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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남녀 장승을 혼인시켜 다산(多産) 기원

공주 탄천 충남도무형문화재 제8호 ‘공주 탄천장승제’

2016.03.17(목) 23:29:27 | 남준희 (이메일주소:skawnsgml29@hanmail.net
               	skawnsgml2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탄천 장승제가 열리는 공누시 탄천면 소라실마을 어귀와 먼발치 마을 안쪽 전경

▲ 탄천 장승제가 열리는 공주시 탄천면 소라실마을 어귀와 먼발치 마을 안쪽 전경

마을 어귀 연못에 세워져 있는 장승

▲ 마을 어귀 연못에 세워져 있는 장승

마을 입구 산기슭에 세워져 있는 장승

▲ 마을 입구 산기슭에 세워져 있는 장승



무형문화재 취재를 오랜만에 해서 포스팅하게 되었다.
충청남도 공주군 탄천면 송학리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날 개최되는 장승제. 공주장승제, 또는 소라실장승제라고도 하지만 시도무형문화재 제8호로 명명된 공식 명칭은 ‘공주 탄천장승제’이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탄천장승제는 장승을 매개체로 한 전통적 주술적 행사인데 남녀의 장승을 혼례시키는 독특한 민속문화이다.
 
장승.
우리가 어릴적부터 보아왔던, 마을 입구 또는 절 입구에 세운 사람 머리 모양의 기둥이다.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서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며, 지역 간의 경계표, 이정표 구실도 한다. 대부분 남녀 1쌍을 세우고, 5방위 또는 경계 표시마다 11곳~12곳에 세운다. 솟대, 돌무더기, 서낭당, 신목, 선돌 등과 함께 동제 문화의 한 형태다. 대개 돌기둥이나 나무 기둥의 윗부분에 사람의 얼굴 형태를 새겼는데, 돌로 만든 것을 석장승이라 하고, 나무로 만든 것을 목장승이라 한다.
목장승은 비바람에 일찍 썩기 때문에 2, 3년마다 새로 만들어 세웠다.
 

탄천장승제 보존위원회 박용석 총무님이 장승을 가리키며 설명해주고 계시다.

▲ 탄천장승제 보존위원회 박용석 총무님이 장승을 가리키며 설명해주고 계시다.

소라실 마을로 들어가는 동구밖 풍경. 오른쪽 기슭에 장승이 보인다.

▲ 소라실 마을로 들어가는 동구밖 풍경. 오른쪽 기슭에 장승이 보인다.

박용석 총무님이 정승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 박용석 총무님이 장승제를 지내기에 앞서 장승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장승은 사실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 시절에 무서운 전염병과 잡귀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 주고, 개인의 소원을 기원하는 민간 신앙의 중요한 대상이었다.
그래서 장승은 신성하게 여겨졌고, 함부로 건드리거나 손대지 않았다.
 
그렇게 잘 모시고 숭상해 온 장승에 대해 충남 공주에서는 제(祭)를 지내며 전승 보존해 오고 있고 현재 탄천 장승제로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다.
 
송학리는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좌우로 동편 마을과 서편 마을로 나뉘며, 마을 입구에 각각 한 군데씩 장승과 오릿대(솟대)가 세워져 있다.
동편 마을에는 남장승, 서편 마을에는 여장승이 있는데 이들 장승은 매년 1기씩 장승제를 지내는 날 새로 만들어 세운다. 장승이 있는 곳을 ‘장승배기’라 부른다. 장승제는 이 장승배기에서 동서편 마을이 각기 지내는데, 장승제에 앞서 동편 마을의 남장승과 서편 마을의 여장승이 혼인하는 형식을 취한다.
 
탄천 장승의 건립 유래담으로 마을 앞산의 ‘괘등혈(掛燈穴)’이란 곳에서 자주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장승을 세웠다고 전하여 온다.
이렇게 볼 때, 주민들은 장승이 화재를 방지한다고도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장승제는 4일 또는 6일의 걸립(乞粒 = 스님들이 여럿이 함께 각처로 돌아다니면서 목탁이나 꽹과리를 치고 축복하는 염불을 한 뒤, 돈이나 쌀을 시주로 받음)에서부터 시작된다.
5일은 귀신날 궂은날이라 하여, 이날에는 걸립을 하지 않는다. 장승제를 담당하는 자로, 부정이 없는 자들 중에서 제일(祭日)에 복이 있고 덕이 넘치는 제관을 선정한다.


 

장승제를 지내기 위해 마을에서 사람들이 모여 계획을 의논하고 있다.

▲ 장승제를 지내기 위해 마을에서 사람들이 모여 계획을 의논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장승제를 지낼 장승을 깎고 있다.

▲ 한쪽에서는 장승제를 지낼 장승을 깎고 있다.

