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어릴 때 그리던 공주 중동성당

추억을 더듬어본 공주의 근대역사 문화유산

2020.09.22(화) 12:21:49 | 잔잔한 미소 (이메일주소:ih2oo@hanmail.net
               	ih2oo@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공주 중동성당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멋있게 보아왔던 곳이다.

공산성 밑 미나리꽝 옆길 따라 학교 가는 길에 멀리 보이는 뾰족한 지붕이 신기했고, 학교 미술시간에 자주 그리던 곳이다. 중세기의 고딕 건축양식이라는 것과 공주 지역 최초의 천주교 성당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공주 중동성당
▲공주 중동성당
 
1898년 프랑스 사람인 진 베드로 신부가 처음으로 이곳에 교당을 세우고 교리 전파를 시작하면서 공주에 천주교가 자리잡게 되었다는 빛바랜 성당의 안내판과 성당을 오르는 길옆의 ‘공주성당 100년의 역사’는 공주 근대사와 함께 공주성당의 긴 역사를 알려준다.
  
공주성당 백 년의 역사
▲공주성당 백년의 역사
 
내가 다닌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가 중동초등학교인데 거기서 가까운 성당은 뻔히 보였다.
 
학교 지붕 너머로 뾰족한 성당 종각이 솟아 있는 모습을 미술시간에 크레용으로 그리던 어린 시절 운동장, 그때를 생각하면서 일부러 학교에 가 보았더니 지금은 3층 건물이라 운동장에서는 성당이 안 보이고 더 멀리 가야 보였다.
 
중동학교와 중동성당
▲중동학교와 중동성당
 
전에는 공주성당이라 불렀는데 신도가 많아져서 1982년 교동성당이 따로 세워지면서 그때부터 중동성당이라 부른다는데 지금은 신관동성당도 있다. 이만큼 공주성당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면서 공주 시내에 세 곳의 성당으로 발전한 셈이다.
 
성당 하면 어릴 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크리스마스 때면 성당에서 선물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때 받았던 여러 선물 가운데 크레파스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미술 시간에 우리가 쓰던 크레용은 딱딱한 둥근 것이었지만, 그 당시 향기 좋은 연한 18색의 각진 크레파스를 처음 보았으니 신기하고도 좋았다.
 
성당은 높은 곳에 있고 거기다 더 높이 보이는 종각의 십자가가 인상적이었고 어쩐지 성당은 포근하고 정 깊은 곳이란 인상이었다.
 
높은 곳의 중동성당
▲높은 곳의 중동성당
 
오늘은 옛 추억을 더듬어 중동사거리 쪽에서 성당을 가 보았다. 중동성당은 중동사거리에서 옥룡동 쪽으로 난 도로 나지막한 고개를 걸어 올라가 가장 높은 곳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골목길로 접어든다. 골목 입구 도로에 천주교 '중동성당(근화유치원) 가는 길' 표지판이 서 있다. 50m 표시는 여기서 가깝다는 표시로 알아야 한다.
 
중동성당으로 가는 길 표시
▲'중동성당으로 가는 길' 표지판
 
골목길은 어린이 보호구역이다. 이 길은 좁기도 하지만, 유치원이 있기 때문이다.

골목이 끝나는 곳에 성당 입구가 보인다. 왼쪽 가파른 길은 주차장으로 오르는 길이고 오른쪽 완만한 길은 유치원을 지나서 본당으로 가는 길이다.
 
중동성당 입구
▲중동성당 입구
 
오른쪽으로 비탈길을 천천히 오르면 길 아래 근화유치원 건물이 보인다. '근화(槿花)'는 무궁화꽃이다. 유치원 어딘가에 무궁화가 피고 있을 것이다.

길가에 세워진 공주성당의 발자취를 읽어본다. 근화유치원 제1회 졸업식이 1947년에 있었다니 유치원의 역사도 꽤 깊다.
 
공주성당의 역사
▲공주성당의 역사
 
성당 본당으로 오르는 길에서 발 아래 보이는 공주시내 풍경을 본다. 

봉황산 밑의 학교와 그 뒤로 망월산 두리봉이 높아 보인다. 공주 시내 구도심은 아늑하고 언제나 정다워 보인다. 왼쪽의 붉은 색은 영명학당으로 오르는 도로다. 공주 근대역사문화 탐방로이기도 하다.
 
중동성당에서 내려다본 공주 시가지
▲중동성당에서 내려다본 공주시가지
 
본당 건물 모습이다. 언덕 위에 평지가 넓지 않아서 본당 건물을 사진으로 다 넣기가 어려웠다.

사제관 앞에 주차된 차도 함께 나오게 찍을 수밖에 없었다. 남쪽에서 본 성당의 건물인데, 왼쪽으로 4층 종각의 오른쪽 본당 건물에 6개의 창문이 보인다. 문과 창문은 모두 아치형으로 되어 있다.
 
중동성당의 위용
▲중동성당의 위용

성당 외부를 한 바퀴 돌아보면서 북쪽에 우람하게 서 있는 고목 느티나무를 본다. 성당 역사만큼이나 오래됐을 이 나무는 성당에 관한 것이라면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 같다.
   
중동성당의 고목
▲중동성당의 고목
 
성당(聖堂)의 출입문을 본다. 문이 닫힌 안에서 미사가 진행되는지 모르지만, 바깥은 조용하기만 했다. 들어가는 현관의 천장은 아치형으로 된 문양이 특이해 보였다.
 
중동성당 출입문
▲중동성당 출입문

성당 바깥을 둘러보는 동안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코로나19가 얼른 종식되어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갈 때는 충남역사박물관 쪽 국고개 길로 내려갔다.
 
여러 개의 계단을 내려간 곳이 정문 같았다. 이곳 문도 역시 아치형이다. 정문에 천주교회 공주중동성당이란 글씨가 선명하다.
 
중동성당 정문
▲중동성당 정문

어려서 학교 다닐 적 보던 그 성당이 지금도 이렇게 서 있다.

누가 언제 이런 높은 언덕에 이렇게 멋진 교회를 세웠을까? 다시 와 보고 궁금증이 풀렸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란 말처럼 힘들어도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중동 길에서 보이는 중동성당
▲중동길에서 보이는 중동성당
 
공주 중동 성당은 공주에서 높은 언덕에 있고 더구나 뾰족한 종탑은 하늘을 향해 위엄 있게 보인다. 오늘 중동성당을 보고 내려와, 성당 부근에서 다시 성당 쪽을 뒤돌아본다.
 
중동 공영주차장에서 보이는 중동성당
▲중동 공영주차장에서 보이는 중동성당
 
공주 시내에서 오늘 갔던 중동성당 높은 종탑을 보기 위해 산성동에서 쳐다보니 전보다 건물들이 높아져서 눈에 익은 성당 건물이 잘 안 보인다. 그러나 산성동 구터미널 부근에서 간신히 찾아낸 성당 건물이다.
 
오래된 공주의 성당, 중동성당은 전부터 보와 왔지만, 오늘도 평화로워만 보인다.
 
산성동 구터미널에서 보이는 중동성당
▲산성동 구터미널에서 보이는 중동성당
 
역사 깊은 공주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

웅진백제 시대의 문화와 근현대사가 남긴 모든 것은 소중한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품은 우리 공주시의 위상을 높이면서 현재 공주시가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 협심해야 한다.

신바람 공주, 활기찬 미래!
흥미진진 공주 시민은 행복하다.
 

잔잔한 미소님의 다른 기사 보기

[잔잔한 미소님의 SNS]
  • 트위터 : https://twitter.com/#!/ih2oo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