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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

돌에 ‘그림자’를 새긴 추사, 따듯한 아버지였다

윤성희의 만감萬感 - 추사고택 해시계 ‘석년’

2022.03.30(수) 09:35:25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scottju@korea.kr
               	scottju@korea.kr)

추사가 만든 해시계와 그의 서자 상우가 새긴 글자 ‘석년’

▲ 추사가 만든 해시계와 그의 서자 상우가 새긴 글자 ‘석년’



평생 서자의 설움 느낄 아들 상우에게
자신의 예술적 유산인 ‘글씨’ 새기게 해
“어두운 그림자도 쓸모가 있다”는 위로


묵향이 감도는 추사의 고택에 봄기운이 따사롭다. 추사의 봄도 여기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그 쌓여 있는 시간을 상기시켜주기라도 하듯 추사의 집에는 그가 직접 제작했다는 해시계가 있다.

고택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 앞 돌기둥 하나가 손님을 맞이한다. ‘석년(石年)’이라는 글씨를 몸에 새기고 있는 화강암 석주다. 추사의 서체를 지근에서 체득한 아들 상우가 아버지의 필법을 따라 쓰고 새긴 예술적 상속의 기표다.

추사에게는 양자로 입적한 아들이 있었지만, 혈통으로 보면 상우가 유일한 아들이다. 그러나 당시의 유교적 가풍은 기생에게서 얻은 아들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할 수 없었다. 추사는 제 몸으로 낳지 않은 적자 상무에게는 학문적 입신의 길을, 제 핏줄인 서자 상우에게는 자신의 예술적 소양을 물려주고 싶어 했다.

신분적 한계를 잘 아는 추사로서는 항상 아들 상우가 짠하고 애틋했을 것이다. 그래서 평생 그림자로 살아갈 아들에게 ‘석년’이라는 글씨를 쓰게 했을지도 모른다.

해시계란 그림자에 의해 시간이 측정되는 것. 햇빛이 아무리 밝고 환하다 한들 그림자가 없다면 해시계는 무용지물이다. 추사는 혹시 아들에게 그림자는 그림자대로 역할과 쓸모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려 했던 건 아닐까.

해시계는 인간이 발명한 가장 원초적인 시계다. 흐르는 시간을 증명하는 것 외에는 오늘의 시계처럼 시간을 잘게 나누지 않는다. 톱니바퀴로 가는 시계는 인간을 톱니바퀴와 같은 부품으로 살아가도록 얽어맨다. 디지털시계는 매 순간을 분할하고 시간을 가속해 조급함과 속도 속으로 우리 삶을 몰아넣는다. 그러나 해시계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째깍거리는 시계의 지배에서 벗어나 느릿하게 회전하는 원초의 시간을 떠올려보라고 촉구한다. 그림자의 가치를 돌아보라고 타이른다.

고택을 돌아 나오는데 풀리지 않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왜 거기에 ‘석년’을 새겨 넣었을까. 돌의 시간, 돌을 품은 시간을 헤아리라는 뜻일까. 시간은 돌처럼 무거우니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일까. 돌기둥의 상단에 해 그림자를 가늠하는 철침이 빠져 있는 것조차도 오늘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윤성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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