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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공주의 인물, 조선통신사 신유와 김인겸

2021.11.09(화) 17:00:22 | 잔잔한 미소 (이메일주소:ih2oo@hanmail.net
               	ih2oo@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지난 11월 3일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원장 조한필)이 주관하는 답사 행사 「조선 통신사의 길, 평화를 걷다」에서 배우고 느낀 점이 많았다.

문화재청이 추진하는 2021년 세계유산 활용 프로그램의 수행 단체인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에서는 지난 10월 조선통신사 콘텐츠 활용 학술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고,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이런 답사 행사를 했으며 이번이 세 번째이다.

1조선통신사의 길, 평화를 걷다
▲ 1조선통신사의 길, 평화를 걷다

이번 행사는 공주에 있는 조선통신사 관련 문화유적을 답사하여 공주 사람으로 특히 조선통신사로 활약했던 신유와 김인겸을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이날 아침 8시 30분 공주 중동에 있는 충남역사박물관 주차장에서 20여 명의 참가자가 이인면 달산리에 있는 공주의 조선통신사 신유(申濡)의 묘소를 답사하였고 이어서 무릉동의 김인겸 묘소와 전막의 김인겸 가비(歌碑)를 둘러보는 동안 우리 공주 지역에서 조선통신사로 활약했던 분들을 재조명할 수 있었다.

충남역사박물관
▲ 충남역사박물관

참가 회원 점검
▲ 참가 회원 점검

동행한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문경호 교수의 설명을 들었는데 자세하고 알기 쉽게 해 준 해설은 일행들에게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오늘을 계기로 알게 된 내용 중에 중요한 것은 조선통신사의 의미와 역할, 규모, 일정, 성과 등은 물론 조선통신사 신유와 김인겸에 대한 이해와 그 업적을 알게 된 점이다.

오늘 참가자에게 배포된 자료와 문경호 교수의 해설로 조선통신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우리 공주와 충남에 대한 애착을 느끼게 되었다. 모두 오늘 행사에 참여한 보람이다.

먼저 조선통신사에 대한 내용이다.
통신사는 조선에서 일본에 파견된 공식적인 외교사절단으로 신의로써 교류하는 사절이라는 의미가 있다.
조선통신사는 1607년을 시작으로 1811년까지 12차례 활약하였다.

조선통신사를 세한사로 했다가 통신사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는데, 구 구성은 정사(正使), 부사(副使), 종사관(從事官)을 비롯하여 제술관, 서기, 역관, 선원 등을 포함하여 약 500명 정도였다니 엄청난 대규모다. 

통신사는 한양에서 부산포까지 육로, 부산포에서 배를 타고 대마도를 거쳐 오사카, 에도까지 왕복하는데 약 5~8개월이 결렸다고 한다.

목적은 국서의 전달이었고 가고 오는 동안 엄청난 행사가 이어졌다고 하니 그 옛날 어마어마한 행사였음이 그려진다.

국내에서 조선통신사 기록물을 소장하고 있는 지역은 서울과 부산을 제외하고 충남이 유일하다.
특히 공주는 통신사로 다녀온 신유와 김인겸이 있고 그의 묘소가 남아있다.
세계 기록유산으로 지정된 김인겸 관련 기록물 4건, 신유 관련 기록물 3건이 포함??다고 하니 조선통신사와 충남의 연관성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참조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발간 해설자료)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죽당(竹堂) 신유(申濡)의 묘소다. 신유의 본관은 고령이며 묘소는 공주시 이인면 달산리에 있다. 이곳에는 공주시에서 2020년 8월의 역사 인물로 신유를 선정했다는 안내판이 서 있다.

공주의인물조선통신사신유와김인겸 1
▲ 신유 안내판  

신유는 사간원정언, 이조좌랑 등 벼슬을 하였고 외교사절로 큰 활약을 하였는데 1643년(인조 21)에는 조선통신사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1647녀 38세 때 공산현감으로 부임하여 공주와 인연을 맺었다.
그의 문집 죽당집이 유명한데 거기에 공주십영(公州十詠)을 묘사했다.

이인면 달산리 죽당 신유의 묘역을 보니 중앙에 신유의 부친 신기한, 좌에 신유, 우에 동생 신혼의 묘가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묘소 부근에 오래된 모과나무가 있고 주변에 대나무가 많은데 대나무를 그냥 두는 것은 그의 호 죽당(竹堂) 때문이란다.

신유의 묘소 설명을 듣는 회원들
▲ 신유의 묘소 설명을 듣는 회원들

신유 묘소 부근 대나무
▲ 신유 묘소 부근 대나무

다음으로 김인겸에 관한 이야기다.
김인겸은 본관이 안동이며 호는 퇴석(退石)이다.

장편 기행 가사인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를 지은 김인겸(1707~1772)은 공주시 무릉동 출신으로 묘소도 현재 무릉동에 있다.

공주시 무릉동 마을
▲ 공주시 무릉동 마을

김인겸은 그의 나이 57세인 1763년(영조 39년)에 계미통신사 종사관 김상익(金相翊)의 서기로 뽑혀
통신사 조엄(趙ㅇ)과 함께 일본에 다녀왔다.
돌아와서 견문한 내용을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에 담았다.

김인겸의 묘소는 공주시 무릉동에 있는데 좁은 길을 지나 가파른 언덕을 올라 찾아가기 어려웠다.

김인겸 묘소 가는 길
▲ 김인겸 묘소 가는 길

무릉동은 무릉도원과 관련된 듯하지만, 물러난 돌이라고도 하고 물기 많은 무른 들이라고도 한다는데 어쨌든지 무릉동이다.

계미통신사의 정사(正使)는 조엄인데 김인겸이 맡은 서기의 역할은 자신이 지닌 문장 능력 등을 일본인에게 보여줌으로써 조선인의 우월성을 느끼도록 함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김인겸의 가비(歌碑)가 있는데 바로 공주시 신관동 전막 금강교 북단 정안천교 가까운 가로공원으로
오가는 차량이 많은 도로변에 있다.
가비의 앞면에 김인겸의 초상과 일동장유가의 일부가 새겨져 있다.

공주시 신관동 전막의 김인겸 가비
▲ 공주시 신관동 전막의 김인겸 가비

김인겸의 일동장유가는 일본을 다녀온 한글 기행 가사로 그의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며 통신사의 규모와 당시 일본의 풍속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본다.

오늘 다녀온 두 분의 묘소를 비교해 볼 때 신유의 묘역은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음에 비하여 김인겸의 묘소는 더 많은 관심을 두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은 충남의 조선통신사 관련 인물, 유적과 유물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체계적으로 보존하여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남녀노소 지역주민 누구나 함께 참여하고 즐기는 프로그램의 운영과 개발을 통해 문화 향유 기회 확대 및 국가의 관광 자원을 개발하고 활성화하고 있다.
(출처: 답사 안내 책자, 조선통신사의 길, 평화를 걷다)

답사 안내 책자 표지
▲ 답사 안내 책자 표지

공주시에서도 이달의 역사 인물을 소개하면서 공주와 관련 있는 인물의 업적을 본받도록 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공주와 관련된 역사 인물 그리고 역사 유적의 재조명은 계속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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