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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

수북정에서 읽는 백마강 노래

윤성희의 만감萬感

2022.07.06(수) 20:44:11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수북정에서읽는백마강노래 1



물안개를 두른 수북정은 부여 8경의 하나다. 정갈하게 닦아놓은 이곳 수북정 마루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를 내려다본다. 이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은 전라북도 장수군 신무산 어디쯤이 될 것이다. 거기서 발원한 시냇물이 여기저기 골짜기의 물을 만나 합류하고 몸을 불려 곰나루에 부딪치면서 이름도 아름다운 비단강(錦江)을 이룬다.

그리고 이 물길은 다시 부여에 이르러 부소산을 감돌아 흐르는데 이곳 16㎞ 구간, 수북정 규암 나루터쯤까지는 특별히 백마강이라는 이름을 얻어서 흐른다. 옛 왕도의 안부를 묻고 나서 무거운 몸을 뒤채며 곡류하던 강물이 기벌포에 당도해 서해 바닷물에 몸을 섞을 때까지 강물의 이름은 다시 금강이 된다.

금강의 특정한 구간만을 일컫는 백마강. 유장한 흐름을 이어가지만, 꺾이고 패인 곳마다 한 시대 흥망성쇠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역사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은 온데 간 데 없어도 강물만은 백제의 마지막 모습까지도 기억하고 있을 터. 수북정 바로 밑에 있는 시비의 주인공인 황일호(黃一皓) 역시 이곳 백마강에서 흘러간 역사의 한 장면을 건져 올리고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충절이었던 지소(芝所) 황일호(1588∼1641) 선생은 병자호란 때 삼전도 화친을 끝까지 반대하던 대표적 주전파였다. 청나라를 배척하는 일에 앞장서다가 끝내는 청나라 병사에게 피살되었다. 그가 한때 고향 백마강변에 은거하며 쓴 ‘백마강가(白馬江歌)’라는 국문단가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흥 다하고 슬픔 오니 이 마음 둘 데 없다/의자왕의 풍류를 어디에서 조문할까/고란사 어렴풋하니 고란사 보기 싫다/백마강에서 낚인 용아, 묻노라 고국 흥망을.”(6장)

황일호에게 백마강은 강물의 물성뿐인 그냥 강이 아니었다. 물리적 공간인 강은 역사적 공간이 되었고 그것이 다시 정신적인 공간으로 내면화되었던 것이다. 당나라로 끌려간 의자왕의 비애를 떠올렸던 그에게 청나라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또 한 번의 치욕이었다. 그리하여 그 수치에 대한 항거는 역사의식을 지닌 선비가 걸었을 당연한 길 아니었을까. 수북정에 앉아 바라보는 백마강 흐르는 물은 오늘따라 처연하게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윤성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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