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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3.1운동 주도적 역할 한 역사적 장소

공주제일감리교회 그 곳, 아픈 역사를 되새기다

2016.03.13(일) 21:39:13 | 민들레 홀씨 (이메일주소:eannakim@naver.com
               	eannakim@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남 공주시 봉황동 10번지(전화 041-853-7009)에 위치한 공주제일교회
공주제일교회는 제 9대 담임 신홍식 목사 (민족대표 33인 중 1인)를 중심으로 1919년 3.1운동에 적극 참여한 역사 깊은 교회 바로 그 장소이다.

1941년에는 일본에 의해 교회가 강재 폐쇄되기도 한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공주제일감리교회는 봉황동에 위치해 있으며 공주 근대건축물 중 하나로 제일 먼저 세워진 최초 감리교회이다.


 

공주제일교회는 제 9대 담임 신홍식 목사(민족대표 33인 중 1인)를 중심으로 1919년 3.1운동에 적극 참여한 역사 깊은 교회 바로 그 장소이다

▲ 공주제일교회는 제 9대 담임 신홍식 목사(민족대표 33인 중 1인)를 중심으로 1919년 3.1운동에 적극 참여한 역사 깊은 교회 바로 그 장소이다
 

일제시대에 선교사와 함께 민족의 3.1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역사적 현자에 안내를 받고 있다.

▲ 일제시대에 선교사와 함께 민족의 3.1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역사적 현장에서 당시의 역사를 안내받고 있다.

구제사역과 복지시설을 설립한 선구자적인 사역을 주도적으로 펼치다.

▲ 당시 교회는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구제사역을 실시했고 복지시설을 설립하여 봉사했으며 일제 시대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을 선교사와 지도자들이 가르쳤다.
 

6. 25 전쟁 당시에는 폭격을 맞아 부서지기도 했던 건물의 사진들을 관람했다.

▲ 6. 25 전쟁 당시에는 폭격을 맞아 부서지기도 했던 건물의 사진들을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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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건립되어 6.25 전쟁 당시 파손되었지만 1955년 6월 재건하고 다음 해에 봉헌되었고 지금까지 잘 보존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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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감리교회건물은 2011년 6월 20일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문화재 제 472 호 등록되었다. 공주의 자랑이자 충청인의 자긍심이다.

공주제일감리교회의 뿌리는 한국 근대사의 엄청난 일들을 뒷받침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샤프부인을 통해 세워진 영명여학교는 많은 인재를 길러내었고 병천의 시골소녀 유관순을 데려다 가르치다가 일제의 강제 폐쇄령으로 등교할 수 없었던 유관순을 서울 이화학당으로 보내 ‘3.1 운동의 영웅’이 되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당시 교회와 학교는 하나님을 사랑하듯 자신의 나라와 동포를 사랑하도록 가르쳤다. 일제의 강압이 있었지만 굴하지 않고 나라를 사랑하는 이들을 길러내는 충청의 자랑스런 교회와 학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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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자의 인도로 교회당의 지하실과 박물관으로 조정된 사진들을 관람하다.

▲ 안내자의 인도로 교회당의 지하실과 박물관으로 조정된 사진들을 관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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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앙대학교를 설립한 임영신, 한국 최초 여자 경찰서장을 역임한 노마리아, 한국 감리교 최초 여자 목사 전밀라 등이 바로 영명여학교 출신이고 그 학교의 설립은 선교사와 함께 주도했던 공주제일감리교회와 연관이 있다.  

이는 공주의 자랑이자 더 나아가 충청, 대한민국의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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