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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나라에 바칠 목숨이 하나뿐 임이 유일한 슬픔입니다”

불꽃 같은 삶 유관순 열사의 생애를 만나다

2022.03.02(수) 13:37:00 | 장군바라기 (이메일주소:hao0219@hanmail.net
               	hao021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남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생가 입구. 3.1절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 충남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생가 입구. 3.1절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3.1절이면 누구보다 먼저 떠오르는 유관순 열사.
그는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모진 고문에 시달리고 영양실조로 18살 어린 나이에 숨을 거두면서도 오직 독립만을 갈망했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 16일 충남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에서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 사이 3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병천은 서울을 연결하는 교통요충지로 서양 선교사의 개신교 전파가 활발한 곳이었습니다.
1916년 지령리 교회를 방문한 선교사는 소녀 유관순의 총명함에 이화학당 편입을 소개했습니다.
서울에서 거주하며 일제에 강점된 조국의 현실에 눈을 뜬 열사는 고종의 서거를 계기로 3.1만세운동과 동맹휴학에 참여하다 귀향해 고향의 지역 인사들과 독립운동을 상의하고 1919년 4월 1일 병천(아우내)장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합니다.
이날 아우내장에서는 열사의 부모를 포함해 19명이 시위 현장에서 순국하고 30여 명이 중상을 당합니다.
주모자로 체포된 열사는 공주교도소에 수감되고 공주영명학교에서 만세운동으로 구속된 친오빠 유우석과 만나게 됩니다.

3.1 아우내 만세운동
▲ 3.1 아우내장터에 세워진 독립만세운동 기념물. 
 
공주지방법원에서 5년 형을,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 형을 선고받은 열사는 일제의 재판권을 거부하며 상고하지 않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3·1운동 1주년 항의 시위 등 옥중투쟁을 전개해 일제로부터 무차별적
학대와 고문 속에 영양실조로 1920년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18세 어린 나이로 순국 합니다.

경성복심법원 유관순 판결문.
▲ 경성복심법원 유관순 판결문.

열사는 죽음에 이르러 “네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이라며 순국합니다. 
일제는 열사의 시신조차 인도를 거부하다 국제여론에 밀려 순국 한 달여 만인 10월 14일 이태원 공동묘지에서 장례를 치렀지만, 이곳이 군용기지로 개발되고 미아리 공동묘지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려 현재 생가 뒷산인 매봉산에 초혼묘만 봉안되어 있습니다.
천안은 열사의 생가터가 있는 곳으로 다양한 유적이 있습니다.
우선 병천면 매봉산 남쪽자락에 열사의 생가가 있습니다.
사립문 정면의 건넌방에서는 열사가 사촌 언니와 남동생 둘과 태극기를 제작하는 광경을, 안방에서는 아우내 만세운동을 준비하는 상황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충남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열사 생가.
▲ 충남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열사 생가 전경.

충남 천안시 병천면 매봉교회.
▲ 충남 천안시 병천면 매봉교회.

유관순 열사 생가.
▲ 유관순 열사 생가. 유 열사 부모님과 마을 지도자들의 만세 운동을 상의하고 있다. 

유관순 열사 생가.
▲ 유관순 열사 생가. 유열사와 동생들이 만세운동에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하고 있다.

유관순 열사 사적지(사적 230호)에는 동상, 영정, 유관순열사기념관등이 있습니다. 
영정은 추모각에 3.1운동 직전 태극기를 손에 쥐고 이화학당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흰색의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습니다.
인근에는 3.1만세운동 당시 함께 순국한 애국지사를 추모관이 별도로 운영중입니다.

유관순 열사 추모각 전경.

▲ 유관순 열사 추모각 전경.


유관순열사 추모각의 영정

▲ 유관순열사 추모각의 영정


아우내장터 만세운동

▲ 아우내장터 만세운동 순국자 추모각.


아우내장터 만세운동 순국자 선위.

▲ 아우내장터 만세운동 순국자 위패.


유관순열사 기념관
▲ 유관순열사 기념관

유관순열사 기념관 전시품.

▲ 유관순열사 기념관내 전시품.


유관순 열사 모자.

▲ 유관순 열사 모자.


유관순 열사

▲ 유관순 열사가 복역한 서대문형무소 죄수복과 죄수모.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주도한 아우내독립만세운동기념공원은 현재 아우내 순대국밥거리 초입에 있습니다.
1919년 4월 1일 아우내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역사의 현장으로, 당시 병천 아우내장터와 일제의 헌병 주재소가 있던 곳입니다.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에는 열사의 동상이 세워져 지역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국가서훈은 당초 건국훈장 독립장(1962년)이었지만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201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으로 격상되어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열리지 못했던 비대면 봉화제도 준비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장

▲ 유관순 열사의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훈장.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 유관순 열사 동상.

▲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 유관순 열사 동상.


비폭력 무저항으로 시작된 3.1운동은 유관순 열사와 같은 청년 학생들의 희생 속에 전국으로 번졌고 본격적인 무장독립운동과 상해임시정부를 탄생시켜 결국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휴일 천안을 찾아 불꽃 같은 열사의 삶과 생애를 만나보면 어떨까요?

유관순려사

▲ 유관순 열사 기념관 방문 스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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