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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무명 순교자와 만남… 천안 성거산성지 둘레길

억압과 박해를 물리친 자유를 향한 순교

2022.07.27(수) 09:08:20 | 장군바라기 (이메일주소:hao0219@hanmail.net
               	hao021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천안 성거산성지.

▲ 천안 성거산성지.


한여름의 녹음이 절정으로 치닫는 7월의 마지막 주말, 사계절 빼어난 산수에 신령이 사는 산으로 유명한 천안시 성거산 천주교 성지를 다녀왔습니다.
 
성거산성지는 충청남·북도와 경기도의 경계지역으로 행정구역상 충남 천안시 북면 납안리입니다. 독립기념관을 감싸는 흑성산과 이웃한 성거산(579m) 동쪽 계곡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천안시 북면 도촌리를 거쳐 도보로 가거나 차량으로는 천안에서 경기도 안성 방향으로 성거읍과 입장면 사이 성거산 통신도로(입장면 시장리)를 이용합니다.

성거(聖居)산은 고려 태조 왕건으로 인해 신령한 신으로 유명합니다. 후삼국 통일을 위해 직산에 머무르던 왕건은 동쪽산에 오색구름이 영롱히 퍼져 있음을 신기하게 여겨 “신령이 사는 산”이라며 '성거산'으로 이름 짓고 친히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조선 세종도 이곳에 제사를 지낼 정도로 신령이 깃든 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천안 성거산성지

▲ 천안 성거산성지

   
이곳에 천주교 교우촌이 들어선 것은 신유박해(1801년)부터 입니다. 소학골을 시작으로 서덜골 등 모두 7곳의 교유촌이 차례로 세워져 1920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해발 500m가 넘는 계곡으로 외부와 단절돼 안전이 보장되고 빼어난 경관으로 많은 신자가 이주했습니다. 프랑스 다블뤼 신부를 비롯해 수많은 사제의 ‘은신처’이자 중부와 영남의 선교 거점이었습니다.
 
칼래신부가 성거산성지에 머물며 파리신학교 교장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는 “독수리 둥지 마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호랑이가 득실거리고 숲이 우거진 산들로 둘러 쌓여 찾아가기 어렵고 조용히 숨어 살기에는 좋은 피신처”라며 “마치 들짐승처럼 사방에서 ?기는 선교사가 평화로운 이곳에서만은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들킬 염려 없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을 감상할 수 있다”고 성거산 교우촌의 평화로운 풍광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가장 집요했던 병인박해(1866) 이후 성거산 교우촌은 직접적인 위험에 노출됩니다. 당시 성거산 일대에서 거주하던 신자들이 무더기로 잡혀 순교함으로써 믿음을 증거하는 ‘순교지’로서 큰 희생을 치러야 했습니다.

천안 성거산성지거. 천주교 한국 성인 103인의 호롱불

▲ 천안 성거산성지거. 천주교 한국 성인 103인의 호롱불

 
사방이 높은 산과 골짜기로 둘러 쌓인 심산유곡의 은거지에 언제 관군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들은 얼마나 불안하고 외로운 생활을 견디어야 했을까요? 1866년 10월 소학골에 이어 서들골이 발각되고 주변 7개 교우촌에서 차례로 많은 신자가 체포돼 23명의 신도가 공주와 서울 등에서 순교합니다.(성거산성지 홈페이지)

천안 성거산성지. 무명 순교자를 위로하는 조형물.

▲ 천안 성거산성지. 무명 순교자를 위로하는 조형물.

   
성거산 성지순례는 제1줄무덤을 시작으로 십자가의 길, 성모광장, 제2줄무덤, 순교자의 길을 거쳐 병인박해기념성당과 소학골 교우촌을 둘러보거나 반대로 순례를 해도 좋습니다. 더운 여름날이라도 기념성당 일부를 제외하고는 신록이 울창한 나무 그늘로 이어져 시원한 산바람을 맞을 수 있습니다.

천안 성거산성지 .

