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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

거북선의 첫 출전, 사천해전의 승리

충무공 이순신 이야기

2022.05.09(월) 16:25:17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scottju@korea.kr
               	scottju@korea.kr)

사천해전 상황도

▲ 사천해전 상황도



조선 수군 밀물로 바뀌자 공격
거북선 ‘맹활약’ 대형화포 쏘며
맨 앞 적선 격파…일본군 후퇴


이순신장군이 첫 번째 출전을 마치고 전라좌수영에 복귀한 지 17일이 지날 무렵(5월 27일) 잠깐 오수(午睡) 중 꿈에 신령이 나타나 ‘적이 나타났는데 자고 있느냐’며 호통을 치기에 잠에서 깨어났다. 마침 경상우수사 원균의 첩보가 도착했는데, 곤양 쪽에 적선 십여 척이 출몰한다는 것이었다. 이순신은 즉시 출전 준비를 하여 5월 29일 거북선 2척을 포함하여 전선 23척을 거느리고 출전하였다. 노량해상에서 원균이 거느린 3척의 전선과 합류한 후 가까운 해상에서 일본군선 1척을 발견하여 분멸하였다.

이어서 적이 있다는 사천 선창에 도착하니 일본 군선들은 대선 12척이 정박해 있었고, 산에는 수백 명의 군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조선 수군은 썰물상태라 적에게 돌진할 수 없었으며, 적들은 높은 곳에 있고 아군은 낮은 곳에 있어서 지세도 불리하고 날도 저물어갔다.

이순신은 적을 끌어내어 격멸하는 작전을 세우고 배를 돌려 일리 정도 나왔을 때 일본군 200여 명이 산에서 내려와 반은 배를 지키고 반 남짓은 언덕 아래에 모여 총을 쏘며 위세를 보였다. 잠시 후 조수(潮水)가 밀물로 바뀌자 조선 수군은 일본군 진영을 향해 공격해 나갔다.

먼저 거북선으로 하여금 적선 쪽으로 돌진하게 하여 대형 화포를 쏘게 하였다. 일본군들도 산 위와 언덕 밑과 배를 지키는 세 곳에서 철환을 쏘면서 대항하였다. 조선 수군은 거북선을 이용하여 맨 앞에 있는 적선을 격파한 후 다른 전선들에서도 각종 총통을 쏘아 많은 적을 살상하였다. 그러자 일본군들은 두려움에 높은 언덕으로 물러나 진을 치고서는 대응하지 못했다.

 조선 수군은 번갈아 드나들어 적선 중 대선 전부를 쳐부수고 불태운 후 소선 2척을 남겨두어 육지로 도주한 적을 끌어내어 섬포할 계획을 세우고는 배를 돌려 사천의 모자랑포에서 밤을 보냈다. 다음날(6월 1일) 남겨둔 2척의 소선을 확인하러 사천선창에 가보았으나 일본군들은 육지로 모두 도망치고 없었기에 남겨두었던 배를 불태웠다.

이 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3명의 장수가 부상을 입었는데, 이순신과 군관 나대용은 철환을, 전 봉사 이설은 화살을 맞았지만 모두 중상은 아니었다. 결국 사천해전에서는 서전을 포함하여 모두 15척의 크고 작은 일본 군선들을 분멸하였다. 조선 수군의 두 번째 출전 중 첫 해전인 사천해전은 거북선의 맹활약 하에 기분 좋은 승리로 장식되었다.
/제장명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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