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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보물 지정된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태실비

2018.06.18(월) 09:11:24 | 계룡산 (이메일주소:ccy6645@hanmail.net
               	ccy6645@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에는 태봉산이라는 작은 봉우리의 산이 있는데 정상에는 명종대왕 태실 및 태실비가 조각공원처럼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다.

서산시는 그동안 도지정 유형문화재였던 명종대왕태실 및 비를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시키기 위해 2015년부터 정밀실측과 심화연구를 거쳐 문화재청에 신청한 결과 지난 3월 26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976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그 태(胎)를 태항아리에 봉안하고 태실을 조성했다.
명종대왕 태실은 조선 제13대 임금인 명종(1534∼1567)의 태를 보관하기 위한 태실과 기념비 3기가 세워져 있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태실유적이다.

명종대왕 태실
▲ 명종대왕 태실

문수사 입구 이정표를 따라 300m쯤 마을길을 가다보면 ‘명종대왕 태실’ 이란 안내표지가 나온다.
태봉산 아래 작은 주차장에 주차하고 노오란 금계국 사이 오솔길을 따라 가파른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면 산 중턱에 잘 다듬어진 넓은 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가면 태실로 오르는 돌계단을 만나게 된다.

태봉산 전경
▲ 태봉산 전경

명종대왕 태실
▲ 명종대왕 태실

태실비
▲ 태를 봉안한 태실과 ‘대군춘령아기씨태실비’ 1기가 먼저 건립되고, 명종이 즉위한 후 1546년 ‘주상전하태실비’ 1기를, 1711년 ‘주상전하         태실비’를 재건하면서 비석 1기를 추가로 건립해 현재 총 태실과 비 3기가 전한다.

태실은 20개의 부채형 판석을 깔고 중앙에 항아리형 비가 세워지고 팔각 난간석을 세웠다 ▲ 태실은 20개의 부채형 판석을 깔고 중앙에 항아리형 비가 세워지고 팔각 난간석을 세웠다

태실 중앙의 항아리형 비
▲ 태실 중앙의 항아리형 비

태실과 비
▲ 태실과 비

보물지정된서산명종대왕태실및태실비 1

보물지정된서산명종대왕태실및태실비 2 
정상에 오르는 순간 웅장하고 조화로운 태실의 규모와 섬세한 석공의 솜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방이 탁 트인 시야!
뒤로는 가야산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앞으로는 전형적인 농촌마을 너머로 서산시내, 멀리 서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고, 양 옆에는 평화롭고 푸른 한우목장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이런 아름다운 곳에 태실이 지어 짐은 조선왕실의 태의 처리가 얼마나 중요시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인 것 같다.
가까이에 석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어마어마한 돌들을 어디서 어떻게 산꼭대기까지 운반했는지도, 석공들은 정과 망치만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과 피땀을 흘렸을지 마음이 찡해 온다.
 
오랜 세월동안 태봉산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1968년 11월3일 서산에 침투하여 태봉산으로 숨어 든 북한무장간첩 소탕작전 중 현장을 지휘하던 소병민 소령이 38세의 일기로 애석하게도 전사한 슬픈 장소이기도 하다.
 
그 후 1976년 7월 김종필 국무총리께서 땅에 묻히고 훼손된 석물들을 모아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다는 글귀가 안내문에 적혀 있다.

화창한 날씨와 푸른하늘, 아름다운 구름, 시원하게 펼쳐진 주변풍경에 취해 한참을 그 곳에 있었다.
 
위치 : 충남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태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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