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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현충사 특별전시회서 알현한 난중일기 진품

국보이자 유네스코 지정된 전 7권 한달간 특별 공개… 가슴이 '뭉클'

2016.05.25(수) 11:18:33 | 이기현 (이메일주소:jhdksh8173ahj@hanmail.net
               	jhdksh8173ahj@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며칠전 4월 26일부터 5월 22일까지 한달간 아주 귀한 국보가 아산 현충사에서 전시행사를 가졌다.
난중일기 초고본 즉 충무공께서 임진왜란 중 친필로 쓰셨던 난중일기 원본 7권 모두를 진품으로 전시한 행사였다.

사실 국보급 진품은 보관의 중요성 때문에 상설 전시가 어려워 수장고에서 보관하고, 전시관에는 복제품을 내놓는 경우가 적잖은데 난중일기 역시 마찬가지로 진품은 그동안 수장고에 있었고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특히 난중일기는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대한민국 문화유산의 자랑이었기에 이번 한달간 진품의 특별공개는 더없이 뜻깊은 일이었고 흔히 볼수 있는 자료가 아니어서 놓치기 아까운 전시행사였다.
 
현충사 초입 전경
▲ 현충사 초입 전경

유네스코 지정을 기념하는 상징물
▲ 유네스코 지정을 기념하는 상징물

난중일기 전 7권 진품 특별전을 알렸던 전시간판
▲ 난중일기 전 7권 진품 특별전을 알렸던 전시간판

도민리포터가 충무공의 난중일기 진품을 직접 알현하는 영광을 얻어 현충사에 다녀왔다.
 
우리는 과연 난중일기에 대해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막연히 이충무공께서 임진왜란 중에 쓴 일기라고만 알고 있는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실제 난중일기라는 책(또는 기록)은 없다. 충무공께서 임진왜란중에 쓰신 7권의 일기책을 모아 정조대왕이 <이충무공전서난중일기>라는 이름으로 묶음 편찬을(필사) 하던 중 이것을 부르기 쉽게 통칭해 명명했던 이름이 난중일기였다는 사실. 대부분 잘 모르고 있는 일이다.
 
난중일기 진품을 공개했던 전시관 내부. 안쪽 중앙이 난중일기 진품이 공개된 곳이다.
▲ 난중일기 진품을 공개했던 전시관 내부. 안쪽 중앙 붉은색 막으로 디스플레이 돼있는 공간이 난중일기 진품이 공개된 곳이다.

관람객들이 난중일기 진품을 보고 있다.
▲ 관람객들이 난중일기 진품을 보고 있다.

1962년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었으며, 충남 아산 현충사에 있다. 201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 일기는 당초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쓴 것이 아니었으므로 본래 이름이 없었으나, 1795년(정조 19)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할 때 〈난중일기〉라는 이름이 붙여져서 지금까지 불리고 있는 것이며 아산 현충사에 있는 친필 초고와 〈이충무공전서〉에 실린 일기를 비교해보면 차이가 많은데, 이것은 초고를 정자로 베껴 판각할 때 글의 내용을 많이 생략했기 때문인 듯하다.
 
현충사특별전시회서알현한난중일기진품 1

국보 제76호 난중일기 친필원본. 사진에서 보는 이것이 국보 제76호인 진정한 난중일기이다. 7책중 앞 두건인 임진일기와 계사일기다. 
 
난중일기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5월 1일부터 전사하기 한 달 전인 1598년 10월 7일까지의 일기를 정조대왕때 필사해 놓은 것이다. 엄격한 진중생활, 국정에 대한 솔직한 느낌, 전투 후의 기록, 수군 통제전술, 부하들에 대한 상벌, 가족, 친지, 부하, 내외 요인들의 내왕과 편지글 등도 실려 있어 임진왜란 연구에 도움을 준다. 또한 어머님을 그리워하고 부인을 생각하며 자식을 걱정하는 인간적인 내용도 담겨있다.

현충사특별전시회서알현한난중일기진품 2

그리고 갑오일기와 병신일기가 보인다.(왼쪽 두권)
 
현충사특별전시회서알현한난중일기진품 3

이어서 정유일기, 속정유일기, 무술일기로 이뤄져 있다.
 
충무공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전장에서 기록한 전투 현황, 당시 조정과의 관계와 정세, 인간적 내면과 고민, 가족걱정 등이 소상히 적혀있다.
 

현충사특별전시회서알현한난중일기진품 4


사진의 이것은 충무공의 친필원본 중 한 페이지다.
초서(곡선 위주의 흘림체로 된 한자 서체의 하나. 쓰기에 편리하고 속사(速寫)할 수 있도록 짜임새와 필획을 간략하게 한 것)로 씌여져 있어 웬만큼 한문 공부를 한 사람도 읽기 어려울 정도이고 해독이 쉽지 않은 전장에서 급하게 쓴 필체라 한다.
 
