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초상 군상'전에서 본 이응노와 그의 작품세계
우리나라 예술인 중 홍성 이응노 화백처럼 극적인 인물이 몇이나 될까.
자타공인 최고의 반열에 오른 화가, 그러나 이념전쟁에 휘말려 평생을 외국에서 떠돌아야 했고 죽어서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예술인.
그의 질곡(桎梏) 많은 삶은 어쩌면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있어 피할수 없는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념전쟁의 희생양이 된 한 예술인의 이야기는 뼈아픈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런 이응노화백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홍성에는 기념관과 생가가 복원돼 있는데 지금 기념관에서는 <이응노의 얼굴 초상 군상전>이 열리고 있다.
▲ 작품전 포스터
▲ 햇빛이 들어오는 전시실 내부 입구
복원된 그의 생가 집과 주변 마을은 건축가 조성룡 선생이 정성을 다해 지은거라 한다. 거기에서 열리는 군상전은 그의 고향 이 마을 주민들의 사진과 가훈, 집안 이야기, 젊은 시절 추억과 연애담 등을 하나의 테마로 묶어 특별전을 여는 것이다.
이 전시회에는 홍천마을(고암 선생 고향을 이르는 말) 주민들의 일상사를 재미있게 엮고, 주민과 가족들의 사진을 흑백으로 담아 놓았다. 사진은 마치 내게(관객에게) 가까이 다가와 귀엣말로 속삭여 주는것 같다.
그만큼 편하고 친근하다.
고암의 군상전을 더 극적이게 하는게 바로 선생의 생가다.
그 집에서는 고암의 예술혼이라는 묵직하고도 소중한 진실이 흘러 나오고 있다. 선생의 생가 터에 이응노의 집을 새로이 지으면서, 이 땅에 깃든 그것을 찾아 드러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 마을 쌍바위골 사람들이 아침저녁 지나다니는 다리를 건너 시골길 따라 이 집에 이르게 된다. 숲자락에 은근히 가리운 건물은 농촌 풍경에 그저 어우러지기를 소망한다.
오래된 지도에 나온대로 구불구불 되돌려 놓은 길을 따라 연밭과 밭두렁을 거닐 수도 있다. 선생의 고향집 그림대로 지은 초가 곁으로 대숲과 채마밭도, 원래 그렇게 있었던 듯 되살렸다. 고암 선생이 늘 보던 그 고향 풍경을 다시 보고 싶었던 탓이리라.
그 풍경은, 우리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마음에 담고 있는 고향 풍경이기도 하다.
▲ 전시실 내부.
▲ 전시회에서 만난 故 마이클잭슨
▲ 전시실 사진. 홍성 마을사람 누군가의 즐거운 일상
▲ 홍성과 관련돼 출판된 책들
기념관의 외관은 황토결이 부드럽지만, 안쪽 홀에서는 사뭇 긴장감이 느껴져 대비를 이룬다. 이 길은 예술로 난 길이기 이전에,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근현대사의 질곡 위에 난 길이자, 그 속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 굴절된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고암 이응노 선생이 그리던 고향 마을, 고암 선생이 걸어갔던 이 길을 걸어오고 지나갈 모든 사람들의 마음들이 어우러져, 새로운 예술의 미, 새로운 역사의 진실이 이 땅에서 다시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시장에서 고스란히 묻어난다.
군상전은 스토리텔링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의 삶, 생활상, 옛 이야기, 추억, 노 어르신들의 연애담까지 한가득 펼쳐져 있어서 더욱 좋다. 그 안에는 지난 세월을 이겨낸 풍상, 이불보자기 풀어 헤치듯 한겹한겹 켜켜이 쌓여있던 것들의 드러냄, 이런것들이 어우러져 작품이 되고 삶의 모습이 된 것이다.
많은 사진과 이야기, 추억담을 보노라면 “맞아, 그땐 그랬지”하면서 전시회는 순간 고암선생판 ‘응답하라 1977’쯤으로 되돌아 간다.
▲ 홍성 출신 근대 춤의 선구자 한성준 선생을 다룬 신문기사 전시 액자
▲ 홍성출신 민족영웅 백야 김좌진 장군을 다룬 기사 전시액자
▲ 김태동 작가의'Day break 016'
▲ 김태동 작가의 'Day break 040'
▲ 김태동 작가의 'Day break 032'
▲ 양유연 작가의 '버짐'
▲ 양유연 작가의 '얼굴 1'
전시회에 놓인 여러 소품과 선생이 쓰던 유품, 고향 홍성 스케치는 관객들을 예술가의 생생한 삶 속으로 이끌어준다.
