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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충청감영 역사·문화를 찾아 떠난 공주 공산성

2022.08.29(월) 23:59:29 | 엥선생 깡언니 (이메일주소:jhp1969@naver.com
               	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제1회 충청감영역사문화축제 포스터

▲ 제1회 충청감영역사문화축제 포스터


오는 9월 3일(토)부터 9월 5일(월)까지 3일간 공주 공산성 일원에서 제1회 충청감영 역사 문화축제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충청감영을 테마로 축제가 열린다는 것도 생경했지만, 충청감영 관찰사 부임, 이임 행차 재현, 향시 재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공산성에서 열린다는 것도 고개를 갸웃하게 했습니다. 충청감영지였던 공주시에서 공산성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하여 걸음을 옮겨 보았습니다.

공주 공산성 금서루가 보이는 풍경

▲ 공주 공산성 금서루가 보이는 풍경


충청감영은 1603년(선조 36)에 충주에서 공주로 이전되었는데요. 1602년 유근이 공산성을 수축하고 이듬해에는 감영을 공산성 안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산성 안의 충청감영은 성이 협소하여 오래가지 못하고 1년 만에 다시 구영(舊營)으로 돌아왔다고 하네요.
1646년(인조 24)에는 충청도관찰사 임담이 구영에 별도의 방어시설이 없다는 이유에서 다시 쌍수산성으로 감영을 옮겼으나, 지방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에는 문제가 많아 1653년(효종 4)에 충청도관찰사 강백년(姜栢年)이 감영을 대대적으로 복원하여 또다시 옛 터로 감영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감영이 지금의 제민천 옆에 있어서 매년 관아가 홍수로 물에 잠기고 건물이 부서지는 지경에 이르자 1703년 감영 이전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감영은 현재 공주사범대학교 부설고등학교가 자리한 봉황산 아래에 자리 잡게 되었고, 1932년 대전으로 도청이 이전할 때까지 변함없이 존속하였으나, 현재 충청감영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공주 공산성 성곽에서 바라본 금강교가 보이는 풍경

▲ 공주 공산성 성곽에서 바라본 금강교가 보이는 풍경


공산성의 서문인 금서루를 지나 성곽길을 따라 걷다 보니, 공주시의 강남·북을 연결하는 금강교와 백제대교가 보입니다. 얼마 전 제2 금강교 건설 계획이 문화재 현상 변경 재심의를 최종 통과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9월 3일(토) 13:00~14:00와 9월 4일(일) 17:00~18:00에 전문 배우와 시민이 함께하는 관찰사 행차 재현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는데 어디에서 행렬이 시작되는지, 금강교를 건너게 될지 어떨지, 행렬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지 많은 것들이 궁금하고 너무 기대됩니다.

공산정이 보이는 풍경

▲ 공산정이 보이는 풍경


금강교가 가장 잘 보이는 성곽길을 떠나 위쪽으로 오르니, 공산정이 보입니다. 늘 공산성에 오르면 공산정에 올라 공북루와 청벽이 보이는 금강을 내려다보곤 했는데, 공북루 복원 공사가 진행되면서 '옥에 티'처럼 보이는 공북루를 애써 외면하고 싶어서 공산정에는 올라가지 않고 있습니다.
공북루(公北樓)는 1602년 충청 관찰사 유근이 지었다는데요, 그는 시에서 "중국의 소동파는 적벽강에서 놀았는데 지금 나는 창벽에서 논다(蘇仙赤壁今蒼壁,소선적벽금창벽)"라고 읊었다고 합니다.

공산 현감(公山縣監)으로 부임한 죽당 신유(竹堂 申濡)도 공주의 명승고적 10곳을 보고 지은 「후공주십경시(後公州十景詩)」가 있는데요, 그중 공북루를 보고 지은 시를 소개해 봅니다.
 

아름다운 문루 큰 강에 날아올라 솟구치니(麗?飛出大江干, 여초비출대강간)
북쪽 산들은 난간에 기대어 바라본다. (江北群山倚檻看, 강북군산의함간)
같은 색 구름이 천리 밖까지 떠 있으니(一色浮雲千里外, 일색부운천리외)
어디가 장안(서울)인지 알 수 없구나.(不知何處是長安, 부지하처시장안)
 

충청감영역사문화를찾아떠난공주공산성 1


공산성 내의 연지와 만하루가 보이는 풍경

▲ 공산성 내의 연지와 만하루가 보이는 풍경


공북루를 우회하여 다시 성곽길을 따라 걷다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곳에 멈춰 서서 보니, 충청남도 기념물인 연지(蓮池)와 만하루 정자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공산성 연지

▲ 공산성 연지


잉어 한 마리가 유영하고 있는 공산성 연지는 공산성 안에서 사용하는 물을 저장하던 연못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제시대에는 연지와 마주 보는 곳에 위치한 영은사 앞쪽에 연못이 있었으나, 1754(영조 30)에 지금의 자리로 연못을 옮겨 만들었다고 하네요.

공산성 내의 만하루

▲ 공산성 내의 만하루(1)
 

공산성 내의 만하루(2)

▲ 공산성 내의 만하루(2)


연지 위 제방 위에는 만하루 정자가 세워져 있는데요, 마지막 조선통신사의 정사로 일본을 다녀온 죽리 김이교(竹里 金履喬)의 조부인 김시찬이 충청감사로 부임했을 때 공산성 내 물이 없는 것을 고려해서 연지를 만들면서 만하루를 건축했다고 합니다.

공산성 내의 연지와 만하루 현판

▲ 공산성 내의 연지와 만하루 현판


만하루의 만하(挽河)는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세병마(洗兵馬)의 마지막 구절인 '안득장사만천하(安得壯士挽天河)'에서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하네요.

만하루에서 바라본 금강 전경

▲ 만하루에서 바라본 금강 전경


공산성을 찾은 전날 비가 내려 금강물은 물속이 전혀 안 보일 정도로 탁했는데도 만하루에서 내다본 금강과 그 주변 경관은 엄지 손을 치켜세우게 만들었습니다.

영은사 전경

▲ 영은사(靈隱寺) 전경


연지와 공산성 동쪽 누정인 만하루 맞은편에는 죽당 신유(竹堂 申濡)가 지은 「후공주십경시(後公州十景詩)」에 포함된 영은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공산지에 의하면 1455년(세조 3)에 창건했으며, 1616년(광해 8)에 승장을 두어 전국 사찰을 통괄했다고 적고 있다네요. 공주감영읍지에는 1784년 화재로 책판이 소실되었다는 기록이 있다는데, 언제 재건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영은사를 한눈에 담고 있으니, 아직 여름빛을 머금은 영은사에 가을 색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죽당 선생이 보았음 직한 근사한 풍경이 '짜잔!'하고 찾아올 듯합니다.
 

충청감영터에 복원한 포정사 문루

▲ 충청감영지에 복원한 포정사 문루


충청감영이 자리했다가 이전되기를 반복했던 공주 공산성에는 더욱 흥미로운 역사· 문화 관련 비화가 많을 듯한데요, 9월 3일부터 시작되는 제1회 충청감영 역사문화축제에서 차근차근 알아갈 생각입니다.
9월 2일부터 3일간 충청감영이 있었던 공주시 감영길과 제민천 일원에서는 2022년 공주문화재야행 '공주가 보고픈 밤'이 열린다고 하니, 낮에는 공산성에서 밤에는 감영길에서 충청감영의 역사와 문화를 다채롭게 체험하며 즐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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