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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예산 수당고택을 찾아서~

2016.06.16(목) 19:44:15 | 눈곶 (이메일주소:borisim3@naver.com
               	borisim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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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예산에 있는  '수당고택'을 찾았다.  수당고택은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의 본가로 고택이 자리잡고 있는 대술면 상항리는  예산군과 아산시의 경계지역으로서 예산 읍내에서도  자동차로 약 30분 이상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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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당고택을 둘러보며 제일 인상적이었던 곳은 다른 고택에선 볼 수 없었던 안채대문의 휘어진 목재를 그대로 사용하여 달이 뜬 것처럼 보이는 월방(月枋)이었다. 운치 있으면서도 드나들기 편하게 다가와 주인장의 넉넉한 인품까지 전해져 오는 느낌이랄까~!
[출처] 예산 수修堂) 고택 --- 예산 제일의 명문가|작성자 분당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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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밖을 바라본 풍경도 더 아름답게 다가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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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목이란 명패가 붙은 향나무도 멋스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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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안주인을 닮은 듯 소담하고 단아한 부용도 피어 온화한 미소로 맞아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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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당교육관에 들어가  해설사님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관람을 했다. 
수당선생은 1855년 서울 미동에서 출생한 뒤 기호유림의 대표학자 성재 허전 문하에서 수학했고  1875년 향시인 사마시 양과, 1882년 정시 문과에 급제, 승정원 권지부정자에 임명됐다.

승정원동부승지 우승지 현조참 등의 요직을 거친 선생은  김택영, 황현, 이건창과 함께 구한말 4대 명문장가로 꼽혔다. 

특히 선생은 1883-1905년 명성황후 시행만행을 규탄하는  '청절왜소' 를 비롯 을사조약 체결 당시 결전을 주장한 '청토적소' 등의  상소를 잇따라 작성, 항일유림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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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단발령에 반발, 관직을 사퇴하고 예산에 칩거하던 중  충남 홍산(홍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민종식을 숨겨줘 일제에 의해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선생은 1907년 일제의 회유를 거부, 충남 아산군에서 장남 충구와 함께 살해됐다. 

그동안 잘 몰랐던 역사속의 인물을 생생하게 들으니 책으로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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