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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조선의 카타콤바' 당진 신리성지를 찾아서

2021.03.14(일) 00:10:29 | 유부일기 (이메일주소:serimato603@naver.com
               	serimato60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청남도 당진에서 차로 이동을 하다 보면 유적, 성지 안내 표지를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서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성지순례 장소로 유명하고, 비신자인 사람들도 매력을 느껴 많이 찾아온다는 신리성지, 솔뫼성지, 합덕성당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곳은 충남 당진시 합덕읍 신리에 있는 천주교 성지인 신리성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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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에는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버스 주차공간 비율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보아 이곳은 우리나라의 성지순례지 중 한 곳임에 분명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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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리성지 인근에 위치한 공소의 위치를 표현해주는 안내가 있습니다. 실제로 조선시대에 당진 쪽에 많은 천주교우들이 살았고 그중에 신리는 천주교 탄압기 동안 조선에서 가장 큰 천주교 교우마을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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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명칭은 신리성지라고 되어 있지만 자세한 설명을 보니 '당진신리다블뤼주교유적지'라고 길게 적혀 있네요. 이곳은 내포교회의 초창기 공소가 있던 곳이고 1866년 병인박해 때 이곳에서 체포된 5명의 신부와 신자들이 순교한 유적지입니다. 그 신부들 중 제5대 조선교구장 마리 다블뤼 주교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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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블뤼 주교는 1845년 10월 김대건 신부와 함께 강경 나바위에 첫 걸음을 내디딘 후 1866년 갈매못에서 순교하기까지 21년의 긴 시간 동안 조선땅에서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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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과 멀고 뱃길로 접근하기 좋았던 충남의 지리적 여건과 내포지방의 문화적 개방성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삽교천 수계를 통해서 중국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와 긴밀히 연결될 수 있었던 부분이 다블뤼 주교가 신리에서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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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서양, 서학, 천주교에 대한 배척과 탄압으로 숨어서 종교활동을 순교자들의 흔적이 있는 곳이라 그런지 알 수 없는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넓게 뚫려 있는 공간이고, 이곳을 찾은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 하며 움직이고 있었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요함과 슬픔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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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선교사들의 비밀 입국처이면서 우리나라 천주교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으로 '조선의 카타콤바(로마의 비밀교회)'라는 별칭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당시 조선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억압된 상황이었음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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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과 프랑스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다고 한다면, 한국에는 버그내 순례길이 있습니다. 솔뫼성지에서 합덕성당· 합덕방죽· 원시장과 원시보 형제의 탄생지에 있는 옛 우물, 그리고 무명 순교자 묘역을 거쳐 신리 교유촌에 이르는 천주교 순례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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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km 정도의 순례길로 홈페이지(https://www.dangjin.go.kr/beogeunae)도 운영되고 있는 유명한 성지순례코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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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한쪽 넓은 광장같은 공간에 멋지고 성스러운 입체 동판부조가 있었습니다. 입체적인 표현으로 상당히 웅장해 보이기 때문에 천주교 신자라면 꼭 사진을 남기고 싶은 공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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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안쪽에는 초가집이 하나 보였는데, 이곳은 성 손자선 토마스의 생가이자 앞서 소개했던 성 다블뤼 주교의 비밀성당이자 주교관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866 병인박해 때에 다블뤼 주교가 순교하고 신리교우촌이 파괴되면서 이 집도 주인을 잃었는데, 이후 1927년 이 지역 교우들이 모금을 통해 이 집을 매수하게 되었고 천주교회에 봉헌하여 현재의 형태로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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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복원 작업을 하여 보다 보기 좋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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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바퀴 천천히 돌았는데 거의 30~40분 가량을 걸었습니다. 차분하게 성지를 돌아보며 봄바람을 느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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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떠난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잔디가 초록색으로 변하면 또다른 공간처럼 느껴질 것 같습니다. 날이 좀 더 따뜻해지면 다시 한 번 찾아오고 싶은 장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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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성지이자 실제 성당도 있는 곳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예절을 지켜야 합니다. 금연은 물론이며 음식물이나 애완동물을 반입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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