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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

“장수가 쫓는 忠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충무공 이순신 이야기

2022.04.25(월) 09:46:25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scottju@korea.kr
               	scottju@korea.kr)

전쟁 중 국민 안위 보살펴
왜군이 백성 해치지 않도록
타고 돌아갈 적선도 남겨둬


우리 민족의 영웅 이순신 장군은 1545년 3월 8일(양력 4월 28일) 한성 건천동에서 태어나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까지 54년간의 생애를 보내고 현재 아산 어라산 중턱에서 영면하고 있다. 순국한 지 42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국민이 그를 존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1592년 4월에 발발한 임진왜란 7년 전쟁을 극복하는 데 이순신이 가장 크게 기여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난세에는 영웅이 나타나기 마련이고 나라를 구한 영웅에 대해 국민이 존경하고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순신을 단순히 임진왜란을 극복한 영웅으로만 인식한다면 그 시대에 함께하던 국민만 존경하고 현재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정도에 머물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은 400여 년이 흐르는 동안 민족의 혈관을 따라 흘러 오늘날까지 국민의 가슴 속에 흐르고 있다.

이순신이 지금까지 존경받는 이유는 먼저 침략한 적을 통쾌하게 물리쳤다는 점이다. 임진왜란 초기 육전에서는 일본군을 당하지 못해 개전 20일 만에 한성이 함락되기까지 했지만, 바다에서는 이순신이 지휘한 조선 수군이 50여 회의 해전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고 적선들을 격파했다.

적을 물리쳐서 백성을 보호하는 것은 군인으로서 당연한 의무이지만 이순신에게는 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전쟁의 성과보다는 백성의 안위를 우선시했다는 점이다. 이순신이 적을 무찌르면서도 백성들의 안위를 보살폈다.

안골포해전 등 많은 해전에서 이순신은 육지로 도망간 일본군들이 잠복해 있던 우리 백성을 해칠까 염려해 그들이 타고 돌아갈 배를 태우지 않고 몇 척씩 남겨두곤 했다. 적 수급을 하나라도 더 챙겨 전과를 부풀려 보고하던 일이 비일비재하던 때에 이순신은 반대로 행동하면서 백성의 안위를 먼저 챙긴 것이다.

백성을 진정으로 보호한 이순신의 덕을 사모한 그의 부하들이 전쟁이 끝난 지 5년 뒤 세운 ‘타루비(墮淚碑)’는 400여 년 전의 역사를 증명한다. 이순신장군 탄신 477주년을 맞아 그분이 주는 진정한 교훈이 무엇인지 되새겨 봤으면 한다.
/제장명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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