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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

당쟁보다 민생을 먼저 챙겼던 남당 한원진

내포칼럼 -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2022.03.30(수) 10:04:47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scottju@korea.kr
               	scottju@korea.kr)

당쟁보다민생을먼저챙겼던남당한원진 1


노·소론 대립 심했던 영조 때
당쟁을 국가의 폐해로 꼽아

해결책으로 ‘민생 해결’ 제시
“당쟁 없앤 뒤 국방력 키우고
호포제로 백성 짐 덜어줘야”

임금 심기에 거슬리는 말도
서슴지 않으며 국가혁신 주장


홍성군 서부면 양곡리에는 남당 선생의 위패를 모신 양곡사(暘谷祠·영조 49년 건립)가 있다.

선생은 그곳에서 지척인 남당리 출신이었다(숙종 8년). 70세를 일기로 작고하였는데, 문하에 제자가 많았다. 그 학풍은 근세까지 이어져, 구한말 의병장 지산 김복한을 비롯해 복암 이설, 만해 한용운, 백야 김좌진 등 우국지사 등을 배출하였다.

남당의 스승은 한수재 권상하였고, 한수재의 스승은 우암 송시열이었다. 남당은 외암 이간과 함께 우암의 학맥을 이으며, ‘호락(湖洛)논쟁’을 편 것으로 유명하였다. 동물에게도 도덕적 본성이 있는가를 둘러싼 진지한 토론이었다.

남당은 도덕성이란 인간 특유의 본성이라며 외암의 주장을 반박하였다. 호서에서는 선비들이 남당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고, 서울에서는 그 반대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학자인 남당의 관심은 도덕 철학에 국한되지 않았다. 『영조실록』에 따르면 그는 국가의 혁신을 강력히 주장하였다(영조 2년 8월 12일).

그는 경연관이 되자 소견을 남김없이 아뢰었는데, 그 시절의 병폐로 세 가지를 지적하였다. 첫째 국방력이 빈약하고, 둘째 국가의 사업을 감당할 선비가 적으며, 셋째 당쟁의 폐해가 심하다는 것이었다.

남당이 보기에, 조선은 과거 중국의 송나라와 흡사한 점이 많아 선비가 유약하고 매사를 임시방편적으로 해결하는 등의 약점이 있었다.

남당은 어떤 해결책을 가졌을까? 그는 민생의 고통을 덜어내는 데 초점을 맞춰, 당쟁을 완전히 없앤 다음, 국방을 튼튼히 하자고 말했다. 또한 백성의 휜 허리를 펼 수 있게 호포제를 시행하자는 견해도 밝혔다(실록, 영조 2년 8월 16일) 각종 개혁으로 민생을 안정시키고 국력을 길러서 청나라에 국가의 원수를 갚자는 주장도 빠뜨리지 않았다(실록, 영조 2년 9월 17일) 이것은 남당 한 사람의 독자적인 견해가 아니었다. 위로 우암과 한수재를 거쳐 대대로 이어진 호서 유림(儒林)의 정견(定見)이었다.

남당으로 말하자면,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학문을 닦은 제갈공명”이라고 하였다. 왕의 특명으로 조정에 나온 뒤에는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세상을 바꾸어볼 뜻을 굳혔다.

그러나 영조는 남당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 당시 사관(史官)의 말을 들어보면, 영조는 남당을 신뢰하지 않았다. 

영조는 이러한 남당을 도리어 깊이 의심하였다. “초야에 묻혀 지내던 선비조차 정치적 논의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끼어들다니!” 그래서 영조는 남당의 제안을 모두 묵살하였고, 실망한 남당은 조정에 나온지 반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갔다(영조 3년 2월 7일). 영조가 당쟁부터 막아야한다는 남당의 고언(苦言)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역사의 불행이었다.

남당과 영조의 관계는 이후 한 가지 사건을 겪은 뒤 더더욱 꼬였다. 어느 날 영조는 경연에서 명 태조 주원장이 맹자의 위패를 문묘에서 제거한 사실을 언급하며, 명 태조를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 소식은 전국으로 널리 퍼졌고, 남당도 귀에도 들어갔다. 이에 남당은 상소를 올려 영조의 반성을 촉구하였다. 영조는 크게 화를 내며 남당을 노골적으로 비판하였다.(실록, 영조 7년 6월 27일)

이렇게 되자 남당은 물가에 숨어 살았다. 그 집은 매우 협소하였고 끼니도 잇지 못할 적이 있었으나 항상 태연자약하였다. 남당은 일세의 은사(隱士·벼슬 없이 숨어 살던 선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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