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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청백리 대명사 맹사성 그의 삶에 얽힌 '전설'

왕권과 신권의 조화… 중용의 시대를 열다

2022.08.29(월) 14:58:30 | 장군바라기 (이메일주소:hao0219@hanmail.net
               	hao021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맹씨행단의 상징 쌍행수. 600년 세월을 지켜왔다.  ▲ 맹씨행단의 상징 쌍행수. 600년 세월을 지켜왔다.


조선은 절대군주 왕권(王權)과 사대부의 신권(臣權)이 충돌하곤 했는데요, 왕권이 강화되면 지금의 행정부처인 이조 등 6조가, 반대로 신권이 강화되면 영의정 등 삼정승의 협의체인 의정부 역할이 두드러지게 됩니다. 조선 최고의 부흥기를 이끈 세종은 집권 초기 선왕 태종 이방원을 이어 안정적 중앙집권을 강화했지만, 중기 이후 좌의정 황희와 우의정 맹사성을 등용하면서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이뤄나갑니다.
 
이 같은 중용의 시대에는 정승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는데요 조선 시대는 모두 400여 명의 재상이 배출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의정부 수장인 영의정을 거치지 않고도 명재상으로 수많은 설화를 남기며 후대에 추앙받는 이는 맹사성이 으뜸일 것 같습니다. 그의 역량과 학식 성품이 뛰어났기 때문일텐데 청백리의 대명사 맹사성의 고택을 찾아 기념관, 구괴정, 흑기총, 최영 장군과 인연 등 겸손하고 소박한 그의 삶에 얽힌 전설 같은 이야기를 살펴봤습니다.
 
맹씨행단 입구. 거목들로 가득하다.
▲ 600년 역사의 맹씨행단 입구. 왼쪽 건물은 문화해설사 사무실.

고불 맹사성(孟思誠.1360~1438) 고택은 ‘맹씨행단(孟氏杏壇)’으로 불립니다. 자신의 집에 은행나무를 심고 아래 단을 만들어 학문을 나누기 위해 만든 것으로, 기원은 중국 춘추시대 공자가 살구꽃이 필 즈음 마당의 살구나무 아래 단을 만들고 제자들을 데리고 나와 가르친 데서 유래하는데 살구나무 행(杏)자를 붙여 행단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맹씨행단 대문.
▲ 맹씨행단 대문과 사랑채.

시문과 음악에 능한 맹사성 역시 공자와 같은 목적으로 마당에 은행나무 두 그루를 마주 보도록 심고 아래 단을 쌓아 행단을 만들어 지역의 뜻있는 선비들과 학문을 논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맹사성이 심었다는 은행나무는 600년의 세월에 꿋꿋함을 잃지 않고 한해 5말가량의 은행을 거둘 정도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쌍행수(충남보호수 제8-91호)’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맹씨행단의 담장
▲ 맹씨행단의 쌍행수를 보호하다는 석축 단.

그런데 행단은 공자시대 살구나무인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은행나무로 대체되었을까요? 공자가 야외에서 제자를 가르칠 때는 비교적 크지 않은 살구나무로도 충분했지만, 유교가 기초학문이 되고 학생이 늘면서 자연스레 더 큰 나무가 필요했는데 수명이 길고 수목이 울창하고 한자로 같은 행(杏)자를 사용하는 은행나무로 대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맹시행단의

▲ 맹시행단 입구에서 바라본 내부 돌담장,


쌍행수에서 마당을 가로지르면 맹씨고택(사적 제109호)이 자리하는데 정면 4칸, 측면 3칸의 아담한 크기입니다. 가운데 두 칸은 넓은 대청이고, 양쪽에 날개처럼 온돌방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工’자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맹씨고택
▲ 국내에서 가장 오랜된 민간주택인 맹씨고택.
 
대청마루에는 6개 문짝이 있는데 한 칸만 사람이 드나들고 나머지는 창문 개념입니다. 겨울이면 창문을 내려 실내 공간으로, 여름이면 들어 올려 시원한 열린 공간으로 계절별 필요에 따라 공간을 적절히 활용했습니다. 집 뒤쪽으로 돌아가면 4개의 나무 문이 설치되어 있고 흙과 기와를 층층이 쌓아 올린 굴뚝 2개가 있습니다.
 
민씨고택의 들창문.
▲ 여름이면 대청 문을 올려 시원한 공간을 만든다. 

맹씨고택
▲ 맹씨고택 후면. 통나무 널판지 창이 설치되어 있다.
 
이 고택은 1330년대 지어져 고려 시대 형태를 간직한 우리나라 민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로도 유명하지만, 유래 역시 드라마틱 합니다. 맹씨세적에 따르면 원래 이 집은 고려의 충신 최영 장군이 지었지만, 그의 손녀 창원 최씨가 맹사성의 아내가 되자 손주사위에게 물려준 것이라고 합니다.
 
