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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말바위의 추억

스승의 날을 앞두고 생각나는 선생님

2020.05.06(수) 09:43:09 | 잔잔한 미소 (이메일주소:ih2oo@hanmail.net
               	ih2oo@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말바위의 추억
/스승의 날을 앞두고 생각나는 선생님

 
공주에 왕촌이 있다.
 
지금 공주시 상왕동의 한 마을, 왕촌마을 냇가는 경치 좋고 시원하여 옛날 국민학교 때 소풍 장소로 유명했다. 왕촌 냇물 가운데 매우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말바위였다. 얼마나 컸던지 5학년 때 우리 반 55명이 모두 올라갈 수 있었으니 옛 사진에서 보듯이 저렇게 큰 바위였다.

65년 전 소풍 기념으로 찍은 사진을 보면서 추억을 더듬어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 전에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저런 큰 바위가 물 가운데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고 거기에서 그 옛날 소풍 기념사진을 찍었다는 것과, 그 사진을 지금까지 보관하면서 그 당시 선생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보면 위험한 저곳에 애들을 올라가게 하고 자신도 뒷줄에 서서 같이 촬영한 선생님을 생각한다. 모험심 많은 5학년 아이들의 용기를 이해하신 선생님, 그분의 결단을 이해하고 싶다. 맨 뒷줄에 아이들과 함께 선 신현택 담임 선생님이 자랑스러워 보인다.
 
냇물 가운데 바위, 말 바위 위에 올라가 함께 찍은 사진
▲냇물 가운데 말바위 위에 올라가 함께 찍은 사진
 
선생님, 고마우신 선생님!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나니 지난날들을 뒤돌아보기도 한다. 이 나이 먹도록 여러분의 도움을 받고 살았는데 그중 나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를 담임하셨던 초중고교의 선생님들, 그리고 가르쳐 주신 모든 분, 지금 생각하면 모두 못 잊을 분들이시다. 그중에 국민학교 5학년과 6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5학년 때 신현택(申鉉澤) 선생님. 6학년 때 이달하(李達夏) 선생님!!

먼저, 한문과 붓글씨 공부를 남달리 철저히 시키신 신현택 선생님 이야기다.

선생님 덕분에 한문을 이만큼이나마 알게 되었다고 장담한다. 우리가 다닐 때 국어 교과서는 한글을 한자와 같이 표기하였는데, 국어 교과서 한 단원에서 한글과 한자가 병기(倂記)된 단어에서 한글을 모두 지우게 하시고 한문만을 읽게 하셨던 분이시다. 예를 들면 '학교(學校)'에서 앞의 한글 부분 '학교'를 먹물로 지우게 하여 한문만 남게 되어 한자를 모르면 읽을 수 없으니까 한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당을 안 다녔어도 그때 국어 시간에 배운 것만으로도 상용한자는 거뜬히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붓글씨 쓰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쳐 주신 분이시다. 붓글씨 연습 시간에는 그 준비물인 벼루와 먹, 붓, 연습 종이를 준비하도록 하셨는데, 그때마다 준비물을 반드시 검사하셨고, 준비물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은 영락없이 집에 가서 가져오도록 철저하게 지도하셨다.
 
나는 공주 시내에서 4km 떨어진 곳에서 학교에 다녔는데, 우리 집 벼루는 매우 커서 무명천으로 된 책보에 싸면 축 늘어지고, 무겁고 하여 가져오기가 싫었다. 그때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금강 나룻배를 타고 집에 가서 가져와야 했다. 그때 선생님 같은 분의 철저한 가르침으로 붓글씨를 배웠고 그 배운 것을 나중에 써먹었다.

교직에 있으면서 가는 곳마다 그 학교 학생들의 졸업장, 표창장, 상장 등은 주로 내가 맡아서 썼다. 무거운 벼루 때문에 그때는 귀찮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 필적이 여기저기 많이 퍼져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 뿌듯하다. 신현택 선생님 고맙습니다.

