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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핑크빛 공주랍니다-김정자 할머니

세대공감 자서전 내 인생의 봄날

2020.02.18(화) 21:20:17 | 홍주신문 (이메일주소:rlarudal4767@daum.net
               	rlarudal4767@daum.net)

 

내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주셨는데 경주 김(金)씨에 바를 정(正), 바른 자 김정자이다. 나는 내 이름이 싫었다. ‘정자’라는 이름이 너무 많아서 싫었다. 그런데 한글을 가르쳐 주시는 문해 선생님은 내 이름이 예쁘고 옷도 예쁘게 입는다며 나를 공주라고 불러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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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친구 집에 가면 이불 속에다 발을 넣어 뻗고 오재미를 가지고 노래를 부르며 재밌게 놀았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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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동 호박골에서 위로 오빠 둘에 외딸로 태어났다. 울 아버지는 시조를 잘하시고 낙천적이셨다. 늘 동네정자에서 시조를 부르면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멋쟁이셨고 손재주가 있으셔서 동네아이들 팽이, 썰매를 만들어 주시면 내 어깨가 으쓱거리고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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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아파서 고생을 많이 하시다가 60살도 못살고 돌아가셨다. 순하시고 아버지 하시는 데로 늘 따르고 살았다. 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시고 술주정도 많았는데 잘 참고 사셨다. 간호도 못해드리고 제대로 살펴드리지도 못해서 죄지은 마음이 늘 남아 엄마를 생각하면 항상 미안해서 걸린다. 엄마가 살아 돌아오시면 맛있는 것 다 먹여드리고 좋다는데 다 데리고 다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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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큰 오빠는 학교도 못 다니고 집에서 아버지하고 들판으로 산으로 나무만 하러 다녔다. 아버지한테 잘못한다고 꾸중만 듣고 나한테 화를 풀면 나는 작은 아버지 댁에 가서 쌀밥 먹고 하루 이틀 있다가 집에 오곤 했다. 그러면 엄마는 야단을 치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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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모이면 고무줄놀이를 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노래에 맞춰 줄 밟기 놀이도 많이 했다. 길자, 금자, 정열이, 사촌들이랑 다정하게 잘 놀았다. 천막치고 활동사진(영화)한다고 하면 어른들 모르게 숨어들어가 구경도 했다. 지키는 사람이 많으면 영화도 못보고 돌아오고 잘하면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어가 구경했다. 결혼 후 지금까지 친구들을 한번도 못봐서 어떻게 사는지, 혹 죽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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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 24살 때가 제일 이뻤던 거 같다. 거기다 날씬하고 아담해서 인기가 좋았다. 그때는 출가하면 키 크고 나보다 많이 배우고 술도 조금 먹는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전혀 반대인 남편을 만나 27살에 결혼했다. 결혼 전까지는 외가댁에 자주 오가며 지냈다. 딸이 하나라 농사일도 안 시키고 아무 일도 안했다. 쌀밥이 먹고 싶어 천안 입장에 있는 외가댁에 자주 가 있었다. 그렇게 살다가 오히려 결혼해서 큰집서 3년 살이 하면서 조카 여섯, 큰집 어르신들까지 밥하느라 고생했다. 그 많은 식구들 빨래를 냇가 가서 할 때면 친정생각이 많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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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27, 동갑남편과 어른들끼리 소개로 결혼했다. 처음에 봤을 때 눈이 부리부리해서 무서웠다. 키가 작아서 마음에 안들었는데 어른들이 하라고해서 결혼했다. 성격이 급하고 불같아서 어려움이 있었다. 나이 먹어서 지금도 그러는데 내가 아프니까 많이 참는 게 보인다. 지금은 잘해줘서 고맙다. 지금은 오래 사는 것도 안 바라고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가 편안하게 가는 게 바램이다.
고마운 남편, 나에게 잘해줘서 고마워요. 회관에 간다하면 차에 먼저 올라가 키를 꽂고 기다리고 있어주고 정말 고마워요. 우리 언제 죽을지는 몰라도 가는 날까지 이렇게 함께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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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남매를 두었는데 첫째 아들이 일찍 죽게 되었다. 지금은 아들 하나, 딸 둘이 있는데 누나들이 막내 어렸을 때 많이 돌봐줬다. 키우면서 속 썩인 적도 없고 수월하게 키웠다. 딸 하나는 홍성, 하나는 수원에 산다. 같이 사는 막내아들은 착하고 부모한테도 잘하는데 여태 장가를 못가고 있다. 아들 장가가는 게 마지막 남은 소원이다. 착하고 성실하고 이쁘고 교양있는 며느리를 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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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고생 안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나도 많이 고생했지만 그때보다 지금 나이 먹어서 건강이 안 좋은 게 제일 맘이 아프다. 허리가 아파서 걸음걷기도, 앉아서 오래 있기도 힘들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고생하고 어려웠던 시절보다 몸이 아픈 게 제일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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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위로 오빠 둘에 외동딸이라 학교가라고 했는데도 가기 싫어서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다니다가 안갔다. 학교 안가고 작은 어머니네 가고 올케네도 가서 애기도 봐주고 보리밥만 먹는 친정집이 싫어서 쌀밥 먹는 외가댁에 기차타고 가서 자주 있었다. 나중에 교복입고 학교 가는 여학생들이 부러웠다. 절에 가서 천수경을 따라 읽는 글공부를 다녔다. 2018년도부터는 마을회관서 하는 한글학교를 다니며 정식으로 생전처음 한글공부를 하게 되었다. 또 도서관에 와서 그림책자서전을 하고 가면 마음이 시원하고 좋고 생각하면 재미있어서 웃음이 난다. 다시 어렸을 때로 돌아가면 부모님이 학교 안보낸다고 해도 어거지 써서 갈 거 같다. 자식들이 나처럼 안되게 하려고 열심히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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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머니와 아버지 또 큰 오빠하고 큰 올케, 작은 오빠랑 살았다. 얼마 후 작은 오빠는 직장을 잡아 나가고 나는 큰 올케하고 날마다 보리방아를 찧어서 식구들 먹을 보리밥을 했다. 매일 삼시 세끼 먹는 보리밥이 먹기 싫어서 큰 집으로 가올케 언니보고 밥 좀 달라고 하면 웃으면서 하얀 쌀밥을 줬다.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 그때부터 보리밥이 싫어 날마다 외갓집에 가겠다고 엄마한테 조르기 시작했다. 그때 명절이 한 달 정도 남았을 것 같다. 아버지께서 명절이나 지나거든 가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인제 보리밥은 안 먹게 되어서 좋아했다.

출처 : 홍주일보(http://www.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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