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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어딜 걸어도 성지(聖地)가 되는 마을

해미순교성지가 있는 마을을 걷다.

2021.11.04(목) 22:08:53 | 황토 (이메일주소:enikesa@hanmail.net
               	enikesa@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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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미천

해미천을 따라 걷는 10월의 늦가을 길이 한적하다. 지난 봄, 분위기의 절정을 연출했던 벚꽃은 단풍으로 물들고 청명한 날씨는 걷기에 알맞았다. 하늘의 구름은 붓으로 찍었는가 하면 물감을 흘리고 흰 선을 긋기도 했다. ‘하늘멍’을 하는 중에 저만치서 해미순교성지의 팔각형 탑모양의 망루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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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미천의 가을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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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 넘은 노모가 계시는 서산 대산에 들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그렇듯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꽉 차오른다. 바로 집으로 가기보다는 묵직한 마음을 비우고 싶었다. 그래서 들른 곳은 해미순교성지가 있는 마을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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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미천 코스모스꽃길과 벤치의 그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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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늘막이 있는 해미천 코스모스길

코스모스 꽃길 중간에는 그늘막이 있는 벤치가 있다. 이곳을 기준으로 해미성당과 해미순교성지가 서로 바라보는 모양새다. 해미순교성지가 있는 방향으로 걷다가 도로가 나오는 길로 올라오니 한 가족으로 보이는 네 사람이 성지 입구의 ‘생명의 책’ 앞에서 묵상하듯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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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책' 앞에 서 있는 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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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책' 가운데 있는 호야나무(회화나무)

‘생명의 책’은 ‘2014년 8월에 이곳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해미 순교성지에서 이루어진 아시아 주교들과의 만남에서 말씀하신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남기기 위한 조형물’이다. 생명의 책 한 가운데는 천주교 박해 역사의 상징인 호야나무(회화나무)가 실제로 심어져있다. 이파리를 떨궈 낸 호야나무는 하트모양 안에서 자란다. 저 나무가 점점 자라면 공간이 좁아질 것 같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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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안으로 가던 중에 조금 전 ‘생명의 책’앞에 있던 가족들을 또 만났다. 아이들은 기도 손을 하고 엄마아빠는 그 아이들을 사진에 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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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둠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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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신자를 생매장 시켰던 진둠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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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리개돌 앞에서 기도하는 노부부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신앙을 지켰던 분들의 숭고함이 깃든 곳. 박해 때 천명 이상의 신자가 생매장을 당하고, 특히나 가장 잔인하게 사람을 돌바닥에 패대기쳐 죽였던 ‘자리개돌’ 앞에서는 고개가 절로 숙여지며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자리개돌이 있는 곳에서는 노부부 두 사람이 서서 한참을 기도하고 있었고, 나는 발짝 소리를 내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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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미성지순례길 표지가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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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걷다가 '십자가의 길' 앞에 잠시 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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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가장자리에 있는 '십자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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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 앞의 '십자가의 길' 

추수를 앞둔 논길을 따라 걷는데 ‘해미성지순례길’표지판이 보였다. 서산 아라메길 2구간이다. 길을 걷는 중간엔 ‘십자가의 길’ 14처가 이따금씩 나타났다. 생각 없이 걷다가도 눈앞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십자가의 길. ‘너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느냐’고 묻는 조용한 음성이 들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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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배추밭 너머로 보이는 해미순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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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룩과 겸손의 색, 울트라마린.

골목길에 들어서니 늦가을 햇빛이 내려앉는 빨랫줄에 핑크이불과 옷가지가 널렸다. 담장 역할을 하는 ‘울트라마린’의 파란빛깔펜스와 전봇대가 서 있는 골목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텃밭엔 이제 막 정돈을 끝낸 밭이랑이 가지런하다. 필요할 땐 냉큼 호박죽을 만들어 먹어도 좋을 늙은 호박이 늦가을의 정취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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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이라도 다 끌어안을 것처럼 가을햇살에 반짝이는 파란 색을 바라보았다. 이곳 읍내리에서 보는 청색, 울트라마린의 색감은 유난히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이탈리아 유명화가가 그린 ‘슬픔에 찬 성모’나 ‘성모의 눈물’ 혹은 ‘축복 받은 성모마리아’의 그림(유화)에서 기도하는 마리아가 입은 망토는 울트라마린이다. 거룩함과 겸손을 상징하는 생생한 파란색. 그 쨍한 색에 천주교신자에 대한 박해와 아픔이 서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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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백, 소박한 우렁쌈밥

걷다가 우렁쌈밥을 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쌈채소와 자작한 된장 속에 우렁이 푸짐하다. 무거웠던 마음은 밥이 들어가면서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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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미성당과 시내버스정거장

걷기만 해도 위로를 받는 곳, 어딜 걸어도 성지가 되는 마을. 해미성당이 보이는 버스정거장 위로 하늘은 온통 흰 구름이 덮였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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