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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김옥균 선생 유허지와 성장지

갑신정변의 주인공 김옥균

2017.05.30(화) 23:15:26 | 조우리 (이메일주소:jolee0122@gmail.com
               	jolee0122@gmail.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지역에는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있습니다. 얼마전에 천안으로 가는길에 김옥균 선생의 유허지와 성장지를 방문하게 되어 소개해드립니다.

먼저 김옥균 선생에 대해 잠시 소개해드리면  역사시간에 3일천하로 배웠던 1884년에 일어난 '갑신정변'의 주인공이기도 하죠.  갑신정변은 1884년(고종 21)에 김옥균을 비롯한 급진개화파가 개화사상을 바탕으로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지만, 성공한 지 3일 만에 막을 내려 ‘3일 천하’라는 말을 회자시키고 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간 사건입니다.

먼저 방문한곳은 충청남도 기념물 제 13호로 지정된 "김옥균 선생 유허지(주소:충남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 38)'입니다.

김옥균선생유허지와성장지 1

김옥균은 1851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서 김병태의 장남으로 태어나 천안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현재 감나무골이라 불리는 김옥균 선생 유허는 부근 일대에 경작지만 있을 뿐, 마을은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터는 없어지고 넓은 밭 가운데 감나무만 서 있습니다.

김옥균선생유허지와성장지 2

후세 사람들로부터 ‘대한제국 말의 풍운아’, ‘비운의 주인공’, ‘미완성의 영도자’라는 평가를 받는 김옥균은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가고 망명한 상하이에서 자객에게 암살되고 시신은 본국으로 송환되었는데 양화진에서 다시 능지처참되었습니다.

김옥균선생유허지와성장지 3

1977년 김옥균 생애비를 화강석 지대에 오석으로 비신을 갖추어 세웠습니다.

천안 광덕면 김옥균선생 성장지

이제  살펴볼곳은 공주 정안에서 이사를 와서 3살무렵무터 7살까지 살던 천안 광덕면 원덕리의 성장지입니다.  그의 가족은 천안으로 이사를 왔고 그의 아버지는 훈장 노릇을 하며 생계를 이어 나갔다고합니다. 7세 때 재종숙인 김병기에게 입양되어 서울로  가기전까 이곳에서  성장한것입니다.

김옥균선생유허지와성장지 4

지금은 감나무 한그루오 비석만이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김옥균선생유허지와성장지 5

김옥균선생유허지와성장지 6

김옥균선생유허지와성장지 7

조선의 근대화를 꾀하려 시도 되었던 갑신정변, 결국 외세침략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데요, 만약 조선의 청년 김옥균이 꿈꾸던대로 갑신정변이 성공하고 조선이 근대화로 나아갔다면 어떻게 또 역사가 바뀌었을까요?  김옥균 유허지와 성장지를 돌아보며 잠시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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