다 깎은 장승에 '화룡점정' 붓글씨로 장승의 이름과 무언가를 한문으로 적어 넣는다.

▲ 다 깎은 장승에 '화룡점정' 붓글씨로 장승의 이름과 무언가를 한문으로 적어 넣는다.

또항 부엌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다같이 모여 장승제를 지낼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하다.

▲ 또한 부엌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다같이 모여 장승제를 지낼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하다.



장승제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음력 1월15일)에 지내는데 그 전날인 14일에는 유사 등이 아침 일찍 인근의 공주 시장에 나가 제물을 구입하여 온다.
제물로는 돼지머리, 대추, 밤, 곶감, 북어, 나물류 등과 소지에 쓸 한지와 초, 향 등을 구입한다.
 
장승제는 정월 대보름날 오전 10시경 유사집 앞에서 풍물을 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때 동편 마을과 서편 마을에서는 각각 보관해 온 깃대를 내온다. 깃대는 동편의 것은 푸른 천, 서편의 것은 붉은 천을 늘어뜨린 길이 7~8미터 가량의 농기(農旗)이다. 이 깃대를 선두로 풍물패와 주민들이 장승과 오릿대를 만들 나무를 베러 인근 산으로 간다.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서다.
 
산에 오르면 나무를 벨 방향은 그해 방위를 따져 길한 곳으로 정한다. 나무를 선정할 때 특별한 점은 없으나 가지와 옹이가 비교적 적고 반듯한 나무를 택한다. 나무를 베기 전에 그 앞에서 간단히 제를 올린다. 이게 ‘산신제’이다. 장승과 오릿대로 만드는데 필요한 나무가 얻어지면 마을로 가져온다. 장승과 오릿대는 주민이 합심하여 만든다. 이때 장승제를 마친 후 쓰일 장수횃불과 군사횃불도 만드는데, 장수횃불은 막대 두 개를 교차시킨 십자가 모양이고, 군사횃불은 솜이나 헝겊을 어른 주먹만한 크기로 감고 막대기나 철사줄에 매달아 놓은 것을 말한다.
 

이제 준비가 끝나 본격적으로 장승제를 시작한다/

▲ 이제 준비가 끝나 본격적으로 장승제를 시작한다.

깃대를 세우고 모든 주민들이 함께 이동한다/

▲ 깃대를 세우고 모든 주민들이 함께 이동한다.

북 꽹과리 장고를 치며 다같이 즐거운 축제 한마당.

▲ 북 꽹과리 장고를 치며 다같이 즐거운 축제 한마당.

남녀장승을혼인시켜다산기원 1

▲ "얼쑤~얼쑤" 다같이 즐기는게 축제다.


이렇게 장승, 오릿대, 횃불이 다 만들어지면 ‘기세배’라 불리는 동서편 깃대의 모의 혼례식이 진행된다.
신부인 서편 마을의 깃대를 신랑인 동편 마을의 깃대가 맞이해 기세배를 치르는데 서편 마을 깃대가 동편 마을 회관 근처에 이르면 서편 마을에서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는데, 서로 앞으로 오라고 실랑이가 벌어지고 한참후 타협하여 혼례상이 차려진 공터로 간다.
혼례상(술잔 2, 술병, 북어)을 가운데 두고 동서편 마을의 깃대가 마주 선다. 기세배에서 앞서 서편 마을에서 가져 온 술을 동평기에게 한 장 따라주면 동편 마을에서는 이것을 받아 동편깃대 아래에 세 번 나누어 뿌리고, 다시 서편 마을에 술잔을 주면 서편 마을에서도 똑같이 서편 깃대에 세 번 나누어 뿌린다.


 

드디어 장승이 있는 마을 어귀에 도착해 제를 올린다.

▲ 드디어 장승이 있는 마을 어귀에 도착해 제를 올린다.

초헌관(처음 제주를 올리는 사람)에 이어 아헌관, 종언관 차례로 제주를 올린다.

▲ 초헌관(처음 제주를 올리는 사람)에 이어 아헌관, 종언관 차례로 제주를 올린다.

이어서 산기슭 장승이 있는 곳에 도착해 두번째 제를 지낸다

▲ 이어서 산기슭 장승이 있는 곳에 도착해 두번째 제를 지낸다

마찬가지로 순서에 따라 제주를 올리며 절을 한다.

▲ 마찬가지로 순서에 따라 제주를 올리며 절을 한다.



기세배는 서편기가 동편기에게 4번 절하면 동편기가 답례로 2번 절하고 난 후 서로 맞절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양편 마을에서 깃대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 이 기를 서로 더 굽히지 않으려고 하며 한바탕 기싸움이 벌어진다.
그렇게 기싸움 끝에 기세배를 마치면 동편 마을에서 준비한 옷감(감색, 적색)을 서편 깃대에 묶어준다.
 
