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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

사람을 하늘같이 섬기는 세상을 위해 싸웠던 길

내포문화숲길, 마음으로 걷다

2022.05.08(일) 23:28:00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scottju@korea.kr
               	scottju@korea.kr)

내포동학길을 지키고 있는 장승

▲ 내포동학길을 지키고 있는 장승



내포동학길은 면천읍성에서 승전목까지 이어지는 약 9.4km의 길입니다. 몽산과 아미산 자락을 걷는 숲길과 농로, 승전목 협곡을 따라 걷는 길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창시자 최제우의 깨달음을 핵심 교리로 창도한 동학은 외세의 침략과 사회적 부조리로 백성들의 삶이 황폐해진 사회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반봉건, 반외세와 보국안민을 내세운 사회변혁사상으로 급속히 발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갈등이 극에 달한 1894년에는 동학교도와 생활고에 시달리던 농민층이 결합하면서 전국적인 무장봉기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1894년 전라도 고부농민항쟁으로 촉발된 동학농민혁명은 그해 봄과 가을 2차례에 걸쳐 전국적인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전라도만큼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당시 내포지방 곳곳에서도 동학군과 이를 진압하려는 관군 및 일본군 사이에 크고 작은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습니다. 내포동학길의 목적지인 승전목은 동학군이 승리한 몇 안 되는 전투지 중의 한 곳입니다. 그것도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고도로 훈련된 일본군 정예 부대와 싸워 이긴 유일한 전투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1894년 10월 24일(음) 벌어진 승전목전투는 지형을 이용한 동학군의 전술이 돋보였습니다. 동학군은 산위에 매복해 있다가 ‘S’자 형태의 협곡으로 깊숙이 들어온 일본군 90여 명을 치열한 전투 끝에 물리치고 면천읍성까지 함락하였습니다. 다음날에는 예산 구만리에서, 그 다음날에는 신례원(관작리)에서 관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둡니다. 동학군은 그 기세를 몰아 10월 28일(음)에는 홍주읍성을 공격하였으나 홍주성전투에서는 관군과 일본군에게 처참한 패배를 당하였고, 남은 동학군은 일본군의 섬멸작전으로 참혹하게 학살 되었습니다. 

내포지방 곳곳에는 전투지 외에도 동학군이 봉기하거나 학살을 당한 유적지가 많이 있습니다. 현재 내포동학길은 1코스만이 개설되어 있지만, 내포지방 동학의 의의를 조명하고 널리 알릴 수 있는 더 많은 코스가 개발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유병덕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내포문화진흥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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