난중일기는 그럼 언제쯤 쉽게 번역해서 나왔을까?
놀랍게도(살짝 자존심 상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먼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초서 번역본이 나왔다고 한다. 그만큼 일본에서도 충무공에 관한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이어서 1955년 북한 평양에서 간행된 난중일기 한글 번역본이 나왔다. 당시 북한본 난중일기는 벽초 홍명희의 아들인 국어학자 홍기문이 번역해 1955년 11월30일 평양에서 간행한 ‘리순신 장군 전집’이라는 책 속에 들어 있다.
 
그리고 1968년 에서야 비로소 시인 이은상 선생이 한글 번역본을 내놓았다. 이때 난중일기 초고본과 충무공전서본을 합본해 처음으로 우리말로 옮겼고, 이를 바탕삼아 수십여 종의 번역본이 나왔다.
 

현충사특별전시회서알현한난중일기진품 5


이 책은 충무공유사이다.
충무공유사는 이충무공 종가에서 국보인 임진장초, 서간첩 등과 함께 보존되어오면서 그동안 ‘재조번방지초’로 알려져 왔던 고문서를 필사해 놓은 책이다. 그 내용은 장졸의 명단, 중국장수가 준 선물목록, 정운과 송희립 자손 명단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일기초’이다.
‘일기초’는 이충무공의 친필은 아니지만 이충무공 사후에 이충무공 종가와 관련 있는 사람이 충무공의 친필인 초본 난중일기를 보면서 일기의 일부를 기록 정리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충무공전서본 난중일기와 함께 유실된 부분이 있는 초본 난중일기를 보완해 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현충사특별전시회서알현한난중일기진품 6


이 책이 <이충무공전서난중일기>다. 앞서 밝힌바대로 정조대왕 당시 7책의 충무공 일기를 한데 묶어 난중일기로 통칭해 편찬한 것으로 본서에 수록된 일기를 초고본과 구별하여 진서본이라 부르며 편명이었던 난중일기가 오늘날까지 통칭되는 것이다.
 

현충사특별전시회서알현한난중일기진품 7


이것은 임진장초이다.
이충무공난중일기의 부록으로 충무공이 전란중 출전경과, 왜군의 정황, 군사상의 건의, 진중(陣中)의 경비 및 준비상황 등에 관해 조정에 장계한 것을 모은 것을 다른 사람이 옮겨 적은 책이다. 난중일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여러 해전의 상세한 경과와 정확한 진중의 정황이 기록되어 있어 임진왜란 당시의 해전상황을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사료가 된다. 〈난중일기초고〉와 함께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충사특별전시회서알현한난중일기진품 8


충무공의 무과급제 교지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육군장교시험 합격증이랄까?
1576년 3월에 무과 병과에 제사인(第四人)으로 급제한 홍패이다. 문무과의 최종 급제자에게 내리는 합격증서인 이교지는 붉은 바탕의 종이를 썼다 하여 홍패(紅牌)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무과를 위한 예비교육 기관이 없어 독학으로 무과에 합격하기란 불가능하였다. 또한 시험과목중 승마술이 포함되어 있어 개인이 말을 소유할 정도의 재력이 뒷받침 되고 무예를 지도할 스승이 있어야만 했다. 합격자 29명중 4명을 제외한 25명이 현직 군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볼때 참 어려운 시험에 붙은 것임을 알수있다.
 

현충사특별전시회서알현한난중일기진품 9


이것은 수책거적도라 하는 것이다.
선조 20년(1587년) 경흥도호부 순찰사 정언신이 녹둔도에 둔전을 설치했는데 당시 조산만호로 있던 이순신이 이를 관리 하였다.
가을이 되자 여진족들이 침입을 하여 목책을 따라 노략질을 하자, 이순신이 적과 싸워 여진족 추장을 활로 쏘아 죽였고 이에 여진족은 퇴각하였다. 이때를 노려 이순신은 군사를 이끌고 추격해 붙잡혀간 농민을 데려올수 있었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충무공 영정

▲ 충무공 영정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사용했던 총통 등 무기류를 살펴보는 관람객

▲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사용했던 총통 등 무기류를 살펴보는 관람객


조선수군이 왜군과 해전을 치르는 장면을 묘사한 미니어처.

▲ 조선수군이 왜군과 해전을 치르는 장면을 묘사한 미니어처.


거북선 모형을 살펴보는 관람객들.

▲ 거북선 모형을 살펴보는 관람객들.


이렇게 충무공이 임진왜란때 나라를 구한 당시의 일기를 중심으로 다른 자료들과 함께 그 일대기를 조금이나마 살펴보았다.

구국의 영웅이신 충무공께서 직접 쓴 친필 난중일기를 살펴보며 국가라는 의미, 애국이라는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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