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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서산시 운산면에서 숨은 보물 찾기

역사와 문화가 함께 숨 쉬는 그곳

2020.07.07(화) 23:34:47 | 연필 (이메일주소:ins503@hanmail.net
               	ins503@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역사와 문화가 함께 숨쉬는 그곳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에 있는 조선 13대 왕인 명종의 태실을 찾아 올라가는 길은 주차장이 공사 중이어서 마을에서부터 걸어서 경사가 심한 산길은 등산하듯이 올라갔다.
 
우거진 풀과 야생화 사이를 헤치고 올라가는 것이 힘들어서 조선시대에는 태실과 비를 만들기 위하여 무거운 돌을 어떻게 운반하였는지 수고로움이 먼저 생각났다. 그리고 한양에서 머나먼 이곳이 명당자리인 것을 알고 태를 모시게 되었는지 그곳에 올라가 보니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1538년(명종이 태어난 4년 후, 중종 33년)에 세워진 후 500여 년의 세월 동안 그 자리에 잘 보존되고 조선시대 태실의 기본으로 유형문화재 제121호였다가 2018년에 보물 제1976호로 승격된 명종태실은 시간의 흐름이 멎은 듯이 조선 왕실의 위용을 빛내고 있었다.

태실은 32기의 부채꼴 판석을 깔고 8각 돌난간 안에 석종형 모양으로 되어 있고 태실 위에는 8각 옥개석이 놓여 있다. 8은 완성의 수를 의미한다. 태실을 세울 때 즉 왕자 때 세운 비석과 왕의 즉위 후에 만든 비석, 왕자 때 세운 비석이 손상되어 다시 세운 비석 3개가 나란히 서 있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농협 한우개량사업소의 넓은 초지가 펼쳐져 있고 멀리까지 펼쳐져 있는 풍경은 천상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태봉리에는 고려 때 창건된 충남 유형문화재 제13호인 문수사가 있다. 봄에 일주문을 들어서서 절에 올라가는 길에는 겹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지만, 지금은 잎이 무성하여 꽃길과 다른 시원함을 선물해 주었다. 금동여래좌상의 복장에서 발원문이 발견되었는데 발원문에 의하여 세워진 시대가 충목왕 2년(1346년)으로 밝혀졌다.
 
문수사는 고려 때 지어지고 조선시대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때 함께 발견된 것으로는 모시로 된 단수의와 그 시대의 쌀, 보리 등이 나왔다. 극락전 안의 불상 앞에는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오리솟대가 달려 있는데, 오리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전령의 의미로 달아 놓았다고 한다.
 
여미리는 '4월의 달처럼 아름답다'는 뜻에서 나온 이름이라고 하는데 백제시대부터 현재까지 사용되는 지명으로 지명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여미리에 들어서면 아담한 카페와 갤러리가 있고 수선화축제로 널리 알려진 유기방가옥이 있다. 또한 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을 본따서 지었다는 유상묵 가옥에서 양반 가옥의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있다. 충남 유형문화재 제132호인 고려시대 석불입상과 석불 뒤에 서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서로 어울려서 눈길을 멈추게 하였다. 1928년에 건립된 선정묘는 조선 2대 정종의 4남인 선성군을 봉안한 사당이다. 여미리는 전주이씨의 동족마을로 후손이 끊기면서 서산의 후손들이 제향을 대신 맡게 된 것이다.

역사의 발자취를 밟다 보니 출출하여 농가레스토랑과 로컬푸드센터'에 들러서 소고기백반을 맛있게 먹었다. 이곳은 2014년 지역주민 200여 명과 함께 창업한 민간주도의 로컬푸드 협동조합이다. 내포권인 서산, 태안, 당진, 예산의 농축어민들이 건강한 먹거리의 생산과 가공상품의 다양화를 통하여 융복합 6차산업을 실천하고 있다. 생산과 가공한 상품을 로컬푸드 센터에서 판매하고, 또한 이곳에서 재배되고 생산된 것으로 음식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다.  
 
유상묵이 잠들어 있는 전라산은 소라 모양에서 나온 이름으로 소라처럼 들어가는 곳과 나오는 곳이 한 곳이란 뜻으로 뒤쪽 산은 가파른 낭떠러지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적으로부터 방어가 용이하여 마한시대 염로국의 치소였다고 한다. 내려와서 산 뒤쪽으로 가보았더니 밧줄이 있어야만 올라갈 수 있는 깎아지른 절벽이었다. 
 
운산면은 유적과 자연과 주민들의 문화와 생활이 함께 잘 어우러진 농촌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서산시운산면에서숨은보물찾기 1
 
32개의 부채꼴 판석을 깔고 완성의 수인 8각 지대를 만들어 8각의 돌난간을 세우고 그 안에 석종형의 태실을 모시고 8각 옥개석이 그 위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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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이 태어난 4년 후인 1538년에 태실을 만들면서 함께 세워진 비로 '왕자전하태실(王子殿下胎室)'이라고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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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이 즉위하면서 국왕의 태실을 봉심해야 하기 때문에 명종 1년(1546년)에 세운 비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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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37년(1711년)에 왕자 때 세운 비석이 손상되어 다시 세운 비로 '주상전하태실(主上殿下胎室)'이라고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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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왕산에 있는 문수사 일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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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 극락보전은 충남 유형문화재 제13호이며 배흘림기둥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다.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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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안의 불상 앞에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전령인 오리솟대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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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에서 나온 유물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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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 지정 민속자료 22호인 유상묵 가옥은 '一'자형의 사랑채와 'ㄱ'자형의 안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행랑채와 담장으로 두 공간을 명확히 구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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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을 본따 지은 유상묵 가옥의 안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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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묵 가옥 안에 있는 장작누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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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묵 가옥 안의 흙으로 구워서 만든 굴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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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전체가 담장으로 되어 있는데, 후면은 급한 경사이고 담장은 토담 위에 서까래를 걸고 한식 토기와를 얹었다. 활짝 펼친 치맛자락처럼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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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 명의 내포권 농축어민들의 주도로 만들어진 로컬푸드센터로, 이곳에서는 농산물 가공상품과 농산물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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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방치돼 있던 마을 정미소를 리모델링하여 갤러리와 카페로 만들었다. 갤러리에서는 작가들의 작품 전시준비가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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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카페 내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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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모양이 들어간 곳과 나오는 곳이 소라 모양 같다고 해서 붙여진 전라산은 앞쪽은 경사가 심하지 않았지만 뒤쪽은 급경사로 되어 있어서 올라간 쪽으로 다시 내려오는 것만이 가능했다. 산 위에는 성곽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마한 염로국의 치소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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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유형문화재 제132호인 여미리석불은 1970년대 지금의 위치에서 1Km 떨어진 용장천 정비사업 때 발견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전체적인 조각 수법이 입체감이 없어서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석불과 소나무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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