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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청백리의 표상, 고불 맹사성의 자취를 찾아!

2021.05.14(금) 10:35:00 | 네잎클로버 (이메일주소:venusmi8@hanmail.net
               	venusmi8@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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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괴정 (느티나무) 

아산 가볼만한 곳으로 고불 맹사성 기념관을 찾았습니다.
고불 맹사성 기념관은 아산시 배방읍 중리, 설화산을 서남으로 등지고 배방산을 동북으로 바라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초, 정승을 지낸 맹사성의 옛집인 맹씨행단과 그를 기리기 위해 조성된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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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주차 공간에 차를 세우고, 고불 맹사성 기념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요, 고불 맹사성(1360 -1438)은 황희 정승과 함께 조선시대, 우리나라 대표적 청백리의 대명사로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맹씨행단을 둘러보기 전에 먼저 기념관에 들러 맹사성의 업적과 일대기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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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고불 맹사성의 초상화를 마주하게 됩니다.
조선시대 청백리로 여러 가지 일화를 남긴 맹사성은 어떤 분이었을까요?
기념관 좌측에는 영상실이 있고, 반대편에는 맹사성의 여러 가지 일화와 관련된 청렴이야기, 맹씨행단의 역사, 유물 등이 전시 공간을 메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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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사성은 조선 전기 때, 문신이자 정치인· 유학자로 1360년 고려 공민왕 때 충남 온양(현 아산)에서 태어났습니다. 맹사성의 본관은 신창, 자는 자명, 호는 고불로 신창맹씨는 중국 맹자의 40세손인 맹승훈이 당나라 말기에 신라로 이주해와 충남 아산 지역 신창에 정착하면서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창맹씨는 고려 이부전서를 지낸 맹의를 1세조로 하며, 조적의 난을 물리친 공으로 신창백(新昌伯)에 봉해져 본관을 신창으로 하였습니다. 맹사성은 맹의의 4세손이며, 맹사성의 할아버지는 맹유로 고려의 고위 관료인 이부상서였고, 아버지는 고려 수문전제학 맹희도이며, 최영 장군의 손녀사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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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사성은 우리나라 전통 목관 악기인 대금을 즐겨 불었다고 하는데요, 기념관 옆 공원에는 소를 타고 대금을 불고 있는 소박한 모습의  고불 맹사성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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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의 손주 사위인 맹사성은 뛰어난 업무 능력과 인품을 바탕으로 조선에서도 중요한 직무를 맡으며 관료가 되었습니다. 권근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젊은 나이에 벼슬길에 오른 맹사성은 4명의 왕을 도와 나라를 다스렸고, 세종대왕 때는 황희 정승과 함께 조정의 최고 책임자인 정승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우리 고유 음악인 향악에 지식과 관심이 많았던 맹사성은 조선 초기 음악을 정리하는 등 나라의 음악적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명나라와 왜의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청렴한 관료로 명재상이라는 칭송을 받았습니다.

쌍행수(수령 640여 년 추정)

▲ 쌍행수(수령 640여 년 추정) 

맹사성 기념관 인근에는 맹씨행단이 자리해 있습니다. 고목을 지나 행단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아름드리 쌍행수(보호수)가 방문객들을 맞이해 주는데요, 본래 행단은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강학을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이후,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익히던 곳을 행단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맹희도와 맹사성이 이곳에서 학문에 정진하며 후학을 모아 강론했던 곳으로 맹씨행단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맹사성 일가가 살던 옛집(사적 제109호)

▲ 맹사성 일가가 살던 옛집(사적 제109호) 

맹씨행단의 공간 구성은 본채 공간 · 가묘 공간 · 문간채 공간 · 후원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본채 공간에는 맹씨 고택과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고, 고택보다 조금 높은 곳에는 가묘 공간인 세덕사가 있습니다. 맹씨 고택은 1330년(고려 충숙왕 17년) 2월 무민공 최영의 부친인 최원직이 건축하였다고 하며, 실제로 최영 장군이 살았던 집으로  우리나라 살림집 중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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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은 고려말, 최영 장군의 손녀사위인 맹사성과의 인연으로 맹사성의 부친 맹희도가 기거한 이래 대대로 맹씨 후손에게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거목으로 자란 쌍행수는 세종대왕 때, 좌의정으로 봉직하고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이 1380여 년경에 심은 것이라 하며, 사당 세덕사에는 고려 말 두문동 72현인 맹유와 맹희도·조선시대 정승인 맹사성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세덕사

▲ 세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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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담 경계 밖으로 나가면 고택 남동쪽 120m 거리에 구괴정이 있습니다.
구괴정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푸른 자연이 펼쳐져 있어 걷는 즐거움이 있었는데요, 구괴정은 세종 때 맹사성· 황희·권진 3 정승이 국사를 논의하고 아홉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곳으로 삼상당이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구괴정 앞에는 갖은 풍파에도 강인한 생명력을 유지하며 버티고 있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드문드문 오가는 이들을 반깁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일곱 그루의 느티나무는 수명을 다하였으며, 현재는 두 그루만이 허리를 굽힌 채 흥망성쇠 했던 조선시대 500년의 역사를 말없이 대변해 주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구괴정

▲ 구괴정

조선시대, 시인과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던 구괴정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었는데요, 푸르름이 가득한 5월, 아산 가볼만한 곳으로 맹씨행단(맹사성 고택)으로 발걸음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조선시대의 청백리로 백성의 아픔을 함께 나눈 고불 맹사성의 자취를 따라 호젓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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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맹씨행단
- 소재지 : 충남 아산시 배방읍 행단길 22 (무료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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