다음은 이달하 선생님이신데, 국민학교 4학년 때와 6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이셨다. 책 읽어주시던 선생님, 그리고 표준말 사용에 자극을 주신 선생님으로 기억되는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책을 읽어 주시던 선생님이시다. 책이 귀한 시절 그때 책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선생님께서 읽어주신 책, 그중에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이야기가 생각난다. 매일 종례 시간에 읽어주시는 이야기 내용을 상상하면서 들으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다음 날 그 시간이 기다려지기까지 했었다.
 
직접 책을 읽게 하는 것, 독서 교육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언제나 중요하다. 또한, 책을 읽어주는 것도 독서 교육 차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이달하 선생님의 정성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선생님의 지명을 받고 일어나서 발표할 때에 '조금'을 '쬐끔'이라고 말했다고 6학년이나 되는 놈이 '쬐끔'이 뭐냐며 표준말을 써야 한다면서 애들 앞에서 창피를 주신 그때 그 선생님이 얼마나 미웠는지. 내성적인 나는 다시는 발표를 안 한다고 마음먹었지만, 그러나 내 잘못을 인정하고 선생님의 가르치심을 받들어서 좋은 말 표준말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늘은 살아온 게 아닌가.
 
선생님은 학생들을 가르치되, 마음에 상처를 줘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내성적인 학생에게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더구나 창피를 주면은 그 학생은 자신을 잃을 수 있다. 노래를 못 한다고 창피를 줘서도 안 되고, 뭐든 못하는 것을 나무랄 게 아니라 잘못 하는 그 원인을 알아서 고쳐줘야 한다는 신념과 자극을 주신 분이다. 이달하 선생님 고맙습니다.

세 번째, 손재수 선생님으로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시다. 현장학습을 해 주셨고 학습효과에 대한 자극을 주신 선생님, 그 당시 우리 학급에 닭 사육장을 만들고 당번을 정하여 돌려가면서 사료를 주고 커 가는 모습을 관찰하도록 하신 분이다.
 
닭을 기르면서 그의 먹이는 무엇이며, 습성은 어떻고, 번식은 어떻게 하나를 알도록 하신 것 같다. 우리 반 친구들은 대부분 충남 전역에서 모여든 친구들이었고, 나와 몇 안 되는 친구가 공주에 거주하는 관계로 방학 때는 거의 날마다 내가 닭장 관리를 도맡다시피 했었다. 당시는 고역이었지만, 돌이켜 보니 많은 것을 배울 기회였다.

그런 연유로 어떤 학교 재직 시에 '사랑의 동산'이라는 닭이 아닌 토끼 사육장을 만들어서 우리 반 애들에게 관리하도록 한 적도 있다. '짐승을 사육하거나 화초를 재배하는 사람은 모든 생명을 귀히 여긴다'라는 교훈을 가르쳐 주신 분이다.
 
우리가 기르던 닭 사육장 앞에서(1963년 공주사범학교 졸업앨범)
▲우리가 기르던 닭 사육장 앞에서(1963년 공주사범학교 졸업앨범)

다음은 현장학습 이야기다. 교육에서 실습이나 현장 학습의 중요성을 직접 체험한 사례다. 지금부터 60년 전 그 당시 과학책에 나오는 단원의 특성을 살려서 실물 또는 현장에 직접 찾아가는 수업을 하신 분이다. '자전거'를 배울 때 힘의 전달 내용을 실제로 당시 드물었던 자전거 실물을 보여주면서 그 원리를 가르쳐 주시고, 산성동에 위치한 철공소에 직접 모이게 하여 밀링머신이며 쇠를 깎고 다듬는 과정을 현장 실습을 통하여 가르친 분이시다. 또, 외국어에 관심 두시어 방송 테이프를 매일 조금씩 듣게 해서 영어 회화 공부를 강조하신 선생님이시다.

1960년도에 '거침이 없이 뛰어나가자. 삼차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학급 노래를 만들어 부르게 하셨던 손재수 선생님, 존경합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우리나라 모든 선생님이 존경받는 사회 환경 가운데 불타는 의욕으로 교단에 설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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