▲ 신록이 울창한 나무그늘로 이어지는 천안 성거산성지 둘레길.

   
제1줄무덤은 병인년 소학골 교우촌에서 체포된 배문호(베드로), 고의진(요셉), 최천여(베드로), 최종여(라자로), 최씨며느리를 비롯해 많은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이들 다섯 순교자는 1866년 10월 체포되어 목천현을 거쳐 공주감영에 압송돼 많은 고문에도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교수형으로 순교했습니다.

천안 성거산성지 제1줄무덤.

▲ 천안 성거산성지 제1줄무덤.

   
인근의 제2줄무덤은 순교자들의 시신을 사후에 이곳 성지에 이전 안장한 것으로 모두 무명 순교자입니다. 현재는 제1줄무덤에 38기, 제2줄무덤에 36기 등 총 74개 묘봉이 있지만, 시신들이 겹쳐 묻혀 실제 이곳에 안장된 순교자의 수는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천안 성거산성지 제2줄무덤.

▲ 천안 성거산성지 제2줄무덤.

   
성거산 정상 인근에 미국기지가 주둔해 도로를 개설할 당시 묘봉수는 총 107기였지만 이장 과정에서 일부가 손실됐다고 합니다. 그동안 안보시설로 접근이 어려워 들꽃과 침묵의 역사 속에 숨겨진 성거산성지 순교의 역사는 줄무덤을 정비하고 1998년 천주교 성지로 승인되고, 2008년 충남도 기념물 제175호로 지정됐습니다.

천안 성거산성지 제1줄무덤에서 2줄무덤으로 가는 길.

▲ 천안 성거산성지 제1줄무덤에서 2줄무덤으로 가는 길.

   
제1줄무덤과 제2줄무덤 사이 500여m 거리에는 사형선고를 받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고 바위 무덤에 묻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14처로 공개되어 있습니다.

천안 성거산성지 심자가의길 1~2처

▲ 천안 성거산성지 십자가의길 1~2처


천안 성거산성지 십자가의길 3~5처

▲ 천안 성거산성지 십자가의길 3~5처


천안 성거산성지 십자가의길 6~8처

▲ 천안 성거산성지 십자가의길 6~8처


천안 성거산성지 십자가의 길 9~11처.

▲ 천안 성거산성지 십자가의 길 9~11처.


천안 성거산성지 십자가의 길 12~14처.

▲ 천안 성거산성지 십자가의 길 12~14처.

   
넓은 성모광장에는 야외제대와 의자가 마련돼 야외미사에 불편함이 없고 순례자들이 식사를 하고 쉴 수 있는 쉼터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천안 성거산성지 마리아광장.

▲ 천안 성거산성지 성모광장.


천안 성거산성지 성모광장의 마리아 상.

▲ 천안 성거산성지 성모광장의 마리아 상.

   
제2줄무덤부터 시작하는 2.1㎞의 ‘순교자의 길’에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시작으로 한국의 103위 성인과 성거산성지 순교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55개의 대형 호롱등과 순교 관련 조형물이 능선마다 구비마다 순교의 여정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봄에는 순교자의 길에 핀 야생화가 무명 순교자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천안 성거산성지 순교자의 길.

▲ 천안 성거산성지 순교자의 길.

최근 병인박해 150주년을 기념하는 성당이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신축됐는데 전망대에서 살피면 천주교 신자들을 고문할 때 사용하던 '주리틀기 고문의자' 모형 틀이 성당 건물 옥상에 있습니다.


천안 성거산성지 병인박해 기념성당 입구 표지석.

▲ 천안 성거산성지 병인박해 기념성당과 소학골 입구 표지석.

  
성거산성지는 봄과 가을에는 야생화와 단풍으로 찾아오는 순례자들의 감탄을 자아내지만 신록이 우거진 여름 더위를 식히는 피정지로도 이름이 높습니다. 물론 눈 내리는 겨울에도 그 빼어난 산수를 자랑합니다. 한가한 초록의 여름날 성거산성지 그늘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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