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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천년의 세월 후에 다시 찾아 온 최치원

한.중 징검다리 역할.. 서산문화원에서 열린 학술발표회

2017.11.01(수) 02:48:00 | 연필 (이메일주소:ins503@hanmail.net
               	ins503@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작년 여름 함양에 있는 상림숲을 여행하였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에 의하면 최치원(자:고운)이 1년 동안 태수로 있을 때를 기념하여 심은 나무들이 아름드리로 자라서  관광객이 많이 찾아 온다며 자랑을 하였다.  그 숲 주변은 연꽃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어서 장관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궁금증이 생겼다.  같은 인물인 최치원이 37세(893)  때에 서산의 부성군(현 지곡면) 태수로 부임하여 6년동안 머물렀는데  부성사(富城祠)를 찾는 사람은 문화유적에 관심이 있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1일 서산문화원 주최로 '최치원의 유적과 문화유산 활용'이라는 학술 대회가 열렸다.  최치원이 중국에 유학 갔을 때 4년 동안 활동한 양저우의 '양주 박물관' 부관장도 학술 발표자로 나와서 최치원이 중국 역사책에도 당나라 말기의 시인이자 문학가로 기록되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신라 출신의 우호 사자로서 한중문화 교류사에 훌륭하고 기념할 만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사드 문제로 중국 관광객이 줄어 들어 상인들이 많이 위축 된 상태인 요즈음 이런 교류는 두 나라 관계가 화해의 물꼬를 트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발표회의 목적은 서산에도 최치원 테마파크를 조성하기 위한 거였는데 유명한 인물이 지나간 흔적만 있어도 관광지로 만드는 상황에서 기록으로 남겨진 인물을 잘 활용하여  우리나라 관광객 뿐만 아니라 중국관광객들도 황소의 난 때 '토황소격문'을 써서 문장가로서 이름을 날린 최치원을 기억하고 찾는 명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치원은 12살 때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18살에 급제하였는데 인근에 있는 한서대학교에는 중국 유학생이 재학생의 다수를 차지 한다고 하니 이런 모든 점을 연계하여 두 나라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갔으면 천년만에 다시 급 부상한 '최치원' 효과가 배가 될것이다.

천년의세월후에다시찾아온최치원 1
인사말을 하고 있는 서산문화원 이준호원장

천년의세월후에다시찾아온최치원 2
학술발표회 내용을 귀기울여서 듣고 있는 시민들

천년의세월후에다시찾아온최치원 3
발표자들이 시민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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