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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

공주 나태주 골목길에서 詩의 행간을 거닐다

윤성희의 만감萬感 - 공주 나태주 골목길

2022.02.24(목) 11:10:20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scottju@korea.kr
               	scottju@korea.kr)

공주 나태주 골목길

▲ 공주 나태주 골목길



앞만 보며 달린 삶 접어두고
골목길서 시의 행간 거닐며
마음속 희망의 불씨 지피다


공주는 시를 품은 도시다. 나태주의 시를 품었고 시가 있는 ‘나태주 골목길’을 품었다. 공주는 또한 ‘나태주 풀꽃 문학관’이라는 시의 사원을 품었다. 사람들은 그 교당에 가서 나태주의 시를 경배하고 시가 있는 골목길을 순례한다.

순례란 신을 닮기가 불가능할 때, 신이 걸어간 길을 걸으며 그 발길을 추체험하는 일이다. 공주는 시의 순례자를 위해 시인이 걸어온 시의 생애를 작은 골목 공간에 압축해 놓았다. 몇 줄의 문장 안에 응축된 긴 사연, 시인이 통찰한 의미들을 음미해 보라는 뜻이다.

시는 울림과 여운이 내장된 문학의 정수다. 그래서 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골목길을 거닐 듯이 시의 행간을 천천히 거닐어 보아야 한다. 발걸음의 리듬을 따라 거닐면서 시의 리듬을 몸으로 감각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에도 여백이 생길 것이다.

이동의 수단인 발은 자동차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데 더 많이 쓰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발을 본래의 기능으로 되돌려 놓을 때, 걷기는 직선과 속도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각성의 거울이 된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도 빠르게, 앞만 보면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골목길에서는 직선과 속도 따위가 그렇게 중요한 가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낙타는 걸어가면서 반추하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하는데, 골목길을 걷다 보면 우리도 낙타가 된다. 길모퉁이에 있는 팬지꽃을 들여다보다가 마음에 머물렀던 기억 하나를 꺼내 보기도 하고 빨간 기와집 우편함을 보면서 언젠가 거기 꽂혀 있었을 분홍빛 연서를 상상해 보기도 한다. ‘문득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가/나를 놀라게 하’고 ‘혼자 나는 비둘기 한 마리가/나의 발길을 멈추게 하’(나태주, 「골목길」)는 마음의 진동도 골목길을 걸을 때 얻는 가외의 소득이다.

나태주 골목길 초입에 있는 골목 정원에 앉아 생각해 본다. 오늘날 시가 읽히지 않는 것은 우리 시대의 정신의 어둠을 보여주는 징표다. 그러나 이곳 골목이 시의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어둠을 파고들 희망의 불이 아직 남아있다는 또 하나의 징표다.
/윤성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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