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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천년세월 장구하게 묵묵히 금산을 지켜온 '거목'

국가 노거수 DNA 보존木 충남 4그루중 2번째 -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

2016.05.18(수) 01:20:54 | 양창숙 (이메일주소:qkdvudrnjs@hanmail.net
               	qkdvudrnjs@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문화재청과 함께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노거수의 유전자원을 보존하기 위한 DNA 추출 및 복제나무 육성에 착수한 사례와 시작의 내용은 지난번 1회차 기사에서 알려드렸다.
 
1차에는 보석사 은행나무를 포스팅 했고 오늘은 2회차로 역시 금산에 뿌리내리고 있는 요광리 은행나무 기사를 쓴다.
 
요광리 은행나무는 수령 1000년 정도 되는 높이 24m, 둘레 12.9m의 노거수다.
이미 500년 전 이 마을에서 살던 오씨(吳氏) 성을 가진 사람이 전라감사(현 전라도지사)로 있을 때 나무 밑에 정자를 짓고 은행나무 정자라는 뜻의 행정(杏亭)이라고 불렀는데, 한때 금산행정의 은행나무란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행정헌(杏亭軒)이란 육각정자가 있는데 ‘율곡문집’에 “진산 은행정에 큰 나무(大木於珍山銀杏亭)”라는 기록도 있어 이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동-서 방향에서 본 요광리 은행나무

▲ 동-서 방향에서 본 요광리 은행나무


북-남 방향에서 본 요광리 은행나무

▲ 북-남 방향에서 본 요광리 은행나무


서-동 방향에서 본 요광리 은행나무

▲ 서-동 방향에서 본 요광리 은행나무


남-북 방향에서 본 요광리 은행나무

▲ 남-북 방향에서 본 요광리 은행나무


1회차에 쓴 보석사 은행나무나 이번에 알리는 요광리 은행나무 모두 마을사람들의 단합과 친목을 도모하는 중심으로서의 향토문화적 가치, 역사적 가치, 노거수로서의 생물학적 가치가 사실상 동일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생김새부터 사람을 압도한다. 원래는 더 컸다. 오래 전에 폭풍을 맞아 남쪽과 동쪽으로 난 큰 가지가 부러져 작아진 게 이 정도다. 그때 부러진 가지로 사람들은 요긴하게 쓸 가구를 만들었는데 무려 3년 동안 마을 모든 집에서 쓸 밥상과 37개의 관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동쪽 가지는 8.15 해방직후 태풍에 부러졌는데 혼란한 시기여서 적절한 처리가 어려웠다 한다.
특히 이 나무는 벌판에 홀로 우뚝 서 있어서 더 커 보이기도 한다. 중요한 부분이 부러진 탓에 남쪽의 가지는 순한 모습으로 둥글게 자랐는데, 북쪽으로 솟구친 가지들은 끝 부분이 사각형으로 뻗었다.
 

수령 1000년의 풍상을 겪어온 나무 밑둥. 우림하다.

▲ 수령 1000년의 풍상을 겪어온 나무 밑둥. 우림하다.


천년세월장구하게묵묵히금산을지켜온거목 1


밑둥 곳곳에 패이고 상처받은 흔적은 1000년세월의 시간을 말해주지만 후손들의 보살핌으로 상처를 메우고 처방해 놓았다.

▲ 밑둥 곳곳에 패이고 상처받은 흔적은 1000년세월의 시간을 말해주지만 후손들의 보살핌으로 상처를 메우고 처방해 놓았다.


땅속 깊이 내린 굵은 뿌리들

▲ 땅속 깊이 내린 굵은 뿌리들


거목을 지탱하는 뿌리들

▲ 거목을 지탱하는 뿌리들


요광리의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84호로 열매를 맺는 암나무다. 지정일은 1962년 12월 7일.
이 나무의 나이는 1000살이 넘을 만큼 오랫동안 살아왔기에 나무가 품고 있는 전설도 가지가지다.
 
