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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엄마가 생전에 생활하던 영탑리는 내 마음의 고향

서산 대산읍 영탑리 망일산의 공군레이더기지가 보이면 엄마를 만날 것만 같다.

2022.05.11(수) 20:11:28 | 황토 (이메일주소:enikesa@hanmail.net
               	enikesa@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영탑리

▲ 영탑리


대산(大山)은 큰 산이라는 한자의 어원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지명이 어떤 연유로 생겼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영탑리는 조선 후기 한경춘, 한여현 부자(父子)가 편찬한 충남 서산의 사찬읍지 호산록(湖山錄)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영탑리

▲ 영탑리

 영탑리

▲ 영탑리


 강원도 양구 태생인 친정엄마는 94년을 일기로 지난 55일 어린이날에 소천하셨다. 영탑리에 10여년을 거주했고, 나는 대전에서 서산 대산읍 영탑리를 갈 때마다 망일산 꼭대기의 공군레이더기지가 보이면 엄마네 집에 다 왔다는 신호를 받았다. 엄마가 계신 곳이 곧 내 고향이된 시간이었다.

 

영탑리

▲ 영탑리


영탑리

▲ 영탑리

 

지병으로 천안단대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신 엄마는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훌훌 털고 일어나실 줄 알았다. 봄이면 들에 나가 쑥을 캐고 그렇게 뜯어온 쑥을 삶아 적당한 크기로 소분해서 냉동하는 일이 엄마의 큰 즐거움이었는데. 올해 봄은 없다. 아니 매년 봄이 찾아와도 이제 쑥개떡 해먹으라고 건네주는 엄마가 안 계시다.

 

영탑리

▲ 영탑리


 명절 때나 생신, 어버이날 등 기념일이 되는 날이나 집안의 특별한 날에는 엄마를 중심으로 가족들이 영탑리에 모였다.

 

영탑리

▲ 영탑리


 엄마가 퇴원하고 간병하는 문제로 가족들이 모였다. 요양원얘기도 나왔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모두 일을 하고 있어서 선뜻 나서는 것도 무리였다. 하지만 요양원에 맡기기보다 가족들이 시간을 쪼개 하루 24시간을 나눠서 한다면 크게 부담은 없을 듯 했다. 우선 언니와 내가 하루의 반을 나누고 주말엔 조카들이 번갈아가면서 시간을 담당했다.

 

영탑리

▲ 영탑리


 나는 내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영탑리 시골마을을 걸었다. 오솔길로 접어들면 그늘 진 곳에는 4월의 진달래 분홍빛이 처연했다. 바람만 휑하던 논에는 흙을 뒤집는 농기계가 이리저리 땅을 고르고 이름 모를 새가 날아다니곤 했다.

 

영탑리

▲ 영탑리


 엄마를 간병하면서 가장 힘든 건 잠을 잘 수 없는 거였다. 잠시라도 눈을 붙이려면 엄마의 신음소리가 들리고 그 고통을 지켜보는 마음이 더 없이 고통스러웠다. 수저를 잡을 수 없을 만큼 쇠약해지고 음식마저 거부하면서 물로만 연명하던 엄마는 26일 만에 소천하셨다. 그 중 닷새는 물조차도 넘길 수 없어 입술에 물을 적셔주기만 했다.

 

영탑리

▲ 영탑리


 모든 감각은 살아있어 통증은 더 괴로웠을 것이다. 당신의 몸을 돌보는 자식들의 손길을 느끼는지 때때로 고맙다!’라는 말씀도 잊지 않았다. 하루하루 건조해지면서 미이라가 되는 엄마 모습은 낯설고 안타까웠다.

 

영탑리

▲ 영탑리


영탑리

▲ 영탑리


연산홍이 활짝 피고 바람에 유채꽃이 흔들리던 날, 엄마는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비워내고 마침내 통증과 고통도 멈추었다. 영탑리에 계셨던 엄마는 여름이 시작되는 날 그렇게 하늘나라에 안착하였다. 엄마가 남기신 메시지는 명확하고 선명했다. 서로 사랑하고 마음껏 행복하게 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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