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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

매헌 윤봉길 의사 숭고한 애국정신 기려야

특별기고 - 상하이 의거 90주년 소회

2022.05.09(월) 17:15:51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scottju@korea.kr
               	scottju@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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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헌윤봉길의사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어린 마음에도 일본의 노예를 키우는 학교 교육을 거부하고, 오치서숙에서 한학을 배우면서 300여 편의 주옥같은 작품을 엮어 5권의 한시집을 남긴 문학가였다. 

의사님은 공동묘지 묘표를 모두 뽑아 부친의 산소를 찾는 문맹의 젊은이를 보고 ‘일본의 침략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무지이다’라는 것을 깨닫고 야학을 개설해 <농민독본>을 직접 써서 학생들에게 우리 말과 역사, 문화 등을 가르치며 독립 정신을 고취시킨 선각자요 애국계몽운동가였다. 

1930년 3월 6일 23세에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장부가 뜻을 세워 집을 나가니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이라는 글을 남기고 망명의 길을 떠났다. 청도에서 어머니께 보낸 편지에서 ‘우리 청년 시대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일층 더 강의한 사랑이 있는 것을 각오하였다.’라는 내용에서 의사님의 나라사랑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청도를 거쳐 1931년 6월 23일(음 5월 8일)에 상하이로 간 의사님은 기회를 엿보던 중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일제의 침략을 이끌던 원흉들을 폭탄으로 저격해 시라카와 대장 등 2명을 죽이고 10여 명을 부상시키며 한국인의 기상과 독립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렸다.

의사님께서는 25세의 짧은 삶이지만 언행에서 더할 수 없는 선각자요 성자였다. 최후의 순간에도 한국인이라는 긍지와 위엄, 지조를 지키며,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던 마지막 재판에서 ‘나라의 독립은 머지않아 꼭 실현되리라 믿어 마지않으며 대한 남아로서 할 일을 하고 미련없이 떠나간다’라고 유언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도왜실기>의 서문에서 ‘한국 해방의 단서가 된 카이로회담에서 장제스 주석이 한국의 자주독립을 주장하여 연합국의 동의를 얻은 것은 윤봉길의 장거에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의사님께서 꿈꾸신 독립을 이루고 남북 분단과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오늘날 세계 7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우리는 분열과 갈등,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 북한의 핵 위협에 의한 한반도 안보의 위기 등을 맞이하고 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의사가 꿈꾼 대한민국을 위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위기를 이겨내며 더 큰 미래를 그렸으면 한다.
/명노승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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