옛 모습의 시골길은 초가와 대숲, 밭과 연못으로, 다리로 구불구불 이어진다. 고암 선생의 마음 깊이 든든한 뿌리가 되어 준 풍경 속에서 작품을 보며, 선생이 작품으로 표출한 인류 평화와 화해의 염원을 되새기는 곳이고자 하는 것이다.
관객은 그래서 군상전에 마주 서게 되면 이 땅에서 태어나 20세기를 치열하게 살과 간 한 예술가, 한 인간의 삶과 정신의 궤적 속으로 고즈넉하게 들어가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때로는 굽고 비탈져, 어쩌면 조금 거칠지도 모를 이 길에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찬찬히 거닐며 묵향의 여운, 고향의 풍경 한 자락 마음에 담아 가도록 안내하고 있다.
고암은 현대 추상미술을 가장 먼저 접한 최초의 한국 미술가다. 김규진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사군자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프랑스 파리에 안장되기까지 한시도 붓을 놓지 않았던 열정의 화가다.
1924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청죽(晴竹)으로 입선하면서 미술계에 등단한 이후 고암의 화풍은 전통적인 사군자에서 벗어나 동양의 전통 위에 서양의 새로운 방식을 조화롭게 접목한 독창적인 창작 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상파울루비엔날레에서 명예대상을 받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서양미술의 본고장에서 극히 동양적인 한지나 먹을 사용해 스스로 ‘서예적 추상’이라고 이름 붙인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어 갔던 것이다.
특히 이번 군상전에서 나오는 작품은 대개 이런 서예적 추상을 접목한 것들이어서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여러 사람이 서로 어울리고 뒤엉켜 있는 풍경이지만, 인간형상의 문자를 추상화한 것이고, 고암은 이러한 연작을 통해서 사람들 사이의 평화와 어울림, 서로 하나가 되는 세상을 갈망했다고 한다.
<얼굴, 초상, 군상 자세히 들여다보기1>는 그런 그의 갈망을 대변해 준다.
▲ 다양한 작품이 전시돼 있는 제2전시실.
▲ 박광수 작가의 '추락하는 직선과 선'
▲ 노승표 작가의 여러 작품 모음
▲ 용봉초 3학년들의 아이들이 꿈꾸는 자화상
▲ 용봉초 어린이들의 작품중 하나.
▲ 문성식 작가의 '다시 청춘'
▲ 그때 농가의 복덩이 '돼지가 새끼 낳던 날'
▲ 1950년대 마을 아낙들의 사진
미술평론가 이대범 씨는 2012년 홍성역에서 이응노의 집까지 1시간 40여 분을 걸으며, 먹지에 ‘잘 도착했습니다’를 작품으로 남겼다.
전시회는 홍성의 과거와 현재를, 인간의 영고성쇠를, 지금-여기의 ‘나’를 살피기 위한 거울로 기획되었다.
이번 전시회는 또 얼굴, 초상, 군상, 위인, 그리고 ‘나’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개별적인 개념의 사이를 이어 주며 역동적 동세를 지닌 인물들이 평면 위에 가득하다. 어떤 중심도 없다. 단지 그 화면 위에는 미묘한 차이를 지닌 인물들의 움직임만이 있을 뿐이다.
어딘가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렇다고 하나의 덩어리로 종속되는 것이 아니다. 화면은 개별자의 살아 있는 숨결로 가득하다. 긴장, 충돌, 조화가 화면에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그야말로, 이름 없는 이들에 의해 완성된 ‘향연’이다.
“주로 날고 가끔 걷는 새들도 비웃을 만큼 걸었는데,
나는 이미 아문센만큼 걸은 것 같고,
이번엔 북극에서의 아문센보다 막막해 있다.
어쩌다가 나는 남극에 와서 헤매고 있는가?”
- 이현성, ‘여행자’ 중에서
이렇게 군상전에서 말해주는 인간의 영고성쇠, 그리고 다시 돌아보는 홍성과 고암.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거치면서 정치적 혼란기의 여러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작가가 평생에 걸쳐 쌓은 예술혼.
시대의 의식과 호흡하는 예술에 대한 고뇌와 탐구가 고스란히 그 숨결로 남아있는 홍성과 그의 생가, 기념관.
군상전에서 고암을 다시 본다... 그를 다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