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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한국의 베들레헴 순교자의 ‘솔뫼성지’

삼백년 솔향 가득 여름 힐링 명소

2022.06.22(수) 11:41:49 | 장군바라기 (이메일주소:hao0219@hanmail.net
               	hao021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솔뫼▲ 소나무 숲에 위치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상.
   
충남에서는 정겨운 지명으로 불리지만 ‘내포(內浦)’는 전국적으로는 아직은 낮설기만 합니다. 지리적으로 아산시에서 태안군의 평야지대를 흐르는 삽교천과 무한천의 두 물줄기가 닿아 있는 지역을 아우르는 총칭입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바닷길이 내륙 깊숙이 들어가는 가야산 주변을 통칭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뱃길을 끼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까지 들어와 포구를 이루면서 오래전부터 불교와 성리학, 북학에서 근대에는 개화사상과 천주교에 이르기까지 물을 건너온 선진문물이 가장 먼저 닿고 싹틔운 사상의 시배지였이자 다른 곳으로 연결하는 플랫폼이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출생에서 순교까지 이동 경로.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출생에서 순교까지 이동 경로.


특히나 한국 천주교회에서 내포는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에 의해 천주교가 널리 전파되어 양반은 물론 중인·서민 등 모든 계층에서 호응하며 한국 천주교 ‘신앙의 못자리’로 발전한 곳으로 김대건 등 수많은 순교자가 배출되고 홍성과 합덕·해미·덕산·면천 등 순교지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솔뫼성지 출입구.

▲ 솔뫼성지 입구.

  
이 가운데 ‘소나무가 산를 이루고 있다’하여 순우리말로 ‘솔뫼’라 불리는 김대건 생가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이자 증조부 김진후, 종조부 김종한, 부친 김제준 등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으로 ‘한국의 베들레헴’ 혹은 ‘순교자의 고향’ 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생가.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생가.


성역화는 1906년부터 합덕 성당에서 인근의 토지 매입을 시작으로 194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을 맞아 복자비가 세워지면서 본격화 했습니다. 1998년 충남문화재(제146호)로 지정돼 2004년 생가 안채가 복원됐고, 2014년 프란체스코 교황의 방문을 앞두고 국가사적지(제529호)로 승격되었습니다.

 

솔뫼성지의 사방향 십자가.

솔뫼성지의 사방향 십자가. 솔뫼성지 입구에 설치돼 있다.

 
솔뫼에서 태어난 김대건 신부는 이미 증조부와 종조부가 순교한터라 언제 새로운 박해가 닥칠지 모르자 7세 무렵 조부를 따라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 ‘골배마실’로 이사합니다. 16세인 1836년 신학생으로 중국 마카오로 유학, 상하이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1845년 입국했지만, 1년여 만인 1846년 9월 16일 서울 한강변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했습니다. 이후 1859년 가경자, 1925년 복자품, 1984년 성인품에 올려졌습니다.
 
조선 최초의 천주교 사제로 진리를 외치던 선각자 김대건 신부는 1845년 조선전도를 만들었고, 22편의 서한을 통해 학교와 병원, 사회복지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 끼친 지대한 영향으로 2019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됐습니다.

그의 생애가 평등사상과 인류애, 선진교육의 필요성, 천연두로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위한 의학발전의 필요성, 빈곤퇴치 열망 등 유엔의 지속가능한 발전목표와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의 삶과 업적은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고, 솔뫼성지는 세계적 천주교 성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발.

▲ 십자가에 못 박힌 발. 솔뵈성지 입구에 설치돼 있다.

  
솔뫼성지에는 김대건 신부와 프란치스코 교황이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조형물이 있어 많은 방문객들이 기념촬영을 합니다.

김대건 신부와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기념 조형물.
▲ 김대건 신부와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기념 조형물.
  
