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여행

미완의 완성…, 천년고찰 성불사의 호젓함

수백년 거수목 느티나무와 야생화의 조화

2022.05.11(수) 11:46:07 | 장군바라기 (이메일주소:hao0219@hanmail.net
               	hao021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천년고찰 천안 성불사 느티나무 계단길.
▲ 천년고찰 천안 성불사 느티나무 계단길

고려를 개국한 태조 왕건과 천안시와 수많은 인연과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배경 가운데 천안의 진산 태조(太祖)산은 왕건이 후삼국 통일을 위해 군사를 주둔시켰던 곳으로 삼남의 동서남북 천지사방을 두루 편안하게 만들기를 기원하며 지명조차 천안(天安)으로 정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을 즈음해 찾아간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태조산 중턱의 천년고찰 성불사(문화재자료 제10호). 골짜기 깊은 안쪽 가파른 산비탈을 의지해 고즈넉한 천년고찰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기록상 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고려 태조 4년 ‘도선국사’ 또는 ‘혜선국사’, ‘혜조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천년 고찰 성불사 대웅전 전경.
▲ 천년 고찰 성불사 대웅전 전경.

고려를 창건한 태조는 도선국사에게 전국에 사찰을 조성하게 하는데 명을 받은 도선국사가 태조산에 이르자 백학 한 쌍이 날아와 암벽에 부리로 불상을 만들다 완성하지 못하고 날아가 버리자 이곳에 절을 짓고 성불사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불상을 완성하지 못해 성불(成不)사라고 부르다 후에 성불(成佛)사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구전도 전해집니다. 도선은 ‘도선비기’로도 유명할 정도로 풍수지리에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천년고찰 성불사 범종각.
▲ 천년고찰 성불사 범종각.

천년고찰 성불사 범종.
▲ 천년고찰 성불사 범종과 법고.

성불사는 평소에는 사찰까지 차량이 들어갈 수 있지만, 일주문 인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수백 년 우거진 느티나무 길을 호젓하게 걷노라면 고즈넉한 분위기와 태조산의 아름다운 풍광이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천년 고찰 성불사 일주문
▲ 천년 고찰 성불사 일주문

일주문을 지나면 산비탈에 반원형 석축계단을 쌓아 만든 야외공연장은 그 자연스러움에 눈길을 끕니다. 이곳에는 사찰에서 곱게 가꾼 야생화가 지천으로 돌계단에 앉아 멀리 산 아래를 바라보며 봄바람을 맞으니 세속의 모든 번뇌가 씻어나가는 것처럼 상쾌합니다. 해마다 산사음악회가 열렸지만 최근 코로나로 일시중단돼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성불사의 자랑인 야외 공연 광장.
▲ 성불사의 자랑인 야외 공연 광장.

이어 범종각 옆으로 이어지는 비탈길을 오르면 대웅전과 관음전, 산신각 등 전각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거수목에 둘러 쌓인 숙묵당으로 향하는 계단을 이용해야 더욱 운치가 있지만, 지금은 아쉽게 공사중으로 계단 출입이 제한되고 있습니다.

성불사
▲ 성불사 범종각으로 향하는 길. 

성불사 숙묵당 전경.
▲ 성불사 숙묵당 전경.

성불사 산신각
▲ 성불사 산신각

천년고찰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성불사에는 거대한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수백 년 세월을 견뎌온 여러 그루의 보호수와 문화재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마애석가삼존16나한상(磨崖釋迦三尊十六羅漢像. 충남유형문화재 제169호))과 석조보살좌상(石造菩薩坐像. 충남문화재자료 제386호) 입니다.

천년고찰 성불사 대웅전 단청1
▲ 천년고찰 성불사 대웅전 단청1.

천년고찰 성불사 대웅전 단청 2.
▲ 천년고찰 성불사 대웅전 단청 2.

거수목은 대웅전을 오르다 보면 높이 14m 가슴높이둘레 5.6m의 수령 840년에 이르는 느티나무를 비롯해 550년 수령의 숙묵당 느티나무, 540년 수령의 범종각 느티나무 등이 즐비하게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거수목
▲ 성불사 숙묵당을 지켜주는 수령 500년 이상의 느티나무.
 
마애석가삼존16나한상은 대웅전 뒤편 ‘口’꼴 바위 양 측면에 새겨져 있는데 암반의 전면(법당 후면)에는 형체만 알아볼 수 있는 불상이, 우측에는 석가삼존과 16나한상이 각각 부조로 새겨져 있습니다.

성불사
▲ 성불사 대웅전 내부. 가운데 불상 대신 유리창 너머 불입상을 모신다.

불상은 바위가 갈라지는 절리현상으로 얼굴과 신체 전면이 크게 떨어져 윤곽만 어렴풋한데 육계와 손의 형태 등에서 고려시대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오른발은 뚜렷하게 남아 있지만, 왼발은 떨어져 없습니다.

성불사 관음전 마애석가.
▲ 성불사 관음전 불입상.

바위의 오른쪽에는 아래에 커다란 연꽃대좌와 위로 작은 연꽃대좌가 있고 석가불이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습니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육계의 구분이 없는 큰 머리에 눈과 입이 크게 표현된 둥글넓적한 형태의 얼굴로, 좌우에 공양상이 배치돼 있습니다.

성불사 마애석불16나한상.
▲ 성불사 마애석가삼존 16나한상.

16나한상은 마모가 심해 세세한 양식은 알기 어렵지만, 서로 마주하거나 수도하는 모습 등 다양한 자세들이 자유스럽고 주위 바위 면을 둥글게 파내 ‘감실’ 또는 ‘동굴’ 속처럼 표현한 것이 특징입니다. 성불사 석가삼존과 16나한 부조는 현존하는 국내 유일의 사례로 호암미술관이 소장한 ‘석가삼존·16나한도’와 주제와 구성면에서 동일해 14~15세기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성불사 16나한상.
▲ 성불사 16나한상.
  
관음전에 모셔진 석조보살좌상 역시 고려시대 불상의 전형적인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는 보기 드문 석불상으로 종교·학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원래 연기군 조치원(현 세종시) 대성천 준설작업 중 발견돼 성불사에 옮겨와 보존하고 있습니다.

성불사 관음전 석조보살좌상.
▲ 성불사 관음전 석조보살좌상.
 
높이 67㎝, 어깨너비 34.5㎝, 무릎너비 54.5㎝크기로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데 법의 주름이 유난히 굵고 오른손에 연봉우리를, 왼손은 배에서 수평으로 놓았습니다. 두 팔은 불신에 비해 매우 가늘고 긴 편으로 두 손의 표현도 매우 작아 어색합니다. 다만, 광배의 윗부분이 깨어져 붙여 놓았고, 오른쪽 무릎 일부도 깨진 상태로 무릎에서 오른쪽으로 가늘고 긴 균열이 있어 부분적으로 메워 놓은 상태입니다.

성불사 관음전 석조보살좌상.
▲ 성불사 관음전 석조보살좌상.

오월이 계절의 여왕으로 불리는 것은 수많은 꽃도 꽃이지만 연두빛으로 물든 신록때문 아닐까요? 수백 년 성불사를 지켜온 느티나무 언덕길을 걷노라면 조금 숨차지만, 천천히 오월을 즐기는 것도 여유로움의 즐거움 아니겠습니까. 코로나19로 지친 마음 성불사 느티나무길과 어여쁜 야생화길을 권해드립니다.

 

장군바라기님의 다른 기사 보기

[장군바라기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