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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

상하이 의거 전 청도 머물며세탁소에서 일하다

대한의 청년, 윤봉길윤봉길의사 상하이 의거 90주년8) 압록강을 건너 청도(靑島)로

2022.08.17(수) 10:18:46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청도에서의 윤의사.

▲ 청도에서의 윤의사.



열차는 밤새 달렸다. 피곤했는지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밖이 훤했다. 선천 역에  도착할 즈음 월진회 활동을 함께 한 황종진에게 편지를 썼다. 그런데 편지를 다 쓰기 전에 기차 안에서 차표 검사가 있었다. 형사는 그의 행색을 살피더니 몸수색을 했다. 호주머니에서 방금 쓴 편지가 나왔다. 형사는 편지를 뚫어지게 보더니 ‘넓고 넓은 만주 벌판에서 뛰어 놀고 싶다구!’하면서 윤봉길의 따귀를 때렸다. 윤봉길은 선천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여러 날 고초를 겪었다. 

경찰서에서 풀려난 뒤 여관에서 알게 된 한일진과 압록강을 건너 중국의 청도(靑島)에 들어갔다. 한일진은 청도에서 미국행 배에 올랐다. 그의 배 삯을 대납해주느라 빈털터리가 된 윤봉길은 청도 시내에서 유랑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다가 한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을 발견하고 밥이라도 먹을 수 있는 일자리를 부탁하였다. 주인은 윤봉길의 처지를 측은해 하고 세탁소의 점원 자리를 소개해주었다. 주인은 나카하라 켄지로(中原兼太郞)라고 하는 일본인이었다. 고향에서 서당 훈장을 하고 야학도 운영했던 서생(書生) 윤봉길은 당장 끼니를 해결하고 상해로 갈 노자를 마련하기 위해 세탁소의 직원이 되었다. 

1930년 10월 어느 날 어머니의 편지를 받았다. 어머니께 답신을 보내면서 자신이 집을 나선 것이 두 주먹으로 방바닥을 두드리며 부모처자에 대한 사랑보다 더 굳센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다. 어린 아들에게도 편지를 썼다. 비록 아들이 글을 읽을 수는 없지만, 아버지로서 말하고 싶은 것들을 편지에 담았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면서 부모에 의지하지 말라고 하였다. 남편의 편지를 받은 배씨 부인은 반갑기도 하면서 자신의 안부를 묻지 않는 남편이 야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편이 아들에게 준 편지를 빌어 자신에게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자식 사랑과 교육에 성심을 다하였다. 아들이 커서 아버지를 보고 싶다고 하면 장롱 속에서 편지를 꺼내 읽어주곤 했다. 

윤봉길은 세탁소 일을 하면서 신임을 받아 회계원 일을 했다. 어느덧 세탁소 생활도 1년이 되었고 상해로 갈 노자도 충분하였다. 주인에게 세탁소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였다. 그동안 성실했던 윤봉길이 떠난다고 하자 주인은 월급을 더 올려준다며 만류하였다. 그러나 윤봉길은 단호히 거절하고 상해로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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