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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밥 한공기, 청소년과 기성세대 벽 허물다

당진YMCA 청소년 사랑의 밥차… 아이들의 마음 여는 '소통의 밥차'

2018.01.19(금) 12:49:23 | 솔이네 (이메일주소:siseng@hanmail.net
               	siseng@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공깃밥처럼 따뜻한 사람이었다. 냉기가 가시지 않는 작은 사무실은 전열기구를 켜면 전기가 떨어진다고 했다. 빠른 말투를 노트북에 받아치는 손가락도 둔해졌다. 당진 YMCA 권중원 사무총장은 2015년 겨울 추운 사무실에서 지역 청소년들에게 먹일 밥 한 공기를 생각했다. 인터뷰를 시작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의 말이 뚝 끊겼다. 저녁 밥차를 열면 찾아오는 폐지 줍는 형제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다. 뜬금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30년 가까이 시민사회단체에 몸담은 활동가의 가슴은 냉철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말랑말랑했다. 
 
 “요즘 나이가 들어서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폐지 줍는 형제 이야기는 뒤로 미뤘다. 당진 지역에서 ‘청소년 사랑의 밥차’를 시작한 이유를 물었다. 밥을 챙겨 먹지 못하는 불우한 청소년을 돕자는 그런 이야기가 이어질 줄 알았다. 

“밥으로 소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청소년들 어른들만 보면 피하잖아요. 소박하지만 정성을 담은 손길로 밥 한 끼 챙겨주면서 소통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어요. 밥상 공동체라는 말도 있잖아요. 밥을 챙겨주면 가까워질 수밖에 없죠.”  

밥한공기청소년과기성세대벽허물다 1

여러 단체, 시민들과 함께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밥을 챙겨준 지 1년이 지났다. 이제는 시내 한복판에 밥차가 열리면 “밥 주세요.” 라고 외치며 찾아오는 단골 학생들도 생겼다. 밥을 차리고 먹으면서 말을 섞는다. 학교생활, 친구 이야기가 반찬처럼 밥상 위에 깔린다. 원래 밥상은 대화의 공간이다. 어른들의 잔소리만 없으면 아이들은 스스로 입을 연다. 길거리에서 마주쳤으면 요즘 아이들 말로 ‘쌩까고’ 지나쳤을 인연들이다. 같은 지역에 사는 청소년과 기성세대 사이에 작은 접점이 생겼다.

“사실 세월호가 계기가 됐어요. 아이들에 대한 무관심.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 소통을 끊은 것은 어른이라 생각해요. 어른들이 먼저 다가서고 벽을 허무는 것이 사랑의 밥차를 하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따뜻한 밥 한 끼가 주는 감동을 믿는다. 정성이 담겨야 아이들의 마음이 열린다. 청소년들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라면과 같은 인스턴트는 절대 먹이지 않는다. 그런 끼니라면 편의점에서 때울 수도 있다. 미리 준비한 음식을 현장에서 데워주는 게 더 편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음식을 조리하는 방식을 택했다. 주방 시설을 갖추기 위해 트럭을 개조했다. 요즘 유행하는 푸드트럭이다. 
 
학교 앞에서 방금 만든 따뜻한 ‘주먹밥’ 
 
저녁 밥차는 매주 금요일 오후 5시 당진 KT 지사 광장에서 열린다. 학생들이 학교를 마치고 몰려나오는 길목이다. 푸드트럭 뚜껑이 열리고 천막을 치면 학생들이 모여든다. 학원 가기 전에 딱 배고플 시간이다. 카레라이스, 자장밥, 볶음밥에 김치와 단무지, 계란 프라이와 따뜻한 국 한 그릇. 학생들이 좋아하는 컵밥 형식이다. 권 사무총장은 컵밥을 메뉴 정하기 위해 서울 노량진까지 답사하고 왔다.  
 
밥을 차리는 자원봉사자들은 여성단체, 외식업지부, 음식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시민들이다. 호서고등학교 YMCA 동아리 학생들도 일손을 돕고 저녁을 함께 해결한다. 지역단체와 학생들이 함께 만드는 길거리 식당이다. 50~60인분의 음식이 떨어지면 저녁 밥차는 문을 닫는다.  

밥한공기청소년과기성세대벽허물다 2

첫째, 셋째 월요일에는 아침 밥차도 열린다. 아침 밥차 메뉴는 주먹밥이다. 삼각김밥 두 개를 합친 만큼 든든한 아침 식사다. 학생들 등굣길에 주먹밥을 나눠준다. 당진 지역 중고등학교 10여 곳을 돈다. 첫째 주는 시내, 셋째 주는 외곽지역 이런 방식이다. 전날 만든 주먹밥을 학교를 돌며 배달하는 방식이 아니다. 주먹밥도 학교 교문 앞에서 바로 만든 주먹밥을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하루에 300개 정도의 주먹밥을 나눠줍니다. 밥솥 한 개 당 50인분 밖에 안 나와요. 그러면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이 집에서 밥만 70-80인분씩 해옵니다. 밥차에서 가스불로 밥도 하고. 현장에서 소고기나 참치, 멸치로 주먹밥을 만들고 김 가루도 굴리고 해서 만들죠. 아침 6시 반부터 아이들에게 나눠줘요. 일찍 등교하는 애들 밥 챙겨 먹고 오기 힘들잖아요.” 
 
