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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공주의 서원, 사곡면 호계리 고로서원(古老書院)

2021.12.02(목) 20:13:25 | 잔잔한 미소 (이메일주소:ih2oo@hanmail.net
               	ih2oo@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공주에는 모두 4개의 서원이 있다.
바로 충현서원, 용문서원, 명탄서원 그리고 고로서원이다.

먼젓번 본 명탄서원에 이어 이번에는 고로서원을 찾아가 보았다.
고로서원이란 이름이 생소하고 어떤 곳인지도 궁금했다.

사곡면 호계리에 있는 고로서원
▲ 사곡면 호계리에 있는 고로서원

고로서원은 조선 단종 때 우의정을 지낸 애일당(愛日堂) 정분(鄭○)과 그의 양아들 포옹(逋翁) 정지산(鄭之産)을 배향한 사우(祠宇)이며 충효사(忠孝祠)라고도 불린다. (출처: 서원연합회 (seowonstay.com)

공주의 진주 정씨 충장공파와 관련된 고로서원에는 충성으로 임금을 섬긴 정분과 효도로 부모를 모신 정지산을 위한 사우 충효사를 보고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고로서원 전경
▲ 고로서원 전경

고로서원 가는 초입에 오래된 소나무 아래에 비석 세 개가 보이는데 이는 정분과 정지산의 신도비와 여산송씨 사적비이다.

고로서원 입구의 비석
▲ 고로서원 입구의 비석

가장 왼쪽 비는 애일당 정분을 기리는 비이고 중앙은 정분의 양자 정지산에 대한 내용이며 오른쪽 비는 정분의 셋째 손부를 칭송하는 비이다.

그 중 여산 송씨 사적비를 읽어 보면 조상의 사판을 모시고 이곳에 정착하여 자자손손 번영할 수 있게 터전을 마련한 정지산의 셋째 자부(정분의 셋째 손부) 여산 송씨에 대하여 자세히 적혀있다.

여산 송씨 사적비
▲ 여산 송씨 사적비

이 세 개의 비 뒤쪽에는 하나의 정려가 있는데 정분과 정지산의 정려이다.
공주시에서 1982년에 이 정려를 짓고 사당에 걸려 있던 1804년 정분이 받은 충신 명정(命旌)과 1905년 정지산이 받은 효자 충신 명정을 옮겨 달았다. (출처 공주숭모회 발핼 숭모지. p.47)

고로사 정려
▲ 고로사 정려

정려에 대한 안내판을 보면 이곳에 제향 된 두 분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특히 정분은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과 맞서 오직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을 몸으로 실천했던 사람이다.

고로사 정려 안내판
▲ 고로사 정려 안내판

이곳을 지나 좀 더 들어가면 고로서원 건물이 나오는데 주변 공터는 자동차 여러 대를 주차할 수 있게 넓다.
  고로서원 뒤로 정분의 부조묘(不○廟) 건물과 옆에 충효사 건물이 보인다.

고로사 부조묘와 충효사
▲ 고로사 부조묘와 충효사

먼저 정려에서 가장 가까운 곳인 고로서원 안을 들어가 보았다.
정면에 고로서원(古老書院)과 경모재(敬慕齋)라는 현판이 걸렸다.

마당에는 이곳 경모재 중건비가 세워져 있어서 읽어보니 진주 정씨 문중에서 세운 뜻과 내력이 자세히 적혀있다. 1924년 처음 세운 뒤 진주 정씨 충장공파 문중에서 외부 도움 없이 새로 2019년에 세웠다고 적혀 있다.

고로서원
▲ 고로서원

경모재 중건비
▲ 경모재 중건비

고로서원의 가장 뒤쪽에는 충장공 정분의 부조묘(不○廟)가 있다.
정분이 1808년에 받은 것을 계기로 자손들이 세웠다는데 정면에는 부조묘 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내부는 볼 수 없었다.

정분 부조묘
▲ 정분 부조묘

부조묘 오른쪽 옆에 보이는 작은 건물이 충효사이다.
부조묘와 충효사 삼문에는 같이 의재문(義在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의재문 앞에는 충효사 중건기가 세워져 있는데 진주 정씨 문중에서 정분과 정지산 두 분의 충과 효 정신을
기리는 의미에서 세웠다는 내용이다.

충효사
▲ 충효사

충효사는 우의정으로 단종을 보필하다가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사사(賜死)된 정분과 그의 양자 정지산을 배향하는 사당으로서 1982년 정분의 충절과 정지산의 효행을 기린다는 뜻에서 충효사라 명명하였고 충효사의 주련은 충장공 애일당 정분의 충과 효에 대한 마음을 담은 내용으로 귀양지에서 죽음을 앞두고 읊은 시라는데 애절한 마음을 나타내는 듯 부끄러울 괴(愧) 자가 8번 들어있다.

충효사 주련
▲ 충효사 주련

아괴하재 괴재신(我愧何在 愧在身) 앙괴우선 부괴인(仰愧于先 俯愧人)
차괴지중 유대괴(?愧支中 有大愧) 충괴오군 효괴친(忠愧吾君 孝愧親)
 
내 부끄러움 어디에 있나 부끄러움 내 몸에 있고
우러르니 하늘이 부끄럽고 굽어보니 사람이 부끄럽다.
이런 부끄러움 속에 큰 부끄러움 있으니
임금께 충성 못 한 부끄러움 부모에게 효도 못 한 부끄러움
 
공주의 서원, 고로서원을 찾아 알게 된 내용은
이곳에 배향된 인물에 대한 사실이다.
 
정분(鄭○)은
1416년 문과에 합격하여 이조, 병조, 승정원 등에서 요직을 두루 거쳐
1436년 충청도 관찰사로 공주에 일시 거주타가
이조, 공조, 예조참판, 호조판서, 의정부 우의정에 오르는 등
조선 초기의 문관으로 행정가였다.
 
또한, 당대 최고의 토목, 건축 전문가였다.
1443년 공조참판을 지냈고 1447년부터는 숭례문, 홍인문, 창경궁 등을 감독하여 건립하였다.
이렇게 정분은 예조, 호조, 의정부의 요직뿐만 아니라 병조의 요직과 체찰사로서 국토방위에도 많은 공을 세웠으며 토목, 건축 등의 분야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여러 방면에서 업적을 남겼다. (출처 공주숭모회 발핼 숭모지. p.48)
 
정지산(鄭之産)은 정분의 양자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1445년(세종 27) 사마시에 합격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450년에 호조정랑이 되었다.
1458년(단종 1)에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황보인, 김종서와 그의 양 아버지인 정분을 죽이자 벼슬을 버리고 공주 동혈에 들어갔다. 세조가 그의 재주를 아껴 몇 번이나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1459년(세조5)에 김시습과 함께 단종과 단종을 위하다가 죽은 충신들의 넋을 동학사 숙모전에 초혼하여 제향하였다. 뒷날 정조 때 판서에 증직되고 충신 효자의 정려가 내려졌다.
동학사 서무에 배향되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고로서원
▲ 고로서원

공주에 있는 고로서원도 조선시대 서원으로 넓고 좋은 터에 훌륭한 인물의 충효정신이 배어있는 공간이므로 정씨 문중뿐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유산으로 잘 보존하고 또 잘 활용돼야 할 것이다.
 
고로서원의 주소는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능계길 60-67 (사곡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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