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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정지와 멈춤은 다시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

12월 계룡시 괴목정의 고요함에 닿다

2020.12.11(금) 16:48:00 | 황토 (이메일주소:enikesa@hanmail.net
               	enikesa@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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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어쩔 수 없이 ‘직진’하던 것들을 멈춰야 하는 때에 살고 있는 요즘이다. 주일마다 만나던 종교예배는 최소한의 인원으로 제한되고, 비대면 실시간 온라인 예배도 이미 익숙하다. 예배를 마친 후, 점심애찬의 맛있고 정겨운 대화를 나누던 일상은 어느덧 오래전의 일인 양 아득하게 느껴진다. 밥집에서조차 밥이 나오기 전과 밥을 다 먹고 나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이제 상식이다. 특히나 먹으면서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는 건 아무래도 서로에게 부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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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목정의 느티나무
 
추억을 더듬듯 다시 찾게 된 계룡시의 괴목정. 흐리고 쌀쌀한 날씨지만 오히려 찬 기운이 정신을 맑게 한다. 주차장의 차들이 있는 것으로 나 혼자가 아니구나 짐작했다. 양쪽 좌우 우뚝 선 느티나무 사이로 부드럽게 보이는 계룡산자락이 배경이 되었다. 이곳에 오면 누구라도 저 나무를 찍지 않을 수 없다. 괴목정의 정체가 저 나무로부터 전해지기 때문이다.  

193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왕위에 오른 뒤, 군신을 거느리고 무학대사와 계룡산 아래 도착하여 신하들과 함께 조정과 시정의 형세를 살피게 했다고 한다. 당시 왕의 일행이었던 무학대사가 자기의 지팡이를 이곳에 꽂았는데, 그 지팡이가 지금의 느티나무(괴목)이고 그 옆에 정자가 있어 괴목정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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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타난 노란 길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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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목정
 
괴목정으로 가기 전, 노란 길냥이가 꼬리를 위로 세우고 따라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양이 간식을 준비할 걸. 준비하지 않을 때만 어디선가 꼭 나타난다. 날씨가 추운데 밥과 물은 어떻게 먹는지 그나마 상태가 양호했는데, 짧은 해가 사라지면 추위를 어찌 견딜까. 불쑥 나타났던 고양이는 다시 시나브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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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열매를 매달고 있는 나무, 이름이 뭘까요?
 
이파리를 다 떨군 나무는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짐을 비우고 가벼워진 나목이 있는가 하면 이 겨울에 점점이 붉은 열매를 매단 나무가 있다. 이파리는 하나 없고 오로지 가지에 매달린 작은 열매. 이름 모를 이 나무는 왜 이제야 열매를 맺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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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과 소나무, 대나무 그리고 다소곳한 단발머리로 모인 무궁화나무
 
바람이 불 때마다 바람결로 흔들리는 대나무 이파리와 소나무는 지금도 푸르다. 그 앞에 회색빛깔로 모인 무궁화나무는 자기들끼리 힘을 모으자고 스크럼을 짜는 것 같다. 다소곳하게 보이지만 겨울바람에 맞서려면 같이 힘을 내야 한다고 알려주는 소리가 귓등으로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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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설치 금지' 
 
여러 사람들이 이용하는 이곳에 정자를 울타리 삼아 텐트를 치는 사람이 있나 보다. 정자 한켠엔 공적인 공간을 개인적인 공간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펼침막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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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에 쓰러진 팻말
 
너른 잔디엔 안내팻말이 쓰러져 있었다. 팻말엔 '이럴 때 빨리 구급차 타자'라는 글이 있었고, 심근경색과 뇌졸중의 전조증상을 쉽게 알리기 위해 ‘구급차타자’에 음을 붙여 쓴 심각한 상황을 표현한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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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구-급-차-타-자'
 
'-구토와 벼락두통이 생길 때', '-급하게 옆에서 손을 뻗어도 모를 때', '-차렷자세가 안될 때', '-타타타 발음이 안 될 때', '-자기도 모르게 썩소가 될 때'. 나는 맨 끝에 글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썩소’가 터졌다. 썩소는 '썩은 미소'의 줄임말로 말 그대로 사악함이 풍기는 썩은 미소이지 않은가. 나는 쓰러진 팻말과 같이 119 구급차를 빨리 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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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신 분 모두의 행복을 위해 쓰레기는 되가져가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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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
 
한가족인 듯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서로 엄마아빠를 부른다. 킥보드와 공놀이를 끝내고도 요구 사항이 남아있나 보다. 잠시 내 눈에 내 맘에 들어왔던 괴목정의 겨울, 그 고요함에 닿았던 멈춤의 시간이 다시 나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가 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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