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여행

희망이 자라는 마을 동리 이동녕선생생가지

2020.03.30(월) 09:43:12 | 짱구아빠 (이메일주소:kug888@naver.com
               	kug888@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희망이 자라는 마을동리 이동녕선생생가지
 
희망이자라는마을동리이동녕선생생가지 1
 
꽃피는 봄이 오면 가장 생각나는곳 가고 싶은곳이 있나요? 저는 항상 봄이오면 천안독립운동이 생각이 납니다. 기나긴 겨울처럼 느껴지는 추웠던 기온을 녹히며 신기하게 따뜻한 빛과 함께 꽃이 하나둘 피어나는 봄, 매년 봄이 오지만 올해처럼 봄의 꽃과 따뜻함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해가 된 것 같습니다. 이동녕 선생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입니다. 선생은 독립협회 가입을 시작으로 언론·교육활동, 청년회 조직 등을 개화민권 항일구국운동을 전개하면서 조국 독립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희망이자라는마을동리이동녕선생생가지 2

이동녕선생생가지
-주소: 목천읍 동리 79-2번지
 
1989년 4월 20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7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동녕은 1869년 천안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석오(石吾), 자는 봉소(鳳所)입니다. 1904년(광무 8) 상동청년회에서 활동하였으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상설 등과 만주에 있는 용정촌으로 망명하여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설립하였습니다. 1907년 귀국하여 안창호, 김구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하고, 1910년에 만주로 건너가 이시영, 이강영 등과 함께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희망이자라는마을동리이동녕선생생가지 3
 
1913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권업회(勸業會)를 조직하였고, 1919년에는 상해임시정부의 의정원 원장과 외무총장을 지냈습니다. 그 뒤 국무총리, 국무위원 주석을 겸무하다가 1928년 한국독립당을 결성하여 이사장이 되었으며, 1935년 한국국민당 간부로 활약하였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난 뒤 1939년 김구 선생과 함께 전시 내각을 구성하고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싸우다가 중국 쓰촨성[四川城]에서 병사하였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습니다.
 
희망이자라는마을동리이동녕선생생가지 4
 
이동녕선생생가지에도 따뜻한 봄이 느껴지는 산수화 목련 매화꽃이 피기 시작했답니다.
 
희망이자라는마을동리이동녕선생생가지 5
 
생가터 옆에 있는 수령 500년 넘은 은행나무가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데요, 가까이 가 보니 가운데 있는 나무는 고목이 되었고 옆으로 벗은 은행나무가 기둥이 되어 버텨주고 있는 것 같았답니다.
 
희망이자라는마을동리이동녕선생생가지 6

하나둘 목련 꽃들이 아름다운 생명을 만들어 주고 있는 모습이 참 신비롭기만 합니다.
 
희망이자라는마을동리이동녕선생생가지 7
  
죽어 있는 고목을 감싸는 모습이 얼마나 애절하게 느껴지는지 이 마을은 전설에 배의 형국이라서 이곳에 이사를 와 부자가 되면 떠나야 한다는 전설과, 배에 돛대가 필요해서 동네 가운데에 돛에 해당하는 은행나무를 심었다는 전설이 있답니다.
 
희망이자라는마을동리이동녕선생생가지 8
 
은행나무 아래에는 작은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작년에 떨어진 마른 은행 열매들이 인상적이네요. 계절이 변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풍경입니다.
 
희망이자라는마을동리이동녕선생생가지 9
 
이동녕선생생가 전경입니다.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느낌이고, 봄의 햇살과 함께 따뜻함이 느껴지는 생가지입니다.
 
희망이자라는마을동리이동녕선생생가지 10
 
생가지 뒤편으로는 항상 왜가리들이 자리잡고 있는데요 봄이면 이곳에 찾아오지만 신기하게 그대로 남아 있네요.
 
희망이자라는마을동리이동녕선생생가지 11
 
생가 앞쪽에는 생가 뒷산에 서식하는 왜가리를 관찰할 수 있는 망원경이 있고 '산류천석(山溜穿石)'이라 새긴 휘호석이 있습니다. '산류천석'은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라는 뜻으로 가느다란 물방울이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종내엔 돌에 구멍을 뚫듯이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뜻입니다.
 
희망이자라는마을동리이동녕선생생가지 12
 
박물관도 함께 있지만 코로나로 인해 임시 휴관 중입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동리 마을 벽화에서 보았던 그림과 글이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는 것 같네요. 희망이 자라는 마을 동리, 지금 우리나라도 코로나로 참 힘들지만 우리의 작은 힘 하나하나가 모여 이 상황을 극복하고 그리웠던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은 힘들지만 언제나 내일의 희망을 꿈꿔봅니다.
 

짱구아빠님의 다른 기사 보기

[짱구아빠님의 SNS]
  •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kug888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