교통비 보조 한 푼 받지 않는 순수한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른 새벽부터 고생해야 하지만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등굣길 학생들을 만난다.   
 
“봉사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음식을 나누는 봉사에 사람들이 더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새벽에 나와 두 시간 고생하고 그러는데 다들 즐거워하세요. 처음부터 정부 보조금을 받아서 진행하는 것은 시민운동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시민들이 참여하는 과정 자체가 큰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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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인 참여와 후원이 만든 감동 
 

사랑의 밥차는 정부의 지원 한 푼 없이 YMCA 회원들과 시민들의 후원으로 운영된다. 차량을 개조해서 만든 밥차 비용 5,200만 원도 130여 명의 모금으로 마련했다. 차량유지비, 부식비 등 연간 1,000만 원 정도의 운영비도 시민, 단체, 기업 후원으로 충당한다. 운영비가 부족해 힘들어질 때마다 후원금이 들어온다고 권 사무총장은 말했다.  
 
“부식비는 처음부터 외상으로 시작했어요. 일단 외상으로 산 다음 모금해서 갚고 그런 방식이죠. 지금도 150만 원 정도 외상값이 있습니다. 걱정 안 합니다. YMCA 활동 30년 가까이하다 보니 그런 믿음이 있어요. 일단 일을 벌여라. 금전적인 부분은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실 거다.(웃음) 쌀은 사 본 적도 없어요. 후원으로 들어오니까. 계란도 들어오고, 소고기도 2주에 한 번씩 후원해주시는 분이 계세요.” 
 
당진 청소년 사랑의 밥차는 2015년 연말부터 기획했다. 2016년 2월 당진 YMCA 총회를 통해 공식 추진했다. 5월 지역의 기관단체, 기업 등 135명의 운영위원을 위촉하고 발대식을 가졌다. 차량을 구입해 70여 일간 개조 과정을 거쳐 밥차를 제작했다. 권 사무총장은 “디자인, 기획을 추진해나가면서 모금도 같이 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마련된 ‘사랑의 밥차’는 2016년 10월 처음으로 문을 열고 청소년들에게 밥을 나눠주었다. 1년간 지원 없이 시민의 힘으로 운영해왔다. 그는 전국 곳곳에 이런 청소년을 위한 사랑의 밥차가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인이나 노숙자만 밥을 주라는 법은 없어요. 청소년은 미래의 주인공이라는데 밥 한 끼 따뜻하게 대접한 적 없어요. 청소년들과 소통기구로서 ‘사랑의 밥차’가 널리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복지뿐만 아니라, 지역운동, 청소년 운동이 종합될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그 실험을 당진에서 하고 있는 겁니다.”
 
사랑의 밥차 사업 외에도 권 사무총장이 챙겨야 할 지역의 YMCA 사업은 여러 가지다. 수십 가지 사업 서류들이 파일함에 정리돼 좁은 사무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대부분 시민단체의 형편이 그렇듯이 반상근하는 활동가 한 명과 권 사무총장이 모두 챙겨야 한다. 그는 “밥차에만 집중할 수 있는 한 명의 활동가를 둘 수 있는 인건비만이라도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활동가들을 모아서 전국의 청소년 밥차 운동체를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사랑의 밥차로 개조된 푸드트럭을 활용한 청년 창업과 연결하는 상상도 한다. 밥차는 한 달에 6번 정도 운영되기 때문에 평상시에 푸드트럭 가게로 활용할 수 있다. 푸드트럭을 하는 청년창업가가 ‘사랑의 밥차’ 운영을 맡는다면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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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가 챙겨준 밥 한 끼의 기억 
 
중년 활동가의 눈시울을 적시는 폐지 줍는 형제 이야기를 다시 물었다. 또 말을 잇지 못한다. 눈물을 참느라 굳게 다문 입 속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하지만 깊은 사연을 묻기는 힘들었다. 그 역시 자세한 사정을 물으면 상처를 건드릴까봐 밥만 챙겨준다고 했다.
 
“폐지를 줍다가 밥을 먹으러 와요. 폐지가 쌓인 작은 수레를 끌고 와요. 말도 별로 없어요. 학교를 마치면 중학생 동생이랑, 고등학생인 형이 폐지를 줍나 봐요. 어떨 때는 저녁 밥차가 일찍 끝나서 못 먹고 가는 날도 있어요. 자원봉사하는 선생님들도 그 형제들 안 오면 걱정하고 기다리고……. 밥 먹는 거만 봐도 짠하고 그럽니다. 지난주에도 밥차 운영을 끝내고 정리하는데 그 아이들이 왔어요. 밥은 남아 있었지만 추우니까. 전등 불빛 아래서 밥을 차려주긴 했는데…….”
 
그는 “지역 청소년과의 소통을 위해 밥차를 시작했지만, 정말 없어서 못 먹는 학생들을 먹일 수 있다면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부모가 아닌,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해준 밥 한 끼를 감사히 먹는 기억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쌓인 기억을 통해 지역 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 커 갈 거라고 믿어요. 우리가 어른이니까 먼저 주고, 먼저 다가서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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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충남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간한 '충남 시민사회 연간보고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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