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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

청렴한 공직생활, 남은 출장비는 반드시 반납했다

충무공 이순신 이야기

2022.01.24(월) 13:23:25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scottju@korea.kr
               	scottju@korea.kr)

아산 어라산 이순신 장군 묘소

▲ 아산 어라산 이순신 장군 묘소



아산에서 청소년시절 보내고
결혼, 무과급제 때까지 지내
서산 해미서 군관으로  근무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 중 한 분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54년의 짧은 생애 중 22년간의 관직 생활을 하면서 임진왜란 때 침략일본군을 크게 물리치는 등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해 사신 분이다.

이순신은 서울(당시 한성)에서 태어났지만 아산으로 이주하여 청소년기를 보냈으며, 아산을 본향으로 삼아서 무관 생활을 하였다. 이후 근무지에 따라 전국 곳곳을 다녔는데, 오늘날 도(道) 단위로 근무지를 본다면 서울·충청남도·전라북도·전라남도·경상남도이고, 북한 지역으로는 함경도에서도 근무한 바 있다. 그러다보니 전국에는 이순신의 발자취가 다수 남아 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관련시설도 많다. 

충청남도에서 이순신이 인연을 맺은 곳은 아산과 해미이다. 아산은 이순신이 청소년 시절과 결혼, 무과 급제에 이르기까지 지냈던 보금자리였으며, 이후 관직 생활 중 파직이나 휴직, 백의종군 중일 때 일시적으로 귀향하여 재충전을 한 본향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산의 어라산 묘소는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후 영면하고 있는 곳이며, 현충사는 이순신을 모신 국내 최대 규모의 사당이다. 

다른 한 곳은 관직생활 중 세 번째로 근무한 서산시 해미이다. 이순신이 35세 때 근무한 해미에는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있었는데, 이순신은 충청병사의 군관으로 근무하면서 극히 청렴한 생활을 한 곳으로 유명하다. 당시 이순신이 거처하던 방에는 옷과 이불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없었고, 출장을 다녀오면 남은 출장비를 반드시 주관자에게 반납했다는 일화가 있다.
/제장명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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