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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당진의 중심에 세워졌던 당진면천읍성

2016.04.19(화) 22:42:06 | 초지일관 (이메일주소:skdlem23@naver.com
               	skdlem2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옛날 옛적에는 중국에서 들어오는 길에 가장 중요한 길목이 바로 당진, 서산, 태안지역이었다고 합니다. 바닷길이 있는 곳은 예로부터 요지였다고 하는데요. 특히 물자가 많고 문화가 앞선 중국과의 통상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을 거에요. 기록을 찾아보니까요. 면천읍성은 고려시대 충렬왕 16년(1290)에 세워졌다고 하나 실은 백제 초기부터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면천읍성

▲ 면천읍성


면천읍성을 알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지금은 성벽이 조금밖에 안남아 있지만 옛날에는 동, 서, 남, 북의 사대문까지 갖춘 성이었다고 합니다. 당진군이 중심이기는 하지만 면천면도 상당히 큰 마을이 있었던 곳이랍니다.

면천읍성 안내도

▲ 면천읍성 안내도


지금 남아 있는 읍성은 1439년 11월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평지읍성으로 자연석을 가져다가 쌓았다고 합니다. 보다시피 외부는 석축이고 내부는 돌을 채운 후 흙으로 덮어 쌓았습니다. 

읍성의 성벽을 거닐다

▲ 읍성의 성벽을 거닐다


다른곳의 읍성은 그래도 잘 알려진 것 같은데요. 면천읍성은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네요. 이곳은 옹성1개소, 문지4개소, 치성 3개소가 있는데요. 원래는 치성이 7개소가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조성시대 성을 쌓은 규정이 가장 잘 반영된 우수한 유적이기에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하네요.

면천읍성의 깃발

▲ 면천읍성의 깃발


면천읍성 안에는 객사, 동헌, 내아, 왜책실, 급창방, 사령청, 풍악루, 군기고, 군자정, 저자거리, 동문, 서문, 남문, 해자등 읍성이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은 모두 가지고 있더라구요.

임진왜란때의 격전지

▲ 임진왜란때의 격전지


임진왜란때 일본군 수색대와 관군의 전투를 벌였던 곳이 이곳 면천성이라고 합니다. 당진의병 전투지역이죠. 

면천읍성의 치성

▲ 면천읍성의 치성


임진왜란 때 일본군 수색대와 관군의 전투를 벌였던 곳이 이곳 면천성이라고 합니다. 당진의병 전투지역이죠. 

독립운동 기념비

▲ 독립운동 기념비


당진 면천읍성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보니까 독립운동 기념비도 있더라구요. 

새롭게 복원된 성벽

▲ 새롭게 복원된 성벽


이곳은 잘 정비되어서 성다운 면모가 엿보입니다. 당진 면천읍성은 충남도 지정 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면천읍성 저잣거리 조성계획을 거쳐 2020년까지 저잣거리가 조성되면 이곳이 당진의 관광중심으로도 바뀔수 있겠네요. 

연암 박지원의 흔적

▲ 연암 박지원의 흔적


그거 아세요?  

실학자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이 이곳에 군수로 있었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다양한 책들을 집필하고 면천의 옛일과 절의 유래, 신변잡기 등을 담은 수필인 면양잡기록등도 저술했다고 합니다. 
 

새롭게 만들어진 옹성

▲ 새롭게 만들어진 옹성



 

이곳은 최근에 만들어진 것 같았습니다. 이곳은 남문인데요. 옹성으로 내포문화권사업으로 만들어진 곳이라고 합니다. 당진은 이곳을 새롭게 건축한 것을 기점으로 면천의 새 역사문화를 재현해나가는 것을 추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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