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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솔뫼성지, 성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를 찾아!

2021.05.06(목) 08:13:46 | 네잎클로버 (이메일주소:venusmi8@hanmail.net
               	venusmi8@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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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가볼만한 곳으로 가톨릭 성지로서 명성 높은 솔뫼성지를 찾았습니다.
솔뫼성지는 서산으로 향하던 중, 이정표가 눈에 띄어 예정에 없이 찾은 곳인데요,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평소 방문해보고 싶었던 곳으로 고민 없이 달려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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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성지는 충남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산45-3에 위치해 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성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요, 입구에는 솔뫼성지임을 알리는 표지석과 프란체스코 교황 방문 기념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이 방문객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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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는 충청도에서 가장 좋은 땅, 내포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데요, 충청도에는 솔뫼성지를 비롯한 순교 성지가 곳곳에 자리해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신앙의 못자리라 불리는 '내포'는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까지 들어와 포구를 이루어 배들이 드나들며 새로운 문물을 전해주는 장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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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태어난 곳으로, 솔뫼는 '소나무가 우거진 언덕'이라 하여 붙여진 순우리말입니다. 이곳 솔뫼성지는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부터,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1814년 해미에서 순교), 종조부 김종한(1816년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 부친 김제준(1839년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1846년 서울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았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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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성지에는 김대건 신부의 생가와 성당· 기념관· 동상· 야외 공연장· 추모탑· 추모비 등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야외를  한 바퀴 돌아보고, 기념관으로 발걸음을 돌려 김대건 신부의 일대기를 살펴보았습니다. 기념관에는 김대건 신부의 출생에서 선대로부터 실천해온 천주교 신앙, 18세기의 조선, 신부의 선교활동, 체포와 순교의 기록들, 김대건 신부의 유품들이 전시공간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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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는 1821년 8월 21일, 현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당시에는 면천 고을 솔뫼)에서 태어났습니다.
김대건의 증조부인 김진후 비오는 1785년 충청도 내포의 사도 이존창(루도비코)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김대건 신부가 솔뫼에서 태어났을 당시에는 이미 증조부와 종조부가 순교한 천주학 집안이어서 가세가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고 하는데요, 천주교는 수용 직후부터 정부의 탄압을 받아 백 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박해 사건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조부 김택현은  박해를 피하기 위해 김대건이 7세 무렵,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 '골배마실'이라는 산골로 이사까지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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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순교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란 김대건 신부는 골배마실에서 신학생으로 간택되어 1836년, 마카오로 건너가 사제수업을 받았습니다. 1845년, 김대건 신부가 25세가 되는 해에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음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조선에 입국한 김대건 신부는 비밀리에 선교활동에 힘썼지만, 체포되어 1846년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그리고,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품에, 1984년 5얼 6일 교황 요한 바오르 2세에 의해 가톨릭교회의 성인품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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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방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학 유학생, 조선의 최장거리 여행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1845년 우리나라 조선전도를 만든 분으로 저서로는 22편의 서한과 한국교회사에 관한 비망록 등이 있어 79위 시복자료가 되었습니다. 1906년, 김대건 신부의 순교 60주년을 맞아 당시 합덕 성당의 주임신부였던 크램프 신부는  솔뫼를 성역화하기 위하여 인근의 토지를 매입하였고,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김대건 신부의 생가터를 고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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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946년 순교 100주년을 맞아 동상과 순교 기념비를 세우면서 소나무 군락지를 중심으로 성지가 조성되기 시작하였습니다. 2004년 생가 안채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고, 김대건 신부 생가터는 1998년 7월 25일 충청남도 문화재 제146호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2005년 10월에 기념관을 완공하여 김대건 신부를 기리고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 생가
▲ 김대건 신부 생가

솔뫼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신앙과 삶의 지표가 싹튼 장소로 '한국의 베들레헴'이라고도 불립니다.
2014년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제3회 한국청년대회가 대전교구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 기간에 프란체스코 교황이  방한하시어 아시아 청년들과의 만남을 솔뫼성지에서 가지게 되었는데요, 2014년 8월 15일, 프란체스코 교황의 솔뫼성지 방문을 앞두고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 신부 유적'은 국가 문화재 위원들의 지질조사와 고증을 통해 국가사적지 제52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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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한쪽 공간에는 프란체스코 교황과 어린 소녀의 동상이 시선을 끄는데요, 이 동상은 프란체스코 교황이 솔뫼성지 방문 당시 한복을 입은 소녀로부터 꽃을 받는 형상입니다.

모처럼 솔향기 가득한 솔뫼성지를 찾아 믿음으로 신앙을 지켰던 김대건 신부의 일생과 업적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경건함이 느껴지는 울창한 소나무 숲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위안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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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로 가톨릭 사제인 김대건 신부는 2021년 올해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되었습니다.
올해는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로 그 의미가 더욱 뜻깊게 다가옵니다.
당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4대에 걸쳐 신앙을 증거한 솔뫼성지를 찾아 잠시 추모하고 순교 정신을 기려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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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성지
- 소재지 : 충남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산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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