입구에서 들어서면 왼편으로 원형공연장 겸 야외 성당인 ‘솔뫼 아레나’가 있습니다. ‘아레나’는 모래운동장이란 뜻으로 현대적 의미로 원형공연장을 뜻합니다. 김대건 신부와 동료들이 한강 새남터 모래사장에서 순교하신 것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주변에는 12사도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솔뫼 아레나에서는 1200석으로 최대 3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습니다.

솔뫼아레나. 김대건 신부가 새남터에서 순교한 것을 상징한다.
▲ 솔뫼아레나. 김대건 신부가 새남터에서 순교한 것을 상징한다.

12사도
▲ 예수가 그리스도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선택한 12사도 상. 

이어 성 김대건 안드레아 기념성당과 기념관이 나옵니다. 김대건 신부가 조선 입국을 위해 탔던 라파엘호(하느님이 보호하신다는 뜻)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해 2006년 건축됐습니다. 서해를 넘다 폭풍우에 돛이 찢기고 키가 부러져 망망대해를 헤매다 성모님의 도움으로 조선땅에 닿은 것을 형상화했다고 합니다. 순교로 하느님을 증거 하였기에 외관을 붉은 색깔의 소재로 사용했습니다. 가운데 큰길은 김대건 신부의 드넓은 세계관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기념 성당 및 기념관.

▲ 성 김대건 안드레아 기념 성당 및 기념관.

   
성당은 500명이 미사를 올릴 수 있고 양편 스테인드글라스는 강경 황산포 해도를 표현한 것입니다. 기념관에는 김대건 신부의 생애와 편지, 한국교회의 박해상황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가 중국유학과 귀국 길에 사용한 '라파엘호' 모형

▲ 김대건 신부가 중국유학과 귀국 길에 사용한 '라파엘호' 모형

   

십자가의 길은 두 가지로 제작되어 있는데 예수님의 손을 주제로 모자이크화한 길과 브론조로 인체크기로 설치한 환조 형태로 순례자들이 편안하게 기도할 수 있도록 숲속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1~2처

▲ 십자가의 길 (1~ 2처)

십자가의 길 (3~5처)

▲ 십자가의 길 (3~5처)


십자가의 길 (6~8처)

▲ 십자가의 길 (6~8처)


십자가의 길 (9~11처)

▲ 십자가의 길 (9~11처)


십자가의 길 (12~14처)

▲ 십자가의 길 (12~14처)


1만평에 달하는 소나무 숲에는 노송들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집안 순교자들의 신앙을 대변해 주고 있는데 70~80그루의 소나무들은 200년을 넘었고 300년 이상 된 소나무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솔뫼는 '소나무로 이루어진 산'이란 뜻이다.

▲ 솔뫼성지 전경 1. '소나무로 이루어진 산'이란 뜻이다.


솔뫼성지2.

▲ 솔뫼성지 전경2.


솔뫼성지 전경 3.

▲ 솔뫼성지 전경 3.

 
소나무 숲에는 김대건 신부님 상이 모셔져 있는데 옆에는 순교 100주년을 맞아 세워진 복자비와 함께 성인비가 함께 세워져 있습니다. 석고로 제작된 예전의 성상은 파손되어 1977년 현재의 성상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솔뫼성지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상.

▲ 솔뫼성지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상.

  
김대건 생가는 1906년 합덕성당 크램프 신부가 고증한 것으로 문화재 위원들의 고증과 기와파편 발굴을 통해 안채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됐습니다. 마당에는 프란체스코 교황이 기도하는 상이 있어 많은 방문객들에게 포토존으로 유명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생가에서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상.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생가에서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상.

  
참고로 솔뫼성지는 버스 50대와 승용차 100대가 동시주차 가능한 1만㎡ 규모의 대형주차장과 음수대, 화장실, 지역농산물 판매장 등 부대시설도 훌륭히 갖추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 요즘 느긋한 산책으로 솔향을 맞으며 스스로의 마음을 힐링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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