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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

도시락·물통폭탄 건네받고 홍구공원으로

대한의 청년, 윤봉길윤봉길의사 상하이 의거 90주년12) 상해의거일 아침

2022.10.04(화) 15:00:03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윤봉길의사가 김구로부터 받은 회중시계(보물 568호)

▲ 윤봉길의사가 김구로부터 받은 회중시계(보물 568호)


드디어 4월 29일이 밝았다. 아침 일찍 김구가 찾아왔다. 윤봉길은 김구와 함께 화룡로 원창리 12호의 김해산 집으로 가서 태연자약(泰然自若)하게 아침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자 7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윤봉길은 시계를 풀러 김구에게 드리며 자기 시계는 1시간밖에 소용없다면서 시계를 바꾸자고 하였다. “제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6원을 주고 구입한 것인데, 선생님 시계는 불과 2원짜리입니다. 저는 이제 1시간 밖에 더 소용없습니다.”

윤봉길은 김구로부터 도시락과 수통형의 폭탄을 건네받고 가지고 있던 돈을 꺼내 김구의 손에 쥐어 주었다. 김구는 자동차를 탄 윤봉길에게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라고 목메인 소리로 작별했다. 윤봉길은 차안에서 김구를 향하여 머리를 숙였다. 자동차는 엔진소리를 울리면서 홍구공원을 향해 질주하였다. 오전 7시 50분경 홍구공원 입구에서 차를 내렸다. 윤봉길은 공원의 정문을 향했다. 중국인 문지기가 입장권을 내라고 하였다. 윤봉길은 입장권이 없었지만, 일본어로 ‘나는 일본인이다. 입장권 따위가 왜 필요한가’ 하고 그대로 들어갔다. 윤봉길은 사전 답사에서 이른 시간에는 중국인 수위가 경비한다는 것을 알았다. 입장권이 없는 상태에서 일본인으로 위장해야 했다. 당시 일본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양복과 스프링코트를 입었다. 거기에 일본 보자기로 싼 도시락과 일본 수통을 메었으니 중국인 경비의 눈에는 틀림없이 일본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윤봉길은 공원에 들어가 식단의 뒤편으로 자리 잡았다. 이틀 전에 보아 둔 장소였다. 윤봉길은 거사 전날에도 홍구공원 앞의 중국집 2층에 올라가 일본군의 예행 연습을 지켜봤다. 행사장의 중앙에 7,8척 높이의 식단이 보였다. 식단 위에 10여개의 귀빈용 의자가 있었고, 식단 앞에는 학생과 군인, 그 주위에 민간인 자리를 배치하였다. 식단 뒤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경비하는 헌병만을 드문드문 배치해 놓은 것을 보았다. 식단의 뒤쪽에 자리를 잡은 것은 경계가 비교적 허술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거사 시각도 식이 끝날 때로 잡았다. 그때쯤이면 경비원들의 긴장이 풀어질 것으로 보았다. 거사의 성공을 위한 치밀한 작전 계획이었다. 

홍구공원에서 개최된 기념식은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천장절과 상해사변의 승리를 축하하는 전승축하식을 겸했다. 공원의 정문은 화려한 색깔의 천으로 장식되었고, 일본 해군기와 육군기를 게양하였다. 정문 옆에는 홍색 천에 ‘경축만세 만만세’라고 써 내걸었다. 행사장에 들어오는 일본인들은 손마다 일장기를 들고 공원으로 몰려들었다. 상해거주 일본인 1만 명이 입장했다. 거기에 일본군 제9사단과 해병대 병력 1만 2천명, 그 외에 각국의 사절과 각계 초청자를 합하여 3만여 명의 군중이 법석을 이루었다.
/김상기 충남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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