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노거수 DNA 보존木 충남 4그루 중 3번째 -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 남에서 북의 방향으로 본 은행나무
▲ 서에서 동쪽의 방향으로 본 은행나무
▲ 북에서 남쪽의 방향으로 본 은행나무
▲ 동에서 서쪽의 방향으로 본 은행나무
전설에는 538년(백제 성왕 16년) 사비천도를 전후하여 당시의 좌평(백제의 벼슬 등급을 나타내는 16관등(官等) 중 제1품으로서, 백제의 정치 경제 군사 행정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장 높은 지위의 벼슬. 오늘날의 국무총리 정도) 맹씨(孟氏)가 심었다고 전하며, 전염병이 돌 때에도 이 마을만은 화를 당하지 않았으므로 이 나무를 영목(靈木)으로 여겨왔다고 한다.
지금까지 주암리 은행나무는 이 마을 한가운데 산자락 아래 서서 정자목이자 당산목의 역할도 하고있다.
주암리 은행나무와 관해서 전해져 내려오는 스토리가 있다.
이 나무는 백제가 망할 때와 신라가 망할 때, 그리고 고려가 망할 때의 3회의 난리 때마다 칡넝쿨이 감아 올라가는 재난을 겪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또한 고려시대 숭각사 주지가 암자를 중수할 때 대들보로 쓰기 위하여 이 은행나무의 큰 가지 하나를 베어 가다가 급사하였으며 사찰도 폐허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만큼 이 나무는 마을의 신령한 거목으로 보호되어 왔으며, 전염병이 돌 때 이 마을만 화를 면했다하여 영험한 나무라고 믿었다.
▲ 마을 주민들이 만들어 세워놓은 안내표지. 아쉽게도 이 나무에 전해져 오는 전설의 글씨가 거의 다 지워져 있다.
▲ 지표 바로 위에 옆으로 가지를 늘어트리고 있다(서쪽 방향).
▲ 옆으로 가지를 늘어트리고 있는 것은 동서 양쪽으로 약속처럼 펼치고 있다(동쪽방향).
▲ "함께 살아요" 나무 위에서 함께 기생하는 다른 줄기 식물
▲ 두번째 줄기식물. 이것은 위 식물과 달리 아래쪽으로 줄기를 뻗고 있다.
▲ 3번째 다른 식물. 이것은 위 두사진의 줄기식물과 달리 '활엽수 나무'다.
▲ 거목의 줄기에서 삐죽이 얼굴을 내민 작은 줄기
▲ 거대한 밑둥 줄기
▲ 고목의 흔적을 보여주는 두꺼운 표피
▲ 이 은행나무는 암컷이다. 은행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원래 신생대에 번성했던 식물로, 현존하는 종은 은행나무문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다. 야생 상태의 은행 나무는 멸종된 것으로 몇백년간 알려져 왔으나 중국 저장성에서 그 일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지역도 오래전부터 인간의 활동이 있던 곳이라 야생의 개체라고 분명히 말하기 어렵다.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은행나무는 해방 전후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수형이 좋아서 여름철이면 무성한 그늘 아래 아침에 방석을 펴고 앉으면 종일토록 햇볕이 들지 않을 정도로 울창했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인근 마을 노인들까지 모여들어 만장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진정 백제시절부터 지금까지 마을 주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마을 밀착형 노거수인 셈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고, 공기도 예전만 못해서인지 지금은 은행나무의 수형이 예전만 못해 그것이 조금 아쉽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은행나무는 여전히 마을과 고장을 지키는 수호신이며 울창한 수형 대신 바로 옆에 8각정 정자를 하나 마련해 그 역할을 일부 덜어주고 있다.
그리고 모든 고목들이 대개 그렇듯 장구한 세월동안 살아온 특성 덕분에 나무 위에는 2~3개의 다른 나무와 줄기식물이 공생하고 있었다. 즉 은행나무 위의 자양분에 뿌리를 내리고 다른 나무가 함께 살고있는 것이다.
거목은 다른 식물들에게 삶의 보금자리도 내어주며 산다. 그게 우리가 배워야 할 또 다른 나눔 아닐까.
▲ 거목 앞의 행단(杏壇)
행단(杏壇)이 말끔한 새것이란 뜻인데 이곳 은행나무 바로 앞에는 행단이라 쓰인 제단이 하나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영목(靈木)을 기리고자 매년 음력 정초에 길일을 택하여 행단제를 올리고 있다.
은행나무와 이성계에 관한 전설이 하나.
고려 말 이성계가 역성혁명의 야심을 품은 채 전국 강산을 찾아 백일기도를 하였는데 당시 어느날 백일기도를 마치고 전국의 38개 산신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때 38명의 산신 중 은행나무의 목신도 포함되었는데, 마침 은행나무 밑에서 지나던 과객 하나가 낮잠을 자고 있어서 그 초대에 응하지 못했다.
이윽고 이성계의 잔치가 파하고 각자 자신의 터전으로 흩어져 돌아가던 산신들 중 하나가 이 은행나무 목신에게 들러 "잔치 대우도 잘 받았고, 이성계 장군의 인품도 훌륭하여 그의 등극을 지지하기로 하였다"며 산신들 회합의 결과를 알려주었단다.
그런데 그 대화를 은행나무 밑에서 자고 있던 과객이 엿듣게 된 것이다. 그는 팔자를 고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어 재빨리 이성계를 찾아가 자신이 엿들은 바를 고하였는데, 그 말을 들은 이성계는 천기누설을 우려하여 그 과객을 처형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이성계는 조선을 세우고 태조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전설 역시 거목의 영험함, 신령스러움, 범인들이 접할수 없는 그 어떤 힘과 의미를 전해주고 깨닫게 하려는 뜻인것 같다.
그래서 거목은 우리에게 더욱 많은 가르침을 준다.
▲ 야생화가 노거수와 함께 이 땅에 뿌리 내리고 자라고 있다. 모두의 보살핌속에 우리 땅에 자라는 모든 것들이 사람과 자연의 공존을 함께 나눴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