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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난한 시인이 ‘오늘밤 눈을 푹푹’ 내리게 할 것 같은 여기

계룡시 두마면 입암저수지의 겨울

2020.12.07(월) 13:57:44 | 황토 (이메일주소:enikesa@hanmail.net
               	enikesa@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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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12월의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절기상 7일(월)은 대설(大雪)이다. 아주 잠깐 포근했던 주말이 지나 어젯밤부터는 찬 기운이 선득하다. ‘대설’은 물이 얼고 땅이 어니 비로소 농한기에 접어드는 절기다. 구름에 덮인 하늘 그 어딘가에서 찬바람을 탄 눈발이 금방이라도 함박눈을 내리게 할 것 같지만, 일기예보엔 계속 건조한 날씨를 유지할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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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크길
 
대설 전후한 이맘때 눈이 많이 내리면 다음해에 풍년이 들고 푸근한 겨울을 난다는 설이 전해진다. 내린 눈이 보리를 덮어 이불처럼 보온 역할을 하니 동해가 적고 월동작물이 잘 자라기 때문이란다. 도시에서야 농산물도 온라인 클릭 한 번으로 배송이 되는 세상이어서 그런지 풍년이나 흉년, 가뭄 등이 실생활에 그리 실감으로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기후변화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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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빠진 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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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고였던 자리
  
계룡의 입암저수지가 있는 곳은 대전에서도 가까워 동네 한 바퀴 돌 듯 휙 다녀오기 좋다. 올해 여름, 이곳을 찾았을 때만 해도 어떻게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세상에 숨겨진 공간 같았다. 나무들과 풍성한 초록잎들, 그 안으로 또 다른 풍경을 품었던 아담한 저수지. 걸을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했던 나는 ‘떡갈나무 숲속에 졸졸졸 흐르는 아무도 모르는 샘물이길래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온다는 가곡의 가사를 나도 몰래 입밖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나 혼자 마시곤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는 이 기쁨’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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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사이에 쓰러진 빈 의자
 
2020년 새해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슬금슬금 코로나19가 생활 속 깊숙하게 자리잡을 줄 몰랐던, 그래서 봄이 지나고 여름일 때, 이제 가을이 되면 다시 예전 생활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기다리는 심정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나 혼자 마셨던 그 달콤한 입암저수지의 ‘샘물’을 다시 찾았을 때 겨울이건만 코로나19는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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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성탄절
 
12월, 겨울의 입암저수지 데크를 천천히 걷는다. 감미로운 캐롤이 들리지 않아도 카페 앞의 모형 눈사람이 곧 성탄절이라고 속삭인다. 저수지 테크길 한 부분은 공사로 인해 야자매트가 깔렸다. 여름엔 키 큰 개망초가 걷는 길을 조붓하게 하더니 지금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가뭄으로 물이 많이 빠졌거나 공사 중으로 물을 뺀 듯한 저수지 풍경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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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비친 입암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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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를 지나 시인은 나타샤와 산속 깊이 들어갔을까 
 
개망초가 있던 이쪽 자리에 서서 저수지 저쪽, 빨간 하트 모양의 포토존이 있는 곳을 바라보니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란 시의 한 구절이 하트 모양 안에 걸린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시인의 사랑이 얼마나 절절하면 눈이 푹푹 나리게 할 수 있는 걸까. 시인이 절절하게 사랑한 나타샤는 또 누구일까. 시인과 시인의 여인으로 짐작하는 나타샤가 어쩜 이곳 저수지를 지나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서 살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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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길 한 부분은 공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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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크길
 
아스라이 곧은 줄기 우뚝한 메타세쿼이아의 단풍빛마저 지금은 흐릿하다. 물이 빠져 뻘처럼 드러난 바닥과 아직 남은 물의 경계에서는 겨울 물오리들이 온몸을 움츠리고 앉아 있다. 공사로 산중턱 위의 돌을 실은 덤프트럭은 저수지 가장자리를 혼자 맴돈다. 푹푹 눈을 나리게 할 수 있을 만큼 지금 우리는 절절히 그 무엇을 사랑하고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과연 올 겨울엔 푹푹 내린 눈을 얼마나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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