머리가 좀 덜깬 아이를 밤에 이 나무 밑에 한 시간 쯤 세워두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한다. 잎을 삶아서 먹으면 노인의 천식이 없어지고 나무에 정성을 들이면 아들을 낳게 된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오래 전 한 나무꾼이 나무를 해 가지고 내려오다가 졸음이 밀려와 나무 그늘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
그때 산에서 먹이를 찾던 호랑이 한 마리가 인간세상에서 풍겨져 오는 사람 냄새를 맡고 어슬렁어슬렁 내려와 보니 정말 나무 아래에서 먹잇감(?)이 달콤한 낮잠에 빠져 있는게 아닌가.
옳커니 싶은 호랑이가 그 나무꾼을 냉큼 물어가려고 준비자세를 취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호랑이 네발이 마치 지남철처럼 땅바닥에 붙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호랑이를 내려다 보는 어마어마한 어떤 신령스런 것 때문에 호랑이가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그것은 바로 나무꾼에게 그늘을 만들어주었던 요광리 은행나무였다. 사람이 누운 자리에 도저히 덤빌 수 없을 만큼의 위엄을 갖춘 거대한 ‘무엇’ 즉 이 은행나무에 두려워진 호랑이는 그 자리를 피해 잽싸게 달아났다.
 

생명은 큰 줄기와 가지에만 있는게 아니라 이렇게 작은 이파리에서도 돋아난다.

▲ 생명은 큰 줄기와 가지에만 있는게 아니라 이렇게 작은 이파리에서도 돋아난다.


나무에 기대어 함께 사는 푸른 이끼.

▲ 나무에 기대어 함께 사는 푸른 이끼.


모든게 함께 살며 어우러짐이다. 은행나무에 찔레 씨가 날아와 함께 살고있다.

▲ 모든게 함께 살며 어우러짐이다. 은행나무에 찔레 씨가 날아와 뿌리를 내리고 함께 살고있다.


나무는 까치에게도 보금자리를 만들어 내 주었다.

▲ 나무는 까치에게도 보금자리를 만들어 내 주었다.


나라와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길 징조가 있으면 소리 내 알려준다는 전설도 있을만큼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성하게 여겼다. 전설을 믿는 사람들은 음력 정월 초사흩날 나무 아래서 새해 행운을 빌기도 했다.
 
나무에 전설이 담기는 건, 그 나무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가를 보여주는 뚜렷한 예다. 하나의 전설은 또 하나의 전설을 낳고, 세월이 흐르면서 전설은 실제 있었던 일처럼 부풀려진다.
세월은 옛 전설에 또 하나의 전설을 보태고, 보태진 전설은 사람들의 입을 타고 새로운 전설로 탈바꿈한다. 어느 틈에 전설은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이미지와 환상이 되고 사람살이의 상징이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전설, 설화, 옛 이야기 등은 모두 스토리텔링이 된다. 이런 스토리텔링의 기초소재는 모두 자연에게 의탁하고 순응하며 살아왔던 우리네 조상들의 소박한 마음이 담겨 구전으로 내려온 것들이어서 서민적이고 여유롭기도 하다.
요광리 은행나무에 얽혀 내려오는 전설들 모두 하나같이 그렇다.
 

나무는 천년동안 사람들과 호흡하며 전설도 만들고 이야깃거리도 만들어 준다.

▲ 나무는 천년동안 사람들과 호흡하며 전설도 만들고 이야깃거리도 만들어 준다.


현대의 기술로 가지가 부러지지 않게 견고히 고정해 두었다.

▲ 현대의 기술로 가지가 부러지지 않게 견고히 고정해 두었다.


상처난 부위는 '약'으로 발랐다.

▲ 상처난 부위는 '약'으로 발랐다.


나무 밑의 야생화. 반갑다.

▲ 나무 밑의 야생화. 반갑다.


우리 민들레

▲ 우리 민들레 

요광리 은행나무를 알리는 표지

▲ 요광리 은행나무를 알리는 표지


옛날은 또 하나의 출발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나무는 타임머신이라는 말도 있다.
오래된 나무가 깊고도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주는 것은 그만큼 이 나무 근처에 사는 마을 주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는 뜻이기도 하기에 진정한 타임머신이 되는 것이다.
 
요광리 은행나무 역시 오랫동안 금산 사람들과 함께 숨쉬며 그 자리를 지켜왔다. 앞으로도 수천년 아무 탈 없이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요광리 은행나무 주소지 : 충남 금산군 추부면 요광리 3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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