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교육적 측면에서 들어온 천주교는 보수적인 실학자들에 의해 박해를 당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진 천주교 박해로 인해 여행을 하다 보면 지역마다 순례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가 믿는 종교를 떠나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 역사적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서울에서부터 시작된 천주교인들의 처형은 충남으로까지 이어졌고, 그중 순교자가 가장 많았던 홍주성지에는 6곳의 순교 터가 존재합니다. 홍주성 역사관 앞 내포천주교순례길 5코스라고 적힌 이정표를 따라 순례길을 걸어보았습니다.

▲내포천주교순례길 5코스 시작점, 홍주성 역사관

맞은편 홍성군청을 지나면서 홍주성지순례길 이정표가 잘 되어있기 때문에 길을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시간상으로 약 1시간 정도 걸렸는데, 짧다면 짧은 길에 천주교인들의 처형장이 다양한 형태로 있다니 당시 처참했던 현장의 모습이 잠시 스쳐 지나가는 듯하여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홍주성지순례길 이정표

골목을 따라 약 2분 정도 걷다 보면 옛 저잣거리 표지석이 나옵니다. 조선시대 장터였던 이곳이 왜 순교성지가 되었을까? 당시 사람들이 많이 다니던 저잣거리를 통해 각처에서 체포된 목사나 진영장들이 동헌으로 끌려가 옥살이를 하기도 하고, 신자들은 조리돌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욕을 하고, 돌을 던지고, 침을 뱉으며 천주교 신자들을 조롱했다고 합니다.

▲홍주순교성지 신앙증거터, 옛 저잣거리

▲저잣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조리돌림 당하는 장면

저잣거리에서 길을 건너 참수터를 가다 보면 홍주읍성 북문이 나옵니다. 조선 초기 홍주읍성의 출입문이었던 곳이었는데 훼손이 많이 된 상태에서 복원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본격적인 순례길은 조금 더 위로 가면 나오는 북문교를 건너면서부터입니다.

▲홍주읍성 출입문 북문

▲북문교로 이어지는 순례길

월계천 위로 나있는 북문교를 건너면 순례길 이정표를 사이에 두고 도심과 숲의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햇볕이 뜨거워 나무들 사이로 들어가 봅니다. 참수터와 생매장터가 나온다니 그늘 밑이 왠지 더 서늘하게 느껴집니다. 바로 옆에 주차장이 있으니 이곳부터 걸어보아도 좋습니다.

▲참수터와 생매장터로 이어지는 성지순례길

순교터 중 참수순교는 백정 신분으로 천주교를 믿었던 황일광 시몬과 유 마르타가 참수된 곳입니다. 참수형이라 하면 도끼나 검, 단도 등으로 목을 베는 형벌입니다. 지금은 잔혹하다는 이유로 금기하고 있는 형벌이지만 당시에도 최고의 처형 방법이었을 것 같습니다.

▲참수순교터

▲목을 베는 참수형을 당한 황일광 시몬

참수터를 지나 백월교에 다다르면 대교공원이 나옵니다. 전국에서 두 번째로 순교자가 많은 홍주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4분의 복자가 탄생하게 됩니다. 충청도 첫 순교자인 원시장 베드로, 감사의 비장을 지냈던 방 프란치스코, 교리를 배워 가족과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던 박취득 라우렌시오, 백정 신분으로 천주교를 실천했던 황일광 시몬을 성지순례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대교공원으로 가는 길

▲4분 복자를 만날 수 있는 대교공원

▲홍주성지 4분 복자

홍성여고 사거리에 있는 광경교를 지나면 생매장터가 나옵니다. 이곳은 십자가의 길이 꾸며져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순례길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시간을 기억하는 고통의 길이라고도 합니다. 총 14처로 각처에 바치는 기도문이 정해져 있습니다.

▲생매장터로 가는 길

▲십자가의 길

월계천과 홍성천이 만나는 모래가 쌓인 곳이 생매장터입니다. 1868년 무진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들였지만 수용할 곳이 마땅치 않자 이곳에 생매장을 한 현장입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순교를 당한 신자들이지만 생매장이라는 잔혹한 형벌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순례자들의 미사 장소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생매장터 인근 순교공원

▲생매장터 표지석과 안내판

▲홍주 천주교 순교성지 비문

생매장터에서 다시 홍주성 역사관으로 돌아가는 내포문화숲길 5코스로 가는 길은 데크로 잘 깔려 있어 걷기 편합니다. 햇볕을 피할 수 없는 곳이라 조금 덥지만 순교자들을 생각하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싶습니다.

▲내포문화숲길 5코스

▲홍주성 역사관으로 가는 길

▲걷기 좋은 데크로드 순교길

도보로 10분 정도 시내 쪽으로 걸어오면 홍주읍성 4대문 중 동문인 조양문이 나옵니다. 일제강점기에 읍민들의 노력으로 조양문을 지켰다고 합니다. 홍주의병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합니다. 계속 이어지는 천주교순례길을 따라가다 보면 평화의 소녀상을 만납니다. 순례길을 걷다가 만난 소녀상을 보니 마음이 더 짠해집니다.

▲홍주읍성 조양문

▲이어지는 천주교 순례길

▲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 뒤로 홍주성 역사 공원과 넓은 주차장이 나옵니다. 주차장 내에 감옥터와 우물터가 있습니다. 홍주의 동헌으로 잡혀온 많은 신자들이 고문을 당한 감옥터에는 형구틀을 체험할 수 있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감옥터가 있는 주차장

▲홍주성지 감옥터

▲재현되어 있는 감옥과 형구틀

감옥터 앞 우물터에 나오는 물은 아직도 시원하고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저도 순례길의 목마름을 이곳에서 해결했습니다. 이곳은 천주교 신자들의 박해가 시작되자 순교를 자청한 원시장 베드로가 밧줄에 묶여 알몸으로 얼어 죽음으로써 충청도에서 첫 번째로 희생된 곳입니다. 잔인했던 처형장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어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우물터

▲충청도 첫 희생자가 된 원시장 베드로

▲홍주성지 순례길(내포문화숲길 5코스)

홍주 동헌으로 잡혀온 천주교 신자들은 고문과 문초를 받는 수난을 겪다가 많은 이들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또, 저잣거리에서 많은 이들에게 이유 모를 조리돌림을 당해야 했습니다.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참수와 생매장을 당해야 했다니 끔찍했던 시대가 원망스럽습니다. 종교를 떠나서 순례길을 걷다 보면 이곳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바랍니다. 순교터에서 일어난 아픈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동코스
홍주성 역사관 - 홍성군청 - 저잣거리 - 홍주읍성 북문교 - 대교공원 - 참수터 - 생매장터 - 홍주순교성지 - 조양문 - 평화의 소녀상 - 감옥터(우물터) - 홍주성 역사관
*이동시간 1시간
*이동거리 2.6km

홍주성 역사관
충남 홍성군 홍성읍 아문길 20

대교공원
충남 홍성군 홍성읍 대교리 411

천주교 홍주순교성지
충남 홍성군 홍성읍 대교리 376

조양문
충남 홍성군 홍성읍 조양로 97-5 홍성군청

홍주성지성당
충남 홍성군 홍성읍 아문길 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