맹씨고택
▲ 맹씨고택의 초익공 양식의 기둥머리.
 
조선 개국의 당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고려멸망의 필연성을 강조해야 하고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을 평가절하시켜야 하는데 죽음으로 고려를 지키려 한 최영 장군의 집을 물려받은 손주사위 맹사성을 조선왕조가 중용하기에는 여러 정치적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맹사성 집안 역시 고려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 본가와 처가 모두가 반향인 셈입니다.
 
맹사성과 부친 조부 3대의 위패를 모신 세심당.
▲ 맹사성과 부친 조부 3대의 위패를 모신 세덕사.
 
본채를 정면으로 오른쪽 뒤편에 세덕사가 있는데 맹사성과 그의 부친 맹희도, 조부 맹유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그의 부친과 조부는 조선 건국을 반대하는 ‘두문동 72현’입니다. 고려가 멸망하자 고려 태학의 72명이 출사를 거부하고 두문동에 들어가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는 고사성어의 배경이기도 합니다.
 
맹씨고택 세덕사 현판.
▲ 맹씨고택 세덕사 현판.

맹씨고택 세덕사 전경.
▲ 맹씨고택 세덕사 전경.
 
맹씨행단의 또 다른 얘깃거리는 구괴정(九槐亭) 혹은 삼상당(三相堂)입니다. 맹사성, 황희, 권진(혹은 허조) 등 세종 당시 정승인 3명이 각각 3그루씩 9그루의 느티나무를 심고 정자를 지어 정사를 논의하고 시문을 지으며 망중한을 즐겼다고 합니다.
 
구괴정 전경
▲ 맹씨행단 구괴정 전경

맹씨행단 구괴정과 삼상당 현판
▲ 맹씨행단 구괴정과 삼상당 현판
 
이곳은 오봉산을 배경으로 앞으로는 북풍을 막아주는 배방산과 복부성이 병풍처럼 둘러치고 금곡천 맑은 물이 당긴 활 모양으로 흘러 시인과 묵객이 끊이지 않았던 명승지입니다. 지금은 9그루 가운데 7그루는 수명을 다했고, 2그루만이 허리를 굽힌 채 받침대에 의지해 흥망성쇠의 역사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9그루의 느티나무 가운데 세월을 이겨낸
▲ 삼정승이 심은 느티나무. 500여년의 세월을 이겨내고 있다.

‘검은 소’ 이야기는 맹사성이 소박하고 따듯한 성품을 보여주는 대표적 설화입니다. 말 못 하는 짐승조차도 그의 성품에 생사를 함께 했을 정도입니다. 설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맹사성이 하루는 산을 오르다 아이들이 주인 잃은 검은 소를 괴롭히자 이를 꾸짖고 주인을 찾아주려 했지만, 찾지 못하자 집으로 데려가 보살폈는데 이후 검은 소가 자신을 구해준 맹사성만 따랐다고 합니다. 맹사성도 검은 소를 사랑해 평생 가마 대신 타고 다닌 것으로 유명한데 76세(1435년)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검은 소 역시 사흘을 먹지 않고 울다가 지쳐 죽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검은 소의 충성심에 감동해 맹사성 묘 아래 묻어주고 이를 ‘흑기총’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경기도 광주시 직동에 현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소를 타고 피리를 부는 맹사성의 동상.
▲ 소를 타고 피리를 부는 맹사성의 동상.

맹사성은 시문에 능하고 음률에도 밝아 관습도감 제조로서 음악을 정비하고 악사와 악공을 교육하고 악기를 손수 만들었을 정도였는데 특히 항상 피리를 가지고 다니면서 매일 3~4곡씩을 연주해 외지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마을 입구에서 피리 소리가 나는지를 듣고 그가 집에 있음을 알았다고 합니다. 소 등에 올라타 피리를 부는 시골 노인이 알고 보니 맹 정승이었다는 설화도 여러 가지로 전해집니다. 고교 교과서에 수록된 우리나라 최초 연시조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역시 맹사성의 작품입니다.

맹사성이 즐겨 부른 백옥으로 만든 횡피리 옥적(玉笛). 맹사성기념관 제공▲ 맹사성이 즐겨 부른 백옥으로 만든 횡피리 옥적(玉笛). <맹사성기념관 제공>


이처럼 맹사성의 삶은 겸손과 청백리가 인생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지체가 낮은 사람이라도 마중할 때는 문밖에 나와 맞이해 높은 자리로 안내하고, 배웅할 때도 몸을 낮추고 두 손을 모아 인사했다고 합니다. 효성이 지극해 정문이 세워질 정도입니다. 청렴결백과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배우도록 공직 혹은 선출직을 준비하는 분들은 의무적으로 맹씨행단을 찾아 청백리 정신을 가슴에 담아오도록 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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