이어 날이 어두워지면 양편 마을에서 각각 징을 쳐 장승제의 시작을 알린다. 양편 마을의 주민들은 각각 장수횃불을 선두로 새로 만든 장승과 오릿대를 들고, 그 뒤에 풍물패 및 제관 축관과 주민 순으로 행렬을 갖춰 마을 도랑 위의 다리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양편 마을의 남장승과 여장승의 혼례식을 거행한다.
 
먼저 서편 마을의 여장승이 동편 마을의 남장승에 네 번 절하고, 다시 동편 마을에서 서편 마을에 재배한다. 이때도 앞의 기세배와 마찬가지로 양편 마을에서는 서로 더 숙이라고 소리치며 실랑이를 벌인 후 양 마을의 장승을 포옹시키는 합궁으로 들어간다.
합궁시 동서편 장승이 서로 몸체를 맞대고 성교를 모방하는 장면을 연출하며, 이때 주민 간에 오가는 음담도 더욱 진해진다. 합궁의 절정시 양편 풍물패가 모여 합굿을 요란히 치고 나면 일행은 다시 각자의 장승이 서 있는 곳으로 향한다.
각 장승 앞에는 이미 제물이 진설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제관과 축관 두사람이 제를 올린다. 먼저 제관이 제삿술을 한 잔 올린 후 축관이 축문을 한 번 읽는데, 이를 마치면 바로 제관이 재배한다. 이렇게 축관이 축문을 한 번 읽을 때마다 제관은 재배하는데, 모두 21번 반복된다.
 

날이 어두워지고 소지(소원을 적은 종이)를 가져다가 불을 붙여 태우며 소원을 빈다.

▲ 날이 어두워지고 소지(소원을 적은 종이)를 가져다가 불을 붙여 태우며 소원을 빈다.

소지에 불을 붙여 태우는 것도 순서가 있다.

▲ 소지에 불을 붙여 태우는 것도 순서가 있다.

마을 사람들이 다같이 소원을 빈다.

▲ 마을 사람들이 다같이 소원을 빈다.

멋들어진 횃불이 주위를 대낮처럼 밝힌다.

▲ 멋들어진 횃불이 주위를 대낮처럼 밝힌다.


이어 축관은 제관이 건네주는 소지(각 가정과 마을 사람들의 한해 소망을 담아 적은 종이)를 받아 축언한다. 먼저 마을을 위하는 소지를 올리고 또 각 가호별로 호주 소지를 올린다. 소지를 다 마치고 나면 축관과 제관이 간단히 음복한 뒤 제물 약간씩을 창호지에 싸서 장승 몸체 하단에 매어 놓는다.
 
장승제를 마치면 양편 주민들은 각자의 마을로 돌아가는데, 장수횃불을 선두로 그 뒤를 군사횃불을 든 사람과 풍물패가 뒤따른다. 이동하는 동안 양편 주민들은 서로 상대편을 향해 횃불을 흔들면서 “불귀야, 썩 꺼져라”고 소리친다.
이렇게 행렬이 유사집까지 이동하면서 유사집에 다다르면 주민들은 여기서 제물을 나누어 먹으면서 밤을 보낸다.
장승제는 그렇게 깊은 밤을 새우며 끝이 난다.
 
탄천 장승제의 가장 큰 특징은 장승을 혼례시킨다는 점이다.
동편에서는 남장승을, 서편에서는 여장승을 만들어 이 둘을 결합시킴으로써 장승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탄천은 남장승과 여장승을 공유하는 셈이 된다.
평소 생각과 뜻이 나뉠수도 있는 서로간의 마음을 대보름날의 장승제를 통해 하나의 마을이 되고, 하나의 주민이라는 의식을 강화하여 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남녀장승을혼인시켜다산기원 2

▲ "비나이다, 비나이다. 충청남도 도민들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 무사태평 하도록 지켜주소서..."


그리고 기세배라는 것을 통해 양편의 깃대를 서로 합혼시킨다는 점에서 혼례가 갖는 중요성을 볼 수 있다.
남녀 결합의 의미는 성신앙이 지니는 풍요의 원리와 함께 완전함과 화합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장승의 의인화로 인한 혼례식의 연출은 그 자체가 강한 놀이성을 지니기 때문에 마을제의로서의 성격과 함께 축제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탄천장승제는 마을의 합심, 단합, 서로간의 축복기원에 더해 출생이라는 다산(多産)이라는 중요한 의미도 가지고 있기에 오늘날 출산인구 부족으로 인한 국가적 재앙을 걱정하는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소중한 전통문화이다.
 
백제시대부터 전해진 고유의 민속신앙으로서 정월 대보름날 남여 장승을 합궁시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생산의식, 공주시 탄천 장승제.
영원히 우리 가슴속에서 살아 우리 문화의 소중한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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