛의 각도에 따라 다른 표정이 보인다고들 하는데요. 사견이나 송학리 마애여래좌상도 우측면에서 바라볼 때 정면이나 좌측면에서 관찰했을 때보다 훨씬 부드러운 표정이 엿보였어요.

송학리 마애여래좌상불4

▲ 송학리 마애여래좌상 4
 

송학리 마애여래좌상불5

▲ 송학리 마애여래좌상 5


몇몇 자료를 찾아보니 '송학리 마애여래좌상'은 신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조각한 양손의 엄지손가락이 모두 접혀 있는 특징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 외에 왼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얹어 놓은 다음에 오른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놓고 앉는 '불좌(佛坐, 여래좌(如來坐), 길상좌(吉祥坐), 항마좌(降魔坐)라고도 함)'를 하고, 결가부좌한 다리에는 7개의 선으로 의문을 표현한 것으로 적고 있었습니다.

공주시 탄천면 송학 1리 마을의 봄을 맞은 들녘

▲ 공주시 탄천면 송학 1리의 봄을 맞은 들녘


'송학리 마애여래좌상'을 둘러보고 마을을 나오며 새삼 경지 정리가 잘 된 넓은 들녘을 보게 되었습니다. '강물이 범람하던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불법(佛法)을 빌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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