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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대원군의 쇄국이양의 상징 신창 척화비

버려졌던 척화비 주민들이 옮겨 세워

2016.03.14(월) 20:25:05 | 맛난음식 (이메일주소:linecplan@naver.com
               	linecplan@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대원군하면 척화비가 먼저 생각이 납니다. 

척화비는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겪은 후, 서양 제국주의 세력과 침략을 경계하기 위해 대원군이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입니다. 신창 척화비도 그 중 하나로 원래 버려져 있던 것은 동네 주민들이 1969년에 신창초등학교 교정에 옮겼다가 1987년 이곳으로 옮긴 것이라고 합니다.
 

신창 척화비 안내글

▲ 신창 척화비 안내글



여기에 신창 척화비에 대한 내용이 쓰여져 있습니다.

여행하다가 척화비를 본 것은 처음인데요. 전국에 설치되었던 대부분의 척화비는 임오군란때 대원군이 청나라로 납치되었을 때 일본 공사의 요구로 철거되었다고 합니다. 철거되지 않는 비 중 몇 개가 발견되어 현재 보존되고 있다고 합니다.


 

신창 척화비

▲ 신창 척화비


이 비의 전면에는 "서랑의 오랑케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라고 쓰여져 있고 측면에는 "우리 만대 자손에게 경계하노라, 병인년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라고 쓰여 있어, 제국주의 세력에 당시의 대응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고 합니다.

 

척화비

▲ 척화비


일본공사의 요구에 의해 모두 철거되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는 척화비는 서울시의 경복궁, 부산광역시 용두산고우언, 경남 함양군, 충청남도 홍성군에 있는 것만 아는데요. 이곳에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면 좋겠네요. 역사는 지나가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서양 오랑캐와 화친한다면 나라를 파는 것이고, 그들의 위협에 굴복하여 교역을 허락한다면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던 과거 대원군의 의지가 엿보입니다. 

신창 척화비는 충남 아산시 신창